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64강(출40:29-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15. 07:23

출애굽기 강해 제164(40:29-3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16()

 

모세의 이름으로 성막이 세워지고 준공이 되다(40:18, 20, 30, 33).

 

성막을 세우는 마지막 작업을 누가 진두지휘를 했을까요? 모세는 출애굽기 제40장 제17절과 제33절 사이에서 자신이 성막을 세웠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40:18), “그는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40:20),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40:33). 18절에서 모세가 성막을 세웠다고 선언하고 나서 구체적으로 성물을 설치하는 내용에 있어서도 전부 모세가 실시한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3인칭 단수 지시대명사인 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작업현장의 상황을 짐작해보자면, 모세 혼자서 성막을 세우고 성물을 배치할 수가 없습니다. 기술자 브살렐과 오홀리압로부터 실무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일꾼들이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지시를 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지시를 하고 감독을 한 모세의 이름으로 성막이 세워지고 성물들이 제 자리를 잡았다고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애초에 성막을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모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25:8). 하나님은 모세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서 성막을 완성하도록 그에게 충분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성막의 모습을 환상 가운데 보여주면서 자세하게 짓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입니다(25:9). 그리고 성물을 배치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습니다(25:21, 26:33-37, 30:6, 18, 40:6-7)”. 이제 성막의 구성요소들이 모두 제작이 되었으므로 그것들을 조립하여 성막을 세우는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39:42). 처음 지시를 받은 모세가 자신이 기술자들에게 전달한 내용대로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39:43). 그 다음에 마지막 순서로 하나 하나 조립을 하면서 성막을 건립하고 있습니다(40:17-18). 이제 올바르게 세워지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되면 꾸중을 받게 되고 다시 보완작업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를 않습니다. 최고책임자를 일대일로 상대하십니다. 그에게 전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실시를 하라고 합니다. 물론 기술자를 붙여주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전수해주기도 합니다(35:30-35).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이 각별합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모세가 져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한 마디로, 모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성막을 건설하기 위하여 엄청난 기자재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을 예물로 바친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35:20-29). 백성들이 바친 순금만 하더라도 1톤이 넘습니다(38:24). 그리고 은이 3.4, 놋이 2.4톤이 들어갔습니다(38:27-29).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예물의 출처가 본래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이 애굽의 백성들로부터 얻도록 조치를 해준 것이었다고 하더라도(12:35-36) 그들의 헌신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 많은 재물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을 짓는다고 바친 것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기특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성막을 제조하고 준공을 하였다라고 기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구절이 전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냉정하고 야속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성막을 짓는 사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 때문에 시작이 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불러서 그에게 율법과 십계명만 전수시켜 주고 있습니다(24:12). 그 당시에는 성막을 짓고 백성들 가운데 거처하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20:18). 잘못하면 죽기 때문입니다(20:19, 5:25-26). 그래서 모세에게 혼자서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율법을 받아오라고 요청을 했습니다(5:27a). 그러면 무조건 율법을 준수하겠다고 서약을 했습니다(5:27b). 하나님은 백성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동의를 해주었습니다(5:28-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진중에 성막을 짓고서 구태여 임재를 하실 필요가 애초에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모세만 시내 산 정상으로 불러서 교육을 시키고 있는 동안에 시내 광야에서 그만 백성들이 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제멋대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우상을 섬긴 사건입니다(32:1-7). 십계명을 정면으로 위배했습니다(20:4-7). 이제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백성들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백성들의 진중에 거처를 하시고 그 두려우신 위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32:33-35). 그 결과 성막의 건립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25:8-9). 그러므로 잘못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물을 드리고 성막을 짓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이 참회하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그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은 접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 대신에 모세는 충분히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는 율법과 계명을 지켰으며 생명을 걸어놓고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중보의 기도를 드렸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32:11-14, 31-34).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이름으로 성막을 건립하고 그것을 봉헌 받기를 기뻐하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성도들의 나라가 메시아의 나라가 되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받으시는 이치와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7:18, 22, 27, 고전15:24).

 

끝으로 성막의 뜰에 성물을 배치하고 울타리와 회막 문을 설치하다. 그 설치의 순서가 말해주고 있는 성막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조건들, 성화와 대속의 삶(40:29-33, 42:1-6, 9-10).

 

성막의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이게 됩니다(40:29-30). 그리고 바깥에 직사각형 울타리가 설치됩니다(40:33a). 물론 울타리 동쪽에는 기둥이 세워지고 회막 휘장이 매달리게 됩니다(40:33b). 그렇다면 성막의 뜰에 배치가 되고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떠한 이방족속이나 백성들이 회막의 문을 통과하여 성막을 직접 바라볼 수 있게 될까요?

첫째로, 번제단의 기능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속죄의 제사를 먼저 드립니다. 둘째, 다음에는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사실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죄인들입니다(3:10). 감히 거룩하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먼저 제물을 바치고 피의 제사로써 속죄를 해야만 합니다(29:35-36).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가 있게 됩니다(29:38, 4:16-17). 그러므로 속죄의 제사를 먼저 드리고 제사장으로 일할 수 있는 직분의 위임을 확실하게 얻게 된다고 하는 것은 이제 제사장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공생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대속의 제사를 드려주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한 존재가 제사장이며 그 제사장의 직분이 바로 타인을 위하여 대속의 제사를 드려주는 것입니다. 그 타인의 범주에는 먼저 자신의 동족이 속합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민족이 속하게 됩니다.

둘째로, 제사장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기 전에 반드시 물두멍의 물로써 씻어야만 합니다(40:31-32). 그것은 정화를 의미합니다.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성막을 출입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한 관례가 이방족속을 제사장으로 만드는 일에도 적용이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족속들을 성도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많이 데려오도록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66:20). 그러면 그 가운데 제사장을 만들어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레위인으로 삼고자 하십니다(66:21).

바야흐로 이스라엘 회중이 이방족속을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성막으로 데리고 옵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회막의 문을 들어서고 있습니다(40:33). 그들은 어떠한 절차를 밟아야만 성막에 임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볼 수가 있을까요? 한 마디로, 번제단과 물두멍의 절차를 밟아야만 합니다(40:29-32). 번제단은 훗날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로 바뀌고 있습니다(1:29, 7:27-28). 물두멍은 세족식의 의미로 넘어가게 됩니다(13:4-5). 그렇다면, 회막 문을 들어선 이방인들이 성도의 삶을 살아가자면 대속의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 중보자로서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42:9-10, 12:1). 동시에 제사장이 물두멍의 물로써 몸을 씻듯이 세속의 때를 벗겨내는 성화의 일에도 진력을 해야만 합니다(42:1-6, 12:2).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그 성품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가 되어야만 합니다. 옛날에 세상적으로 좋아하던 습관과 버릇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 또는 제사장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은 깨끗하게 청산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더 이상 실족시키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