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74강(렘51:41-4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2월 20일(수)
신바벨론제국과 함께 여호와의 처벌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렘51:41-44)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신바벨론제국의 멸망의 의의(意義)에 대하여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을 그냥 ‘바벨론’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렘51:41-43). 그리고 그 용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여호와를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제국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렘51:1). 바벨론과 같은 세상의 제국들은 공통적으로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며 백성들을 학대하고 있는 것입니다(렘50:2, 33). 그와 같은 여호와의 용어 사용은 그 개념이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계17:5).
(2) 둘째, ‘바벨론’이라는 용어 대신에 ‘세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렘51:41). 그것은 일종의 은어(隱語)입니다. 어째서 ‘신바벨론제국’의 이름을 바로 말하지 못하고 그와 같은 은어를 만들어서 백성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갈대아인들이 속국의 백성들과 망국의 백성들을 강하게 탄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제국은 신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학대를 일삼으며 평소 정보정치를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백성들이 신바벨론제국과 그 지배 족속인 갈대아인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다가 적발이 되면 그 처벌이 극악합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그 처벌을 두려워하여 ‘바벨론’이라는 말 대신에 그것을 가리키는 암호로서 ‘세삭’이라고 하는 은어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묘하게 사전에 제국의 눈을 피하고자 하는 백성들의 지혜입니다. 그만큼 피정복민에 대한 신바벨론제국의 학대와 탄압은 극심한 것입니다(렘50:33).
2) 참고로, ‘세삭’이라는 은어를 만드는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22개의 철자로 구성이 되어 있는 히브리어의 자음의 순서를 앞에서 세는 순서와 뒤에서 세는 순서를 대조하여 그 짝이 되는 알파벳을 찾아내어 서로 호환(互換, mutual exchange)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바벨론’을 말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베이트-베이트-라멕’에 대칭이 되는 ‘쉰-쉰-카프’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 발음을 편하게 하면 ‘세삭’이라는 은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암호를 만드는 방법을 오늘날 ‘아트바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 셋째, ‘벨’이라고 하는 우상의 이름이 신바벨론제국의 죄가 무엇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째서 그들을 버리고 완전히 패망하게 만들고 있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렘51:44);
1) ‘벨’은 ‘주’(主, Lord)라고 하는 뜻입니다. 가나안의 주신인 ‘바알’도 같은 의미입니다. 갈대아인들은 자신들의 오래된 신화에 따라 ‘말둑’을 창조신이며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신바벨론제국을 건설하자 피정복민들에게 ‘말둑’을 신들 중의 왕인 ‘벨’로 섬기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렘50:2a). 그리고 그 이름도 고상하게 ‘말둑’을 ‘므로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렘50:2b).
2) 여호와께서 우상을 섬기며 죄악을 범하고 있는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그 도구로 갈대아 군대를 사용하셨는데(렘25:1-11) 이제 그들 갈대아인들이 중근동에서 패권을 자랑하는 신바벨론제국을 형성하자 여호와를 버리고 자신들의 우상인 ‘말둑’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라고 백성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렘50:2).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을 빨리 망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시는 것입니다(렘25:12, 50:2-3, 51:42-4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怒濤, 노한 파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렘50:41-4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렘50:41);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봅니다;
1) 첫째, ‘세삭’이 함락이 되었다고 하는 말은 피정복민들이 ‘세삭’이라고 하는 은어를 개발하여 ‘바벨론’이라고 하는 이름 대신에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속국과 망국의 백성들에게 강압적인 통치로 일관하던 신바벨론제국이 마침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렘50:41a).
2) 둘째,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성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인 시날 땅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창10:10). 그곳에는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 군대를 지휘하여 중근동의 수많은 왕국들을 정복하고 그곳에서 약탈하여 온 보물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제국의 영광이 바벨론 성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면서 마치 그 옛날 ‘바벨탑’을 바라보듯이 세계의 수도라고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창11:2-4, 51:41b).
3) 셋째, 그러나 그 보물과 같은 갈대아인들의 수도 ‘바벨론’ 성이 적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세삭’이라고 하는 암호와 같은 은어 가운데 벌써 들어 있습니다. 신바벨론제국의 지배 족속인 갈대아인들이 피정복민에 대하여 심하게 탄압을 행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감히 ‘바벨론’이라고 하는 이름도 그 입에 올리지를 못하고 그 대신에 ‘세삭’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을 심하게 학대하게 되면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50:41c).
(2)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렘50:42);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풀이가 됩니다;
1) 첫째, 그 옛날에는 ‘강물’을 ‘바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갈릴리 호수’를 ‘갈릴리 바다’라고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성의 서쪽에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아리안족들이 바벨론 성을 침입하기 전에 그 강물을 은밀하게 북쪽에서 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시에 강둑을 터뜨려 바벨론 성에 홍수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와 같은 수공(水攻)을 당한 갈대아인들의 군대는 아리안족의 기습에 제대로 대항을 하지도 못하고 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나루는 빼앗겼으며, 갈대밭이 불탔으며 군사들이 겁에 질렸더이다 하리라”(렘51:32), “너를 위하여 보복하여 그의 바다를 말리며, 그의 샘을 말리리니”(렘51:36).
