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57강(출39:6-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13. 04:29

출애굽기 강해 제157(39:6-2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30()

 

대제사장의 예복 견대 위 호마노 두 개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새기고 또한 에봇의 흉패에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보석을 붙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28:8-12, 15-29, 39:6-21)

 

한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영원한 기념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그 두 보석(호마노)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보석을 삼되 (대제사장)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28:12), “(대제사장)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28:29).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이 존전에 출입을 할 때마다 그 견장과 흉패의 보석을 보고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열두 지파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출애굽의 목적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제국의 치하에서 해방시키고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시고 계십니다. 드디어 시내 산에서 출애굽의 목적이 다음과 같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19:6).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세상의 만민과 열방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만민과 열방의 대속을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들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구원하여 모두 천국의 백성으로 삼겠다고 하는 선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과연 열두 지파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갔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실패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서 출애굽의 목적대로 제사장나라로 살아가라고 강조하였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19:22-25, 7:51-53). 이상한 선민우월주의에 빠져서 이방인을 멸시했습니다(7:27, 4:9). 이스라엘만이 구원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정의의 나라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서 출애굽의 역사,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할례,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문화 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한 종교와 문화가 없는 다른 국가와 민족은 모두 역사심판의 대상이며 멸망하게 될 따름이라는 주장입니다. 어느 구약의 시대에도 그들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선민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제사장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자각과 부르짖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서 제사장나라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4:17, 8:11-12, 9:11-13, 19:7, 10, 3:13-18, 4:21-24). 그것이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뜻인 복음이며 이른바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열 지파가 참여했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가운데 단 한 차례 새로운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방 갈릴리 출신 선지자 요나에게 동쪽의 이방 땅 니느웨 도시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1:1-2). 그러나 요나는 반대쪽인 서쪽 끝으로 도망을 치기에 바빴습니다(1:3). 선민우월주의에 물든 요나가 하나님의 기대를 정면으로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를 하고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자 그것을 시기했습니다(3:1-6, 4:1-5). 그 결과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이방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처참하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17:6). 남조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도 후반기에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있었지만 미흡했습니다(왕하22:11-13, 23:3-27).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종용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제사장의 나라마저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왕하25:1-7). 그것이 실패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 열두 지파가 다시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마지막으로 작성한 계시록에서 두 가지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구원받는 이스라엘의 수가 144천 명인데 열두 지파로 나누어서 지파당 12천 명이라는 것입니다(7:4-8). 둘째, 종말로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그 열두 대문의 이름이 열두 지파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입니다(21:12). 물론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열두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21:14). 그렇지만 사라진 열두 지파의 이름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리고 이방인 사도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동족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끝까지 기도한 사람입니다(9:1-3). 그가 소위 접붙임이야기를 통하여 이방인과 선민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가지인 열두 지파를 쳐내고 그 자리에 이방인들을 접을 붙였다는 것입니다(11:17a).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진액을 함께 얻는 자가 되었습니다(11:17b).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넘어짐이 이방인들이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충분한 이방인의 수가 구원을 얻고 나면 자연히 선민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구원의 기회가 돌아간다는 것입니다(11:11-12).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섭리이며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33, 36)

 그렇다면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이름 속에는 접붙임을 받게 되는 이방인들의 이름까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입니다. 열두 지파의 이름 속에 새로운 이스라엘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7:15-17).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함께 아론 가문의 대제사장은 사라지고 없지만 오늘 날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주님이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8:1). 이제는 주님께서 새로운 열두 지파의 이름을 그 어깨와 그 가슴에 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이름이 불리어지고 있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이미 천국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되어 보석과 같이 빛나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브살렐이 세공한 보석을 대제사장의 예복을 제작하고 있는 오홀리압이 흉패와 견대에 붙이고 그것을 에봇에 접합시키다(39:6-21)

 

