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56강(출39: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12. 10:40

출애굽기 강해 제156(39: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29()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모세의 옷을 만들지 아니하고 제사장의 옷을 만들고 있는가?(39:1-7)

 

애굽 제국의 치하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해온 민족의 지도자는 모세입니다(12:37:42, 19:1-3). 여호와 하나님이 미디안 땅 호렙 산에서 양치기 모세를 불러서 그에게 민족해방과 출애굽의 사명을 부여해주었습니다(3:10-12).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세를 뒷받침해주었습니다(4:1-9, 12:29-32). 그 결과 모세는 애굽의 황제와 귀족들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족장들과 장로들 앞에서 마치 하나님과 같이 권세가 있는 두려운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4:16, 11:3, 34:30).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권세를 보여주고 있는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의 옷을 먼저 짓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출애굽기 어디에서도 모세의 옷을 지어 주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온통 제사장들의 옷을 지었다는 기록들입니다(28:1-43, 39:1-31). 그리고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론의 예복은 호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열두 지파를 상징하고 있는 열두 종류의 보석이 흉패에 부착이 되어 있고 큰 보석 두 개가 양쪽 어깨 견대 위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28:9-30, 39:6-7, 10-14). 이스라엘의 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 비싼 옷을 입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사장들의 옷과 대제사장의 예복을 짓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출애굽의 역사와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일회성을 지니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에 불과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능력이 터져 나온 큰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고 역사가 흐르고 나면 먼 훗날 후손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버릴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의 의미는 무척 중요합니다. 결코 시간의 흐름 속에 매몰되어 버려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사건 속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고 계시는 거룩한 삶의 모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내 산 앞에서 출애굽의 목적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4-6),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19:7-8).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자신이 먼저 거룩하게 되며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대속의 제사를 드려줄 수 있는 제사장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그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이 맡아서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막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지성소와 성소를 거룩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27:20-21, 28:1, 29:29-30, 35-37, 42, 30:7-10).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백성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인물이 모세입니다. 그는 지성소 증거궤 속에 보관이 되고 있는 돌판을 전해주었습니다(34:28-29). 그리고 대제사장 아론이 일년 가운데 하루 지성소에 출입을 하지만 모세는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상대방입니다(30:10, 33:11, 12:6-8). 더구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줄기차게 올렸던 인물입니다(32:41-14, 33:12-13, 34:9).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대제사장의 시초는 모세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을 지으면서 아론과 제사장들의 예복을 짓기에 앞서서 모세의 예복을 짓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조치를 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의 목적이 제사장나라의 탄생이라면 그것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나 아론이라는 개인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수명이 다하면 이 땅에서 사라질 운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후손들이 제사장나라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한 마디로, 개인전속적인 제사장이 아니라 제도전속적인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사장의 직분을 무리 없이 세습하게 하거나 승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성막의 완성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제도적으로 맡을 수 있는 가문이 탄생을 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가문입니다(28:1). 그들이 앞으로 영원토록 제사장의 직분을 행할 것입니다(29:29). 대제사장의 예복과 제사장의 옷은 그들을 위하여 만들어지며 그 예복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대대로 승계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 명치유신(明治維新)의 원로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868년 명치유신을 일으킨 주역들은 일본 서남방 지방정부의 하급무사들입니다. 그들이 막부를 몰아내고 그때까지 이름만 유지하고 있었던 천황을 옹립하면서 일본열도의 근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막부의 군대를 천황의 군대로 만들고 일본 백성들을 천황의 신민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이 병행되었습니다. 그것은 제도적인 변화와 의식의 변화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일본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유신작업을 수행했던 원로들이 거의 개인적인 수명을 다하고 사라져가고 있는데 일본의 산업화와 백성들의 의식의 근대화는 아직 요원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제도적인 후계체제를 고안했습니다. 그것은 고향의 영재들을 선발하여 동경제대 법정대학에서 공부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로들을 보좌하면서 정치를 배우게 한 것입니다. 그들이 원로들의 뒤를 이어서 일본의 정계를 이끌고 갔습니다. 그 전통은 현대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똑 같은 작업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수명이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예복을 승계하여 입을 수 있는 가문이 탄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제사장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성막에 여호와의 임재를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인식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레위인들이 가르쳐주고 있는 율법을 배우고 실천해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제도적으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을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하게 하는 방법론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담고서 제사장의 옷과 대제사장의 예복이 성막의 일꾼들에 의하여 경건하게 제작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9:1-7).

 

성막의 일꾼들이 제사장의 옷과 대제사장의 예복을 만들다(39:1-7)

 

  첫째로, 모세가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성소에서 섬길 때 입을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해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39: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제사장의 옷과 대제사장 아론의 옷을 만들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36:1-2’절을 참고하면 (1)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이며 (2)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은 자들이고 (3)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옷은 아무나 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 가지 자격을 갖추고 있는 기술 기능인이어야만 합니다. 첫째,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총명을 얻은 자입니다. 셋째, 그 일을 하고자 자원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재주는 있으나 독불장군인 자,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사람의 지혜를 더 신뢰하는 자, 억지로 하는 자는 모두 제사장의 옷을 만들기에 적합하지가 않다고 하겠습니다. 제사장의 옷을 짓는 일만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성막의 일에 있어서도 알맞은 성품과 자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이나 속옷과 기본 겉옷은 모두 같습니다;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28:4)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첨부한 그림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제사장의 옷을 정교한 옷’(39:1b)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색 실로 정교하게 짜고 있기 때문입니다(39:1a). 그리고 대제사장의 예복에 대해서는 거룩한 옷’(39:1c)이라고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봇의 흉패와 견대에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28:9-12, 15-26, 39:6-7, 10-15)을 붙이고 있으며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28:36, 39:30)이라는 패를 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모세는 에봇과 흉패를 직조하는 일은 한 사람의 기술자가 담당을 했다고 적고 있으며 두 개의 호마노 세공은 여러 사람이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9:2, 6).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최고 수준의 직조기술을 지니고 있는 자는 당연히 오홀리압입니다(38:23). 따라서 그가 긴 조끼에 해당하는 에봇을 혼자서 삼색 실과 금실 그리고 세마포 실로써 직조한 것입니다(39:2). 금실을 제조하여 삼색 실 및 세마포 실과 함께 에봇을 짰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39:3). 그 다음에 같은 요령으로 견대를 짜서 에봇과 연결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9:4-5). 그리고 오홀리압은 보석세공의 기술을 지니고 있는 최고 기술자 브살렐의 도움을 받아서 두 개의 호마노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기고 그것들을 에봇 견대(肩帶, 어깨받이) 윗부분에 달았을 것입니다(39:6-7). 따라서 두 사람의 협동작업이므로 그들’(39:6)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습니다.

 

제사장복(이하 그림출처; ‘기쁨조미료의 블로그)

 

여기서 뒷 사람이 입고 있는 것이 제사장의 복장이며 앞 사람이 입고 있는 것이 대제사장의 예복입니다”.

(역시 대제사장의 예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