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히스기야(손진길 작성)

소설 히스기야2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4. 6. 06:39


소설 히스기야23(작성자; 손진길)

 

사실 유다왕국의 국고와 병기고에 들어 있는 금은패물과 신식무기들은 라기스 요새의 성주인 삼손 장군이 히스기야왕에게 바친 것이다. 산헤립왕은 라기스 요새를 3년간 포위하여 공격하는 동안에 1년이상 공사하여 그 남서면에 토성을 쌓았다. 더구나 앗수르제국 황제의 위엄을 보인다고 하는 의미에서 토성의 정상에 작은 황궁을 지었다.

산헤립왕의 별궁이 그 토성에 있기에 앗수르의 군대는 그것을 알기 쉽게 자신들의 라기스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가나안 주변의 모든 속국들은 예물과 조공을 황제가 있는 그 라기스성에 바치라고 황명으로 지시했다. 그 결과 산헤립의 토성 별궁에는 금은패물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전 6994월 유월절 무렵에 그만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의 원정군이 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전멸하고 말았다. 그 급보를 들은 산헤립왕은 도망을 치기에 바빴다. 그는 아깝기는 하지만 그 토성의 별궁에 금은패물을 그대로 놓고서 피신하고 만다. 그것을 수거하여 라기스 요새의 성주인 삼손이 전승의 기념으로 예루살렘의 히스기야왕에게 바친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왕은 전쟁의 승리를 의미하고 있는 그 전리품을 여호와의 성전에 일체 바치지 아니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치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그 많은 금은패물을 전부 자신의 궁궐에 지어져 있는 곳간 깊숙이 보관하고 있다.

오랜 전란으로 말미암아 가난뱅이가 되고 많이 굶주리고 있는 신민들에게 조금씩 그 금은보화를 풀자 그의 권세는 대단히 견고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신민들이 히스기야왕을 구국의 영웅이며 구세주라고 칭송하는 소리마저 예루살렘성에서 들려온다.

그러한 이기적인 정치를 전쟁 후에 계속 펴고 있는 히스기야왕이다. 그는 벌써 여호와의 도우심을 잊어버리고 그 모든 기적을 자신의 기도 덕분이라고 대내외에 크게 선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세속적인 우상화작업임을 바벨론에서 온 사신단장 모르단이 단숨에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모르단히스기야왕을 잘 요리하고 있다.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고 싶어서 몸살이 나고 있는 그러한 위인에게는 교언영색과 그럴듯한 찬양을 올려드리면 그만이다.

특히 먼 곳에서 온 사절단이 예루살렘의 영광에 취하여 찬양과 영광을 히스기야왕에게 돌린다고 하면 그것은 왕권을 크게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그 옛날 솔로몬대왕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일례로, 아라비아 서남단에서 온 시바의 여왕이 그러했던 것이다(왕상10:4-7)

바벨론의 뛰어난 재사인 모르단은 세치의 혀만 가지고 능히 히스기야왕을 추겨 세우고 실리를 취할 수가 있는 그러한 인물이다. 그 결과 히스기야왕은 자신의 부강함을 자랑하기 위하여 그만 중신들과 함께 바벨론 사절단에게 예루살렘의 곳간과 병기고를 전부 보여주고 마는 것이다.  

한편, 라기스 요새를 공격하고 있던 산헤립왕의 군대와 미스바 요새를 공격하고 있던 앗수르의 군대가 전부 철수하는 과정에서 유다왕국의 정예병의 기습공격을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몸을 가볍게 하여 도망치고자 많은 병장기를 버리고 간 것이다. 그것을 수거하여 예루살렘의 병기고에 비치하고 있다.

그후 더 많은 앗수르의 신식무기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온다. 그 이유는 블레셋의 도시국가인 에그론아스다롯을 공격하던 다르단 에르가르의 군대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유다왕국 기마대의 기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다국적군을 물리치고 크게 전리품을 얻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14:14-20). 마찬가지로 유다의 기마대가 앗수르 군사 19만명을 추격하여 승리한다. 그 결과 앗수르의 신식병장기를 많이 얻게 된다. 그것을 히스기야왕에게 바친 것이다.

하지만 히스기야왕은 이제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자신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고 회수한 것들인데 그것을 히스기야왕이 사유화하고 만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러한 금은패물과 신식무기를 전리품으로 유다왕국에 주었다고 하면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왕인 히스기야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로, 금은패물을 가지고 주변국에서 양식을 사와서 전쟁 후 기근에 시달리고있는 백성들부터 구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전혀 없는 히스기야왕이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궁내대신에게 맡겨서 왕궁내 곳간에 두고서 금은패물과 보물을 감상하기에 바쁜 인물이다.

둘째로, 신식무기류는 당연히 상비군에게 지급하여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유다왕국에는 정예병인 상비군이 8개 군단이나 있다. 하나의 군단병력이 24천명이므로 전체적으로 국왕이 통수하는 병력이 20만명에 가깝다.

