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히스기야25(작성자; 손진길)
히스기야왕은 왕자 므낫세를 세자로 삼는 의식을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가 떠들썩하도록 거창하게 치룬다. 6세에 불과한 꼬마를 국본으로 세운다고 법석을 떤 것이다. 그후 히스기야왕은 6년을 더 살면서 예루살렘에서 유다왕국을 다스리게 된다. 그 동안에 그가 행한 일을 살펴보면 다음 세가지로 정리가 된다;
첫째로, 친척인 엘리야김의 손녀딸을 세자 므낫세의 배필로 일찍 간택한 것이다. 그렇게 히스기야왕은 세자 므낫세와 왕족인 엘리야김의 집안을 혼인으로 묶는다. 그 의미는 궁내대신 엘리야김으로 하여금 열심히 다윗왕의 후손들을 설득하여 오로지 세자 므낫세만을 지지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로, 군부대신 엘리사마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 것이다; “짐은 그대의 헌책을 받아들여서 병기고에 있는 전리품을 상비군들에게 지급하고자 하오. 그것으로 상비군의 무력을 증강하도록 하세요. 그 대신 군부대신을 중심으로 군부가 한마음으로 세자 므낫세의 권력을 튼튼하게 하는데 앞장을 서 주세요”.
그 말을 듣자 명장 출신인 군부대신 엘리사마가 대답한다; “평생을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지키기 위하여 전장에서 생활한 소신입니다. 그러므로 국왕 전하께서 좋은 무기류까지 제공하여 주시니 조국을 지키고 세자 저하를 지키는 일에 충심을 다할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이 흡족한지 늙은 대신 엘리사마의 두 손을 잡는다.
셋째로, 주전 691년과 689년에 히스기야왕이 2차례나 전방을 시찰한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라기스 요새로 먼저 향한다. 그곳에서 성주이며 명장인 삼손을 만난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믿음직한 기병대와 정예병들의 모습을 히스기야왕이 보고서 무척 기뻐한다.
그래서 함께 사열을 받고 있는 성주 삼손에게 말한다; “삼손, 그대는 10년전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명장이며 성주요. 이제 외적을 막고 조국을 지키는데 있어서 마지막 열과 성을 다해주세요. 짐은 그대의 충심만을 믿고 있겠어요”.
그 말을 듣자 유달리 애국심과 애족정신이 강한 삼손 성주가 대답한다; “전하 소신이 살아 있는 한 라기스 요새를 철통같이 지킬 것입니다. 해변길로 들어오는 외적들은 이곳에서 모두 막아낼 것이니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다음에 히스기야왕이 시찰한 전방이 세겜성이다. 요나단 성주가 3개 군단 7만 2천명의 병력으로 앗수르의 남침을 막고 있다. 30리 정도 떨어져 있는 사마리아성에서 앗수르의 총독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것을 항상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세겜성에서는 잇대 장군의 기마대가 자주 출병하여 다메섹에서 남진하는 앗수르의 군사가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그렇게 군사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다메섹에서 시리아 남부를 통치하고 있는 앗수르의 왕자 사레셀의 군대가 감히 남진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직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히스기야왕은 참으로 흐믓하고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2년 마다 한번씩 전방시찰을 하고 유다의 군사들을 격려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외곽에 거주하면서 대선지서를 저술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다음 3가지 점에서 참으로 히스기야왕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히스기야왕은 전반기의 통치에 있어서는 우상을 타파하고 여호와신앙을 바로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앗수르의 침략군을 물리치고 나자 그만 변하고 말았다.
그 자신이 여호와께 눈물로 기도하면 죽을 병도 낫고 수명연장도 받으며 또한 침략군마저 물러가고 만다는 이상한 의인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홍보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예루살렘과 유다왕국의 백성들은 히스기야왕을 마치 현인신으로 여기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 여호와 앞에 죄인에 불과한 인간 특히 여호와의 진실한 종들이 절대로 가져서는 아니되는 관념이다. 그런데 그만 히스기야왕이 그러한 잘못된 신앙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그는 여호와의 이적으로 적을 물리친 것을 전부 자신의 공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을 유다왕국의 국왕이 가로챈 패역함인 것이다.
둘째로, 전란으로 고생한 백성들에 대하여 어떠한 구제활동이나 도움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이 지방의 성읍과 촌락을 앗수르의 먹이감으로 던져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란이 끝나자 앗수르에게 부역하였다고 하면서 많은 백성들을 돌로 쳐죽이고 말았다.
한마디로, 히스기야왕과 그의 신하들이 얼마나 뻔뻔한 지 모른다. 전란을 초래한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인정할 줄을 모른다. 모든 허물을 오로지 힘이 약한 백성들의 탓으로 돌리고 만다. 그래서 억울하게 유다왕국에서 죽어간 백성이 부지기수이다.
