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히스기야(손진길 작성)

소설 히스기야2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4. 4. 04:30


소설 히스기야21(작성자; 손진길)

 

브로닥발라단의 전략이 통한 것일까? 바벨론성에서 내부적으로 반란이 일어난다. 바벨론성을 다스리고 있던 산헤립 황제의 장남 아슈르나딘슈미 왕자가 봉기를 진압하려고 나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실전에 약하여 역부족이다. 따라서 산헤립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진압한다. 그리고 장남을 바벨론왕으로 봉한다. 그때가 주전 698년이다.

   4년후에는 엘람 지역에서 바벨론의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브로닥발라단이 세력을 규합하여  바벨론성으로 쳐들어온다. 이번에도 바벨론왕인 아슈르나딘슈미가 제대로 대응하지를 못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산헤립왕이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엘람 지역을 아예 정벌하고자 나선다.

그러나 바벨론성에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벨론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결사단체가 연합하여 내부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기습적으로 왕궁을 점령하고 바벨론왕 아슈르나딘슈미를 사로잡고 만다.

황제의 첫째아들이 바벨론 토착세력에게 포로가 되고 나자 휘하의 장군과 장수들이 우왕좌왕한다. 그 틈에 엘람에서 들어온 바벨론의 망명왕 브로닥발라단이 바벨론성에 입성하여 갈대아왕조의 바벨론왕으로 즉위하고 만다.

브로닥발라단이 바벨론성에서  큰소리를 친다; “만약 산헤립왕이 바벨론성을 치고자 나선다면 우리는 첫째왕자 아슈르나딘슈미부터 죽이고 말 것이다. 그러니 알아서 자중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벨론의 독립을 인정하라. 우리는 앗수르의 속국이 아니다”.

산헤립왕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중신들과 협의를 거듭한다. 하지만 첫째왕자가 적의 포로로 잡혀 있기 때문에 대신들이 함부로 의견을 개진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본 산헤립왕이 결단을 내린다; “짐은 아직 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있소. 짐은 적에게 성을 빼앗기고 포로가 되는 그런 무능한 아들을 세자로 세우고 싶지가 않소. 그러니  바벨론성을 수복할 준비를 서두르도록 하시오”.

그러한 출전명령을 내리고 있는 산헤립왕의 심정은 어떠한 것일까? 전장에서 황제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니느웨 황궁에서 앗수르 출신인 제1황후가 듣게 된다. 그녀가 첫째왕자 아슈르나딘슈미와 넷째왕자 에살핫돈의 모친이다. 그녀가 울면서 전령을 보내어 바벨론 지역에 있는 남편 산헤립 황제에게 매어 달린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산헤립왕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바벨론성을 탈환하기 위하여 진격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때가 산헤립왕이 유다왕국에서 패전하고 니느웨로 돌아 온지 6년째가 되는 해이다(왕하19:35-36). 그러므로 주전 694년경인 것이다.

여기서 먼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복잡한 정치적인 사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인종적인 차이를 한번 다음과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원주민은 황인종인 셈족이다. 창세기 제10장의 내용을 참고하면 그 중심부에는 여호와를 섬기는 아르박삿의 후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떠난 셈족인 수메르인들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 셈족인 원주민들을 정복한 인류 최초의 정복자가 창세기 제10장과 제11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함족 출신인 니므롯이다. 그리고 그의 제국의 이름이 바벨탑을 쌓은 소위 바벨제국이다.

둘째로, 바벨탑이 무너지자 니므롯의 바벨제국이 사라지면서 피지배족속인 원주민들이 온세상으로 흩어진다.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농업을 경영하던 그들이 이제는 유목민이 되어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으로 흩어지기를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그들 이주민에 관한 기록을 창세기 제10장과 제11장에서 찾아보면 동쪽으로 이주한 족속이 욕단의 가문이고 서쪽으로 이주한 족속이 데라의 집안이다. 욕단의 후손들이 몽골리안의 한줄기가 되었다고 보면 데라의 집안은 시리아의 일족인 아람이 된다.

셋째로, 유프라테스강 상류에서 번성한 아람의 일족이 큰 강을 타고서 남하하여 메소포타미아 남부인 우르 지역에 다시 들어온다. 우르를 차지하고 그들은 스스로 갈대아인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그 지명을 아예 갈대아 우르라고 부르고 있다(11:31, 훗날에 히브리인들이 창세기를 기록하면서 그 지명을 소급하여 사용하고 있음).