2) 둘째, 문학적으로 멀리 있는 많은 이방나라들을 ‘바다’에 있는 ‘섬들’로(사11:11), 또는 아예 ‘바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사23:11, 63:11). 그리고 많은 이방나라들의 군대가 말을 타고 쳐들어오는 것을 “노도 소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렘6:23, 50:4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주전 539년에 아리안족 여러 왕국의 기마대가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성을 은밀하게 일시에 야습하고 있는 광경을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렘50:42)라고 충분히 묘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도다.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렘51:43-44);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 성읍들은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으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도다”(렘51:43);
1) 신바벨론제국의 많은 성읍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성과 그 주변의 성읍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 앞에서 “전령은 전령을 맞으려고 달려가 바벨론의 왕에게 전하기를, 그 성읍 사방이 함락되었으며”(렘51:31)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안족의 기마병들이 기습하였을 때에 도성인 바벨론 성만 함락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인근의 성읍들도 함께 적들의 군마에 짓밟힌 것입니다. 그러한 급보를 전령이 말을 달려 아라비아 북부 ‘데마’의 별궁에 있는 나보니더스 황제에게 전한 것입니다.
2) 그런데 제국의 도성인 ‘바벨론 성’과 그 인근의 성읍들이 모두 마른 땅과 사막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51:43). 그 의미는 그곳으로 가는 강물의 줄기를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삼각주의 일부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적으로 그곳으로 흐르고 있는 강물을 둑을 쌓아 막아 버리면 됩니다. 그러한 작전을 아리안족의 군대가 자행한 이유는 ‘바벨론 성’과 그 인근지역의 갈대아인들의 기업을 영원히 지워 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만큼 여호와의 보복과 징벌은 혹독하다고 하겠습니다.
(2)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렘51:44a);
1) 갈대아인들은 자신들의 토속적인 수호신 ‘말둑’을 창조주 하나님인 ‘므로닥’으로, 그리고 가나안 땅의 ‘바알’처럼 최고의 신인 ‘벨’로 둔갑을 시켜서 그 우상을 섬기라고 제국의 피정복민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도구로 사용이 되어 중근동 지역에서 대제국을 형성한 그들이 배은망덕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그들의 우상의 권위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고 교만한 갈대아인들을 전멸시키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러 왕국에서 약탈해간 모든 보물과 재화를 토해내도록 만드십니다. 그 방법이 아리안족의 여러 왕국의 기마대를 동원하여 바벨론 성을 기습하여 함락시키고 그 재물을 모두 약탈하게 하는 것입니다(렘51:44a).
3)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갈대아인들이 최고의 신 ‘벨’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말둑’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남의 것을 약탈하여 삼키기를 좋아하는 탐욕스러운 큰 뱀인 ‘벨’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여 나를 빈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렘51:34). 요컨대, 신바벨론제국도 그들의 우상인 ‘벨’도 모두가 여호와를 대적하는 ‘옛 뱀’과 같은 것입니다(창3:1-6, 계20:2)
(3)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렘51:44b);
1) 약탈한 보물이 있는 경우에 유목민인 아리안족의 기마병들이 합세하여 공격을 합니다. 그러므로 제국의 수도이며 세계의 보물창고라고 소문이 난 ‘바벨론 성’이 그들의 약탈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성을 함락시킨 아리안족의 군대가 그곳의 보물을 전부 약탈하고 바벨론 성을 아예 불에 태워버리고 맙니다(렘51:44bb).
2) 그 결과 바벨론 성을 다시 점령하고자 하는 군대가 없습니다(렘51:44ba). 보물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정복을 하고자 하겠습니까? 더구나 아리안족의 군대가 바벨론 성으로 흐르고 있는 유프라테스 강의 물줄기를 돌려버려 이제는 그곳이 사막과 같이 변하고 있습니다(렘51:43). 그 땅을 탐내는 족속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신바벨론제국의 죄악이 무엇인지를 ‘세삭’과 ‘벨’이라고 하는 두가지 용어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1) 피정복민들이 제국의 정책을 비판하면 체포하여 극형에 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아예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암호처럼 ‘세삭’이라고 하는 은어를 고안하여 대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폭정을 일삼고 있는 제국을 여호와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멸망시켜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2) ‘벨’이라고 하는 것은 신 중의 왕인 최고의 신 곧 ‘주신’(主神)을 말하고 있습니다. 갈대아인들은 신바벨론제국을 건설하자 자신들의 토속신인 ‘말둑’을 ‘벨’로 부르게 하면서 피정복민들에게 주신으로 섬기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도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말둑을 주신으로 섬겨야 생존이 가능한 시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속히 아리안족 기마병의 침입으로 바벨론 성을 멸망시키고 이어서 제국을 무너뜨려버리고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패권국이 되었다고 하여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약한 나라의 백성들에게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행하고 제국의 이념과 우상을 섬기도록 강제하게 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빠른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력과 부를 가질수록 더욱 여호와의 뜻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한 성도의 삶의 모습이며 구원받는 나라와 성도의 모습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를 누리시는 나라와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히브리어 알파벳 자음 22개; ‘신’과 ‘쉰’ 가운데 하나만 계수를 하므로 자음이 22개가 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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