그 정도의 병력을 앗수르군에게서 얻은 신식무기로 무장하게 하면 굉장히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왕은 그러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지 아니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군부가 힘이 강해지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군들이 언제 자신을 배신할지 모른다. 특히 예루살렘에는 그의 아래 동생이 있고 헤브론에는 막냇동생이 있다. 그들을 업고서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히스기야왕은 오로지 자신의 친위대 곧 근위대장 스바냐 장군이 지휘하고 있는 군사들에게만 신식무기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한 배경을 자세하게 모르고 있는 자들이 바벨론왕 브로닥발라단이 보낸 사절단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히스기야왕이 친히 예루살렘왕궁에 있는 국고에서 금은패물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란다. 므르단은 보물의 양이 바벨론성의 것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훗날 얻으리라고 작심한다.

사절단장 모르단과 통역 느보벨이 예루살렘에 있는 병기고를 보고서는 더 놀란다. 앗수르제국이 자랑하고 있는 신식무기류가 그곳에 잔뜩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얻어 가서 바벨론의 독립군에게 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단은 그것이 부러운 만큼 장차 유다왕국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고 있다.

구경을 실컷 시킨 다음에 히스기야왕이 바벨론의 사절단장인 모르단에게 말한다; “짐은 앗수르 산헤립왕을 겁내지 않는다. 그가 침입한다면 다시 패배를 맛볼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그대는 엘람으로 돌아가서 브로닥발라단 왕에게 전하라. 우리는 같은 적을 가지고 있으니 벌써 동맹관계인 것이다”.

모르단은 가지고 온 것보다 더 많은 선물을 얻어서 편하게 엘람으로 돌아간다. 그가 떠나고 나자 갑자기 선지자 이사야히스기야왕을 방문한다. 그리고 직선적으로 묻는다; “멀리 바벨론에서 온 사절단에게 전하께서는 궁궐의 보물과 예루살렘의 병기고를 개방하여 모두 보여주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히스기야왕은 벌써 선지자 이사야가 모두 알고 왔으므로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사실입니다. 바벨론왕은 우리와 함께 앗수르의 산헤립왕을 대적해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짐이 그의 사신에게 우리의 국력을 눈으로 보여주었으니 그가 힘을 얻어서 먼저 앗수르를 칠 것입니다. 그러면 산헤립왕이 동남쪽의 전선에서 바빠질 것이므로 서남쪽에 있는 우리 유다왕국은 그만큼 안전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하나만 생각하시고 둘을 생각하지 못한 단견입니다. 예루살렘성을 사방의 적들이 정복하고자 하는 이유는 화려한 궁궐과 성전 그리고 뛰어난 인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의 병기의 수준까지 전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보여주고 말았으니 그들은 훗날 예루살렘을 집어삼키고자 할 것입니다. 더구나… “.

잠시 히스기야왕의 얼굴을 쳐다본 다음 이사야 선지자가 천천히 말을 잇는다; “전쟁의 승리와 책략은 모두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나라 앗수르제국을 이긴 비결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도우심 덕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중요한 사실을 전하께서는 벌써 잊어버리고 계십니다… “.

잠시 숨을 쉬고서 늙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전하께서는 마치 유다왕국의 군대가 힘이 세어서 외적을 물리친 것으로만 여기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고 그 도우심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로지 여러 나라에 유다의 국력을 자랑하기에 바쁘시니 앞으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

그 말을 듣자 히스기야왕의 안색이 달라진다. 그가 늙은 이사야 선지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그때 그의 귀에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똑똑하게 들리고 있다; “여호와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한 유다왕국은 바벨론의 침입으로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왕가의 후손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 그들에게 자랑한 모든 예루살렘의 보물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말 것입니다”(왕하20:17-18, 39:6-7 의역).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히스기야왕은 대담한척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한다; “그것이 언제 발생하게 되는 일입니까?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왕국을 잘 다스리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탈이 없는 것이 아니요?... “.

그 말을 듣자 선지자 이사야가 답변한다; “국왕이란 자신의 왕국의 미래를 위하여 백년대계를 마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더구나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유다왕국의 왕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적극 실천함으로써 제사장나라의 기반을 굳건히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그러한 노력이 전혀 없으시니 그것이 비극입니다”.

그 말을 들은 히스기야왕이 말한다;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은 먼 훗날의 역사이군요. 짐은 내가 죽은 다음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짐의 유다왕국이 강성하고 짐이 쾌락과 평안을 누리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훗날의 역사는 미래의 세대의 몫이지요. 짐은 그것까지 참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왕하20:19,  39:8의역).

그러한 대답을 듣자 갑자기 선지자 이사야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뜨고서 아무 말이 없이 히스기야의 궁궐을 떠나고 만다. 다시는 그가 예루살렘 왕궁으로 들어가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글로 적는 일에 매어 달린다.

저작활동을 하는 도중에 선지자 이사야가 주름이 굵어진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이제 다윗왕가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 제사장나라 유다왕국의 백성들에게도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 여호와께서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다윗왕가의 유다왕국마저 이렇게 타락하고 말았으니 사람들이 스스로 구원을 얻는 길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구나. 그러니… “.

후유한숨소리와 함께 이사야의 독백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하루 속히 여호와께서 보내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구원자 그리스도로서 직접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다. 나같은 선지자가 말씀을 외치는 시대는 그분이 오심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 일을 담당할 것이다… “.

선지자 이사야가 대선지서를 작성하고 있는 가운데 유다왕국에서는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왕의 남은 행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