갈대아인들이 바벨론성을 건설하고 갈대아왕조를 세우며 훗날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하여 신바벨론제국을 건설한다. 그 제국의 황금기를 이룩한 황제 느브갓네살이 지상 마지막 제사장나라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주전 586년에 정복한다. 그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과 역사적인 실현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역사서와 선지서들이 다같이 기록하고 있다(왕하20:12-19, 25:1-7, 39:5-8, 39:1-10).

넷째로, 유프라테스강 상류와 흑해 남부에서는 셈족과 야벳족의 혼혈이 생기고 있다. 그 혼혈족속을 크게 보아 아르메니아인들이라고 통칭한다면 그들의 나라가 지역에 따라 아르메니아, 앗수르, 우라르투, 아라랏 등이다. 그 가운데 제국으로 성장한 나라가 앗수르이다.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동진한 그들은 티크리스강 상류인 니느웨에서 번성하여 남진하면서 메소포타미아지역을 차지한다.

그 앗수르제국이 서진하면서 아람과 북조 이스라엘 그리고 블레셋을 차례로 정복한다. 그리고 주전 701년에는 유다왕국을 침범한 것이다. 그러나 주전 699년에 산헤립 황제가 패전하여 니느웨로 도망치게 되자 앗수르제국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다. 가장 큰 대적이 갈대아왕조의 망명정부를 엘람 지역에서 이끌고 있는 브로닥발라단 왕이다(왕하20:12).

다섯째로, 또 하나의 혼혈민족이 카스피해 주변에서 발생한다. 카스피해는 본래 동서양의 유목민들이 함께 모여서 자연스럽게 혼혈이 되는 장소이다. 그들 가운데 잡종강세로 힘이 센 종족이 탄생하면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남진한다.

그들의 이름을 구미에서는 유로피안 아리안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절반은 사실 몽골리안 아리안이다. 그런데 아리안족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강력한 앗수르제국에 이어서 더 강력한 신바벨론제국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안족이 두 군데에 정착하게 된다. 그 하나가, 메소포타미아 바깥 카스피해 남부인 메대지역이다. 그곳에서 먼저 메대왕조가 나타난다. 또 하나가, 후발 아리안족이 더 남하하여 이란고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그곳의 원주민인 엘람인을 치고서 바사왕조를 세우게 된다.

주전 539년에는 아리안족인 메대와 바사가 연합하여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고 서로 천하를 통일하고자 경쟁한다. 하지만 젊은 왕 고레스가 장인이며 늙은 왕인 메대의 다리오를 물리치고 패권을 획득한다. 그것이 페르시아제국의 탄생이다. 그가 신바벨론제국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과 이스라엘사람들을 선지자의 예언 그대로 전부 해방시켜준 고레스 황제이다(44:28-45:4, 25:12-13, 1:1-4).

지금까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는 여러 인종을 이해하기 위하여 잠시 니느웨의 앗수르인과 바벨론의 갈대아인 그리고 카스피해 남방의 메대인과 이란고원의 엘람인 및 바사인,  나아가서 흑해 남부의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체성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제는 바벨론성에 살고 있는 여러 인종과 바벨론 망명정부와의 관계를 서술할 차례이다. 역사적으로 앗수르제국의 산헤립 황제가 주전 703년경 바벨론성을 정벌할 때에 끝까지 항거하던 바벨론왕 마르독 아팔리디나가 죽고 그의 아들 브로닥발라단이 분루를 삼키며 패잔병을 이끌고 엘람 지역으로 피신한다.

그러자 산헤립 황제는 자신의 장남인 아슈르나딘슈미에게 바벨론성을 맡기고 자신은 서진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가 유다왕국의 정복에 실패하고 니느웨에 돌아와 있을 때에 바벨론성에서 제1차 반란사건이 발생한다. 주전 698년경의 일이다.

내부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 가운데 갈대아인들 뿐만 아니라 북조 이스라엘의 망명객들이 있다.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을 정복한 살만에셀2 곧 산헤립의 부친은 잔혹했다. 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서 사마리아를 탈출한 자들이 메소포타미아의 중심부인 바벨론성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결사의 중심인물이 귀족출신인 시므온아히야이다.