첫째로, 호마노 보석 두 개에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다(28:9, 39:6). 나이 순서대로 6아들의 이름을 한 호마노에, 나머지 6 아들의 이름을 다른 호마노에 새겼다고 합니다(28:10). 그 호마노를 오홀리압이 양쪽 견대(어깨받이)에 달고 있습니다. 그 견대는 대제사장이 걸치게 되는 긴 조끼 곧 에봇의 윗부분입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는 오른쪽이 우선입니다. 예를 들면,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이 이스라엘의 지파로 편입을 할 때에 힘 있는 오른 손을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고 있어서 요셉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48:13-20).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힘있는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고 있다고 베드로가 증언하고 있습니다(2:33). 또한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주님의 자리가 있습니다(110:1). 그것은 모두 첫째가는 자리가 오른쪽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장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호마노를 오른쪽 견대에 달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대제사장의 가슴에는 한 뼘 길이의 정사각형 흉패’(胸牌, the breast piece)를 만들어서 에봇과 연결하고 있습니다(28:15-28, 39:8-9, 15-21). 그 흉패에는 위에서부터 세 개씩 네 줄로 도합 열두 개의 각각 다른 보석이 박혀져 있습니다;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28:17-20), “그것에 네 줄 보석을 물렸으니 곧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 첫 줄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라. 다 금테에 물렸으니”(39:10-13). 그런데 그 배열의 순서가 연장자 위주가 아닙니다. 그래서 단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28: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39:14)고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성막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가 진을 치고 있는 모습과 그들이 행진을 하고 있는 순서가 열두 보석을 배열하고 있는 순서와 일치를 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가부장 족장사회입니다. 정상적이라면 장자가 곧 족장이 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출애굽한 이후 세력의 판도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미 정치적인 권력의 크기가 열두 지파의 서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유다, 르우벤, 에브라임, 단 등 영향력이 큰 네 지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각각 3 지파씩 4군으로 편성되고 있는 진영표와 행군표에 있어서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선두가 유다 지파입니다. 2진의 주장이 야곱의 장남인 르우벤의 후손들입니다. 그렇지만 르우벤 지파는 욱일승천하고 있는 유다 지파의 원로 훌(17:10-12)과 여호수아의 친구이며 유다 지파의 지휘관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14:6-10, 24)의 위세에 눌려서 이미 앞자리를 양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진의 주장은 요셉의 차남이지만 큰 축복을 받고 있는 차남 에브라임의 후손들입니다(48:19-20). 4진은 야곱의 서장자인 단의 후손들이 이끌고 있습니다(30:6-13). 요컨대,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 에브라임 지파, 단 지파의 순서입니다. 그들이 각각 주장이 되면서 두 지파씩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와 같은 형편을 민수기 제2장과 제10장에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보석의 배열순서와 열두 지파와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줄에 있어서 홍보석(유다) 황옥(잇사갈) 녹주옥(스불론), 둘째 줄에 있어서 석류석(르우벤) 남보석(시므온) 홍마노(), 셋째 줄에 있어서 호박(에브라임) 백마노(므낫세) 자수정(베냐민), 넷째 줄에 있어서 녹보석() 호마노(아셀) 벽옥(납달리)입니다”(28:17-20, 39:10-13). 그 순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이동을 할 때 행진의 순서입니다. 그리고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형성하고 있을 때에는 동 남 서 북의 순서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대신에 관련되는 그림표를 찾아서 아래에 첨부합니다. 아무쪼록 깊은 이해에 있어서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흉패는 열두 개의 보석을 지니고 있어서 무겁습니다. 그 무거운 흉패를 긴 조끼인 에봇에 바로 접합을 시키면 에봇의 모양이 구겨집니다. 그러므로 흉패의 무게를 일단 어깨에 전달하도록 먼저 견대와 연결을 하고 있습니다(39:15-18). 견대에 금테를 만들고 흉패에 고리를 만든 다음에 금 사슬로 테와 고리에 꿰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흉패를 에봇에 연결을 하고 있습니다.  흉패의 양끝과 에봇의 띠 위 양쪽에 각각 금 고리를 만들고 있습니다(39:19-20). 그리고 청색 끈으로 흉패의 고리와 에봇 띠의 고리를 묶어 줌으로써 흉패를 에봇에 부착하고 있는 것입니다(39:21). 띠 위에 부착함으로써 에봇이 구겨지는 일을 사전에 더욱 세심하게 예방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모세의 설명이 참으로 자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의 예복과 그 흉패에 대해서 관심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장과 보석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대제사장의 복장(이하 그림의 출처는 오리지널 스톤의 블로그입니다)

 

 

 

 

[28:15-30] 흉패9)(6:14b) - 사랑과 정의의 재판장(The Loving and Justice one)

첫째
(성막 동편진)

홍보석

황옥

녹주옥
빨강색 금색 녹색
Sardius Topaz Carbuncle
둘째
(성막 남편진)


석류옥

남보석 홍마노
연녹색 청색 연황색
Emerald Sapphire Diamond
셋 째
(성막 서편진)



호박

백마노

자수정
오렌지색 여러 가지 색 자색
Lingure Agate Amethyst
넷째
(성막 북편진)
녹보석
호마노

벽옥
연두색 , . , . 갈색
Beryl Onyx Jasper

[규격] 흉패는 가로 세로 한 뼘(25cm)의 정사각형이다.

 

 

진을 치고 있을 때의 모습 (이하의 그림표는 이성원 목사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민2장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진영을 그려본다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됩니다.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