출애굽기 OBS교재(손진길 작성)

출애굽기 제27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0. 11. 13. 01:05

출애굽기 제27(13:17-22) <OBS3-27>(손진길 작성)

 

[Q1] 본문에서는 ①드디어 꿈에 그리던 출애굽에 성공한 240만 명이 넘어서는 히브리 인들과 이방인들의 모습, ②그들의 갈 길을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모습, ③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 말씀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 모세의 모습 등이 엿보이고 있음. 여기서 광야로 길을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의중이 궁금해짐.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비옥한 지중해 연안이 아니라 광야의 길, 곧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를 가르고 있는 홍해 쪽 에담 광야로 몰아가고 계시는 것일까?

·         가나안 땅으로 직행할 수 있는 좋은 길,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비옥한 지역을 피해서 홍해지역 광야로 남하시킨 이유는 초승달지역 거주민들과의 마찰과 전쟁을 사전에 피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나타나고 있음(13:17a).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3:17b)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음.

·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의중 표현은 ①아직 하나님의 군대로 조련이 되어있지 아니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숙함, ② 홍해도 건너고 광야 길도 걷게 하여 하나님의 강병(强兵, 강한 군사)으로 거듭나야만 가나안 땅에서의 입성(入城, 성에 당당히 들어감) 전쟁에 임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판단, ③ 하나님과 동행한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가졌지만 갓 출애굽한 히브리 인들은 아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의 생애를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 ④ 그래서 요셉의 해골을 매고 가면서(13:19) 이제부터 요셉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배우도록 광야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37:28, 36, 39:2-3, 9, 21, 23).

·         아울러 여기에서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직 믿음이 약하고 신앙훈련이 부족한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감당할 수 없는 도전을 하나님께서 상당기간 막아주고 계신다는 사실임. 시간이 지나고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때는 능히 세파와 싸우고 영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임. 그와 같은 세심한 배려가 있기에 믿음생활에서 성도들이 승리할 수가 있다고 하겠음.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련만을 주시고 있음. 만약 그것이 너무 무거울 것 같으면 경감시켜 주시는 은혜까지 있음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심;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24:22).

 

[Q2] 그 구체적인 훈련과정, 곧 의인 만들기 과정은 어떠한가?

·         그 다음 출애굽기 기록이 그 훈련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음; ① 홍해건너기, ② 마실 물 구하기, ③ 먹을 양식 구하기, ④ 율법 배우기, ⑤ 죄 사함 받는 방법 배우기(성막, 제사), ⑥ 인생길 맡기기(구름기둥, 불기둥) 등임.

·         그 후 요단 강 건너기와 가나안 전쟁이 시작됨. 광야생활 40년의 시행착오와 훈련과정을 거친 다음에 당당하게 요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 전투를 시작한 것임. 물론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도 모세의 지휘 아래 요단 강 동쪽에서의 전투가 있었음. 그것은 광야생활 38년이 지난 다음, 곧 가나안 정벌에 부정적이었던 기성세대가 모두 죽고 난 다음이었음(2:13-18).

 

[Q3] 의인이 아니고 죄인 가운데, 그리고 특별히 문명국 애굽 백성이 아니고 노예 계급인 히브리 인을 의인 후보로(하나님의 백성)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를 무엇보다도 먼저 들으시고(2:2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2:24)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셨기 때문임(2:25). 노예가 되어있는 현실로부터 “나를 구해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서 하나님께 직접 부르짖은 일이 의인이 될 수 있는 첫걸음이 된 것임.

·         그와 같은 부르짖음이 없었던 애굽 인들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될 수 없었음.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 또는 강청(强請)하는 자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심;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18:5),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8).

 

[Q4] 불쌍한 이스라엘 자손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한 대가 곧 만민을 공평하게 대접하여야 한다는(1:27-28, 41:57, 50:20, 3:29)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의인인 조상들, 출애굽과 가나안 땅 차지 예언, 15:13-14, 46:4, 50:24-25)을 지니고 있었음. 그러나 그것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에녹, 노아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는 수준은 아님.

·         따라서 죄인인 히브리 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그 대가로 ① 어린양의 피를 사용하셨으며, ②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를 어린양의 희생으로 반드시 대속하게 했으며, ③ 할례를 받고 무교병을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군대에 편성이 되고, ④ 홍해길, 광야 길에서 고된 훈련과정을 거치게 한 것임.

 

[Q5] 결국 출애굽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사랑과 의()의 정의는 그 요체가 무엇인가?

·         사랑의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며 그 대가를 지불하심. 구원받은 백성은 죄를 가리운 하나님의 희생의 대가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13:15)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공의의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임(13:16, 6:13).

·         의를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6:18)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다고(의로우신 하나님) 믿고(믿음으로 의를 얻음) 따르는 삶(동행)이 되어야만 함. 하나님만이 나를 구해줄 수 있다고 간절히 부르짖는 자를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면서 구원해 주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요체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