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53강(출38: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11. 21:44

출애굽기 강해 제153(38:1-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26(주일)

 

번제단과 물두멍은 왜 성소 바깥에 배치를 하고 있는가?(29:42-43, 30:20, 40:6-7)

 

첫째로,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막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곳을 출입할 수 있는 자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렇다면 일반백성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이 성막의 뜰에 배치하고 있는 번제단에서(40:6) 제사를 드림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29:42-43).

죄가 많고 허물이 많은 인간들이 감히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함부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5:8). 만약 피조물인 인간이 무작정 하나님의 존전에 뛰어들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19:12). 제사장들도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뜰에 있는 물두멍의 물로써(40:7) 먼저 깨끗하게 씻어야만 합니다(30:20a). 뿐만 아니라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화제의 제사를 드릴 때에도 우선적으로 수족을 씻고서 행해야만 합니다(30:20b-21). 특별히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선택이 되고 있는 제사장들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일반백성들이 성소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러한 죽음의 불행을 방지하기 위하여 번제단과 물두멍을 성소의 바깥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진면목을 보게 되면 죽게 된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33:20). 그 이유는 태양보다도 더 강한 창조주의 영광의 빛을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마주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21:23, 22:5). 육체가 모두 녹아버리게 될 것입니다(벧후3:12). 그러므로 오직 영적인 눈으로만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3:3-5). 그리고 사람의 음성으로 전해져 오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눈이 갑자기 멀어져 버린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만나고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나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9:3-5).

둘째로, 성소를 제물과 물로 어지럽히지 아니하고자 한 것입니다.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제물의 기름진 부위를 불로써 태우는 것입니다(29:13). 그 고기가 타는 냄새와 연기가 지독합니다. 그것을 밀폐된 공간인 성소에서 행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성소에서는 거룩한 향만을 태울 수가 있습니다(30:6-9).  성소에 배치하고 있는 분향제단에서 사르게 되는 향의 연기와 냄새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16:12-13). 그와 마찬가지로 향기로운 성도들의 간구와 중보의 기도가 하나님의 전에 상달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23, 5:8). 요약해보자면, 제물을 태우게 되는 번제단은 성소 바깥에 두며 반면에 향을 태우는 제단은 성소 안에 두도록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물두멍을 성소에 넣어두고서 제사장들이 그곳에서 손과 발을 씻는다고 하면 오염된 물이 성소를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성막 안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전하기 위해서는 번제단과 물두멍을 성막의 뜰에 배치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40:6-7).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제사를 드리고 자신의 몸을 청결하게 해야만 할까요?(15:10-17, 35:1-5, 19:10-11)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호렙 산 불꽃 속에서 부르실 때에 그의 신을 먼저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3:3-5). 하나님을 떠나서 제 마음대로 세상에서 살아가던 몸과 마음을 그 대목에서는 모세가 신고 다니던 신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원죄와 관련해서 생각을 해보면, 아담부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거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2:20-25). 하지만 피조물이 하나님같이 지혜롭게 되고자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그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3:6, 24). 그때부터 실락원(失樂園, the lost paradise)에서 세상적인 삶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만나자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먼저 먼지가 묻은 신발을 벗듯이 죄와 허물을 청산해야만 합니다. 당사자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이 죽고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을 들은 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가 있은 다음에 예배가 있게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치를 확대해보면, 십자가의 대속의 제사가 있는 다음에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의 방법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거룩하신 성령님이 그때부터 성도에게 내주하여 역사하게 되는 영적인 삶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8:1-15). 그것이 새 언약의 시대입니다. 완전한 십자가의 제사가 임하고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막과 성전이 믿는 자의 속사람 속에 자리를 잡게 되는 시대의 탄생인 것입니다(2:19-22, 4:21-26, 7:27-28).

 

브살렐이 번제단과 물두멍을 제작하다(38:1-8)

 

브살렐이 아카시아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38:1a). 번제단의 크기는 길이 5규빗 곱하기 너비 5규빗 곱하기 높이 3규빗입니다(38:1b). 면적이 가로 세로가 모두 2.25미터인 꽤 큰 정사각형입니다. 그리고 높이도 1.35미터나 됩니다. 그리고 제일 위 네 모퉁이에는 뿔을 하나씩 조각하고 있습니다(38:2a). 그리고 번제단 전체를 나무가 보이지 아니하도록 금속인 놋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38:2b). 제물의 피가 제단에 뿌려지게 되면 나무가 썩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예방하고자 아예 놋으로 나무를 완전히 가려버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번제단의 높이가 1.35미터가 되는데 그 사면을 널판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38:7b). 자연히 속이 비게 되며 무게가 가벼워집니다. 운반하기에 쉬울 것입니다. 그 널판을 놋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38:2b). 제단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각 모서리에 고리를 만들고 그것을 양쪽으로 채에 꿰어야만 합니다. 놋으로 고리를 만들어(27:4) 붙인 위치가 전체 높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곳입니다(38:5). 그 정도의 높이 곧 제단의 중간 높이에 놋 그물을 삽입할 수 있도록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38:4-5). 그 그물은 굉장히 편리한 것입니다. 제사가 끝난 다음에는 제단에서 사용했던 도구들을 간편하게 보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38:3-4).

번제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도구들도 모두 놋으로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의 도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제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38:3). 그 모양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여 그려놓은 그림을 찾아서 아래에 첨부를 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브살렐이 물두멍을 놋으로 제작했습니다(38:8). 그것은 한 마디로, 놋 대야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성소를 출입할 때와 제사를 드릴 때에 항상 손과 발을 씻어야만 하기에 그 그릇이 꽤 컸을 것입니다. 비록 그 규모에 대한 직접적인 치수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러하다고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隨從)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38:8). 이미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놋을 예물로 많이 받아 두고 있었습니다(35:24). 그 양이 넉넉한 것이라고 기술 책임자들의 보고까지 받은 바가 있습니다(36:5).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물두멍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놋의 양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브살렐이 회막 문에서 일하고 있는 여인들의 놋거울을 모두 수집하여 충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야뿐만 아니라 그 받침까지 놋으로 제작을 하고 있기에 많은 양의 놋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물두멍의 규모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많은 양의 놋이 소요가 되고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서는 물두멍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베데스다 못을 만들고 상당한 양의 물을 채워두고 있었다는 기록까지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5:2). 물두멍의 크기를 상상하여 그려둔 그림을 찾아서 아래에 첨부합니다.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번제 제물을 바치고 있는 모습 (그림출처; ‘배성수 성지사랑블로그)

 

번제단의 모습(이하의 그림의 출처는 모두 기쁨조미료의 블로그입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의 기구들

 

대야



잿통

고기갈고리

부삽

불 옮기는 그릇 - 오직 성령의 불만 옮겨야지 세속의 불, 불만불평의 불이면 안 됩니다.




 

 

물두멍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는 놋대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