힘없는 백성들이 전란으로 많이 죽었다. 지방의 성읍과 촌락을 지키고 있는 군사를 히스기야왕이 예루살렘과 몇개의 요새지만 지키도록 빼내어갔으므로 마치 빈집에 강도가 든 형세이다. 앗수르 침략군에게 전국의 성읍과 촌락들이 그대로 짓밟히게 된다. 그래서 사상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더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는 히스기야왕과 그의 신하들이 앗수르에게 동조한 부역자를 찾아내어 전부 인민재판에 붙이고 있다. 고향사람들이 돌로 마구 쳐죽이게 만들고 있다.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민족반역자’라고 낙인을 찍고 그들에게 돌을 던져야만 한다.
그렇게 백성을 무시하고 지배의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는 왕조가 과연 계속하여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선지자 이사야의 한숨이 깊어만 간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호와의 보응으로 훗날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다윗왕조 유다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셋째로, 세자 므낫세가 히스기야왕의 뒤를 이어서 12세의 어린 나이로 유다왕국의 새로운 국왕이 된다. 그때가 주전 686년이다. 그런데 므낫세의 모친인 헵시바에게 여호와신앙이 전혀 없다.
히스기야왕은 도중에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이상한 의인사상을 가지게 된 인물이다. 그와 달리 므낫세왕의 모친인 헵시바는 애초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지 못하고 그 뜻을 헤아리지를 못하는 그러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므낫세왕은 왕자시절에 여호와신앙에 대한 교육을 받은 바가 없다. 더구나 그러한 신앙의 모범을 부모로부터 배운 바가 없다. 그 대신에 이상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두가지나 된다; 하나는, 자신은 특별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예루살렘의 왕궁에서 태어나 자란 유일한 왕자이다. 그야말로 하늘이 낸 유다왕국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왕국의 모든 것은 자신의 재산이며 종들인 것이다. 자신은 그들의 주인이며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자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 군주의 위엄을 세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잘못된 습관이 성인이 되고 나자 더욱더 확고해지고 만다. 그 결과 예루살렘성에서는 므낫세왕의 흉포한 성격 때문에 무죄한 자의 피가 흘러 넘치게 된다(왕하21:16).
그와 같은 괴물을 왕으로 세운 자가 히스기야왕이다. 따라서 훗날 므낫세왕의 손자인 요시야왕이 죽기 살기로 13년간 우상문화를 타파하고 유월절을 시행하지만 역부족이다.
성군 요시야가 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나자 그 뒤를 이은 3명의 왕자와 1명의 손자가 모두 여호와신앙을 계승하지 못하고 만다. 그 결과 주전 586년에 기어코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멸망이 역사 가운데 임하고 마는 것이다.
그 이유를 달리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다윗왕조의 왕들의 신앙수준이 바로 그 백성들의 신앙수준이 되고 있다. 따라서 왕과 백성들이 함께 여호와의 역사삼판을 받고 만다. 확대하여 말하자면,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왕과 신민들이 여호와신앙에서 이탈하여 어떠한 패망을 맞이하고 말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모든 이방나라의 영적인 타락과 죄악 그리고 멸망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거울이 되고 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히스기야왕이 죽고 나자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비유의 말씀으로 후세에 전하고 있다; “히스기야왕은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 아니한 다윗왕조의 국왕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인 헵시바도 여호와를 남편처럼 중히 여기며 영적으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오로지 권력에 취하여 세상적으로만 살아간 여인이다. 그 때문에 그의 아들이 제사장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견인차가 되고 만 것이다”(사62:4 참조).
선지자 이사야가 모세오경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들을 낳고 있는 여인들의 신앙고백이다. 예를 들면, 비록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아담의 아내 하와가 아들 카인을 낳고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4:1).
그와 같은 특이한 신앙고백이 믿음의 여인 사라, 리브가, 레아, 라헬 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창21:6-7, 25:21-23, 29:32-35, 30:23-24). 같은 맥락에서 먼 훗날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신앙고백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그와 같은 믿음을 유다왕국에서 발견하지 못한 선지자 이사야의 깊은 한숨이 아직도 히스기야왕의 행적과 함께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구약 히브리정경에만 들어 있는 역사서와 선지서의 내용에 그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뜻과 그 역사섭리는 영적인 것이므로 피조물인 인간과 자연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적용이 되는 그러한 영원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그리고 여러 세상만민에게 그대로 실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히스기야왕의 행적과 그에 대한 이사야의 기록이 오늘날에도 살아서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에 비추어 히스기야왕의 행적을 살피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신앙생활이 오늘날에도 참으로 요청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대미).
'소설 히스기야(손진길 작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히스기야24(작성자; 손진길) (0) | 2020.04.07 |
---|---|
소설 히스기야23(작성자; 손진길) (0) | 2020.04.06 |
소설 히스기야22(작성자; 손진길) (0) | 2020.04.05 |
소설 히스기야21(작성자; 손진길) (0) | 2020.04.04 |
소설 히스기야20(작성자; 손진길) (0) | 202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