살만에셀2세는 사마리아성을 점령하자 저항의식이 강한 선민 이스라엘족속을 아예 말살하려고 과감한 정책을 추진한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앗수르제국의 변방으로 끌고 가는 대신에 변방의 잡족들을 이스라엘왕국의 고토로 들여보낸다. 이주민들에게 이스라엘 땅을 주고서 이스라엘족속과 혼혈을 이루도록 장려한 것이다.

그와 같이 식민정책과 혼혈정책을 추진한 결과 이스라엘족속의 정체성이 서서히 사라지고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여호와가 우상의 하나로 여겨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종교적 인종적으로 선민 이스라엘족속을 말살하고 있는 앗수르제국에 대하여 복수를 결심한 자들이 비밀단체를 만들고 바벨론성으로 숨어든 것이다.

결사단체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시므온아히야는 산헤립왕이 유다왕국에서 패퇴하여 니느웨로 도망치자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엘람 지역에서 망명정부를 세우고 있는 브로닥발라단을 찾아가서 내외에서 함께 군사를 일으키자고 합의한다. 그래서 그들은 내부에서 먼저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거사는 실패하고 만다. 산헤립왕이 발빠르게 대군을 몰고서 남하했기 때문이다. 시므온과 아히야는 거사가 실패로 끝나자 엘람으로 피신하여 브로닥발라단 왕의 수하가 된다. 한편 산헤립 황제는 자신의 장남인 아슈르나딘슈미를 바벨론왕으로 봉하고 그 이남지역을 맡아서 전부 다스리도록 조치한다.

4년이 지나자 주전 694년에 바벨론성에서 제2차 반란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의 배후에는 엘람에서 잠입한 이스라엘의 결사조직의 지도자인 시므온과 아히야가 있다. 이번에는 바벨론성의 반란보다 먼저 엘람에서 망명정부의 왕인 브로닥발라단이 거병하도록 계획하여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

브로닥발라단이 엘람사람들을 설득하여 함께 앗수르제국 산헤립 황제에게 도전한다. 군대를 몰고서 바벨론성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바벨론왕이 되어 있는 산헤립의 장남 아슈르나딘슈미가 브로닥발라단의 군대를 토벌하고자 했으나 실패한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에 있는 부왕에게 원군을 요청한다.

산헤립 황제가 다시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다. 그는 차제에 엘람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그 사이에 바벨론성에서 반란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시므온아히야의 결사단체가 바벨론 독립세력과 연합하여 왕궁을 침범하여 아슈르나딘슈미를 사로잡고 바벨론성을 장악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재빨리 엘람의 브로닥발라단을 바벨론성으로 불러들여서 바벨론왕으로 즉위하게 한다. 그리고 만약 산헤립왕이 바벨론을 공격하면 인질로 잡혀 있는 아슈르나딘슈미 왕자를 살해하고 말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오래 살아온 산헤립왕이 그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는 장남을 희생시킬 각오를 하고서 대군을 몰아 바벨론성으로 진격한다. 새로이 바벨론왕이 된 브로닥발라단의 군대와 토착세력의 군대가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

그 결과 브로닥발라단이 산헤립의 장남을 죽이고 엘람 지역으로 도망한다. 이스라엘 결사단체를 이끌고 있는  시므온아히야도 다시 엘람 지역으로 피신하고 만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그 주변지역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두사람은 망명정부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한다.

그 결과 시므온과 아히야가 브로닥발라단 왕에게 진언한다; “이제는 유다왕국 히스기야왕에게 사절을 보내야 합니다. 앗수르제국의 서쪽에 있는 유다왕국에서 거병하면 그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합세할 것입니다. 블레셋, 두로, 에돔, 모압, 암몬 등이 한꺼번에 봉기한다면 앗수르제국도 그 토벌에 쩔쩔매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이곳 동쪽에서 바벨론성으로 다시 밀고 들어가면 됩니다”.

브로닥발라단 왕이 고개를 끄떡이자 두사람이 결론을 맺는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왕에게 선물을 보내고 말 잘하는 신하를 사절로 보내야 합니다. 먼저 앗수르제국의 산헤립왕을 물리친 히스기야왕의 위업에 대하여 찬양하고 큰 병에서 낫게 된 것을 경하하면 그가 우쭐하여 우리의 제안을 쉽게 받아 들일 것입니다”.

시므온과 아히야는 모사에 밝은 자들이다. 그들은 히스기야왕이 본래 명예욕이 강하고 허영심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까지 간파하고서 그러한 대담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히스기야왕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