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24(손진길 소설)
김정미는 자신보다 5살이 적은 시동생 조우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주섬주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94년에 저희 가족이 미국으로 왔을 때 가지고 온 돈이 한화로 100억원이 조금 넘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참으로 큰 돈이었지요. 물론 그 가운데에는 도련님에게 드려야 하는 부모님의 유산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
그 말을 듣자 조우제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고 있다. 그리고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경옥은 속으로 새삼 생각하고 있다; “참으로 큰 돈이구나. 그 돈 가운데 남편의 상속분이 전부 들어 있었구나. 그 돈을 당시에 한 푼도 받지 못한 남편은 서울에서 정말 앞길이 막막했겠구나!... “.
그렇지만 딸 한나는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이다. 그때 모두의 귀에 김정미의 음성이 들려온다; “도련님, 정말 죄송해요. 그 돈을 잘 늘리지 못하고 그만 미국에서 많이 소비하고 말았어요;
다행히 오이코스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김목사를 만나서 그 재단에 투자한 1천만불이 살아남고 집한채와 가용할 돈만이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
그것은 그 많은 돈을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원금을 엄청 축내고 말았다는 변명으로 들린다. 하지만 조우제는 김정미의 말을 끊지 아니하고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궁색한 변명이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미의 설명이 이어진다; “5년전에 남편이 총기사고로 급히 응급실로 실려 가서 수술을 받고 그 다음날 잠시 의식을 회복했어요. 그때 저에게 유언을 했어요. 그 내용이 약소하지만 5백만불이라도 도련님을 찾아서 돌려주라고 했어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속으로 계산한다; ‘25년전에 부모님의 재산이 100억원이 넘고 있다. 그것을 제대로 지켰으면 지금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0억원은 넘겠구나. 그렇다면 나의 몫은 적어도 200억원이 된다. 그런데 지금 5백만불 운운하는 것은 한화로 60억원 정도이니 그것은 3할에 불과하구나!... ‘;
그렇게 속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그 다음 김정미의 말이 조우제의 기대를 더욱 무너지게 만들고 있다; “3년전에 저희들이 이곳 시애틀로 떠나 오기 전에 오클랜드의 오이코스대학교 재단으로부터 수령한 전체금액이 1천5백만불이었어요. 그 가운데 저는 남편의 유언대로 5백만불을 도련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별도로 저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 “.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조우제 부부가 귀를 기울인다. 조한나도 그 스토리가 흥미진진하여 경청을 한다. 그것을 보고서 조용한 음성으로 김정미가 또박또박 말한다; “작년에 이 교회건물을 인수하느라고 1천 2백만불이 필요했어요. 그만 도련님에게 줄 돈에서 2백만불을 인출하고 말았어요. 그에 따라… “.
그 말을 하면서 김정미가 아주 빠른 속도로 조우제 부부의 눈치를 슬쩍 본다. 그러한 찰나의 행동을 조우제가 놓치지 아니하고 파악한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형수는 그 막대한 돈을 허비한 것이 결코 아니다!… ‘;
조우제가 형수 김정미의 속셈을 넉넉하게 짐작하고 있다; ‘형수는 워낙 돈에 밝고 영악한 인물이라 그 돈을 아주 잘 늘리고 있겠구나!... 지금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나에게 적은 돈을 주고 과거지사를 완전히 덮어버리려고 하는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조우제는 정색을 하고서 김정미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김정미가 작은 목소리이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도련님 죄송해요. 저희들이 지금 별도로 지니고 있는 것은 이제 3백만불에 불과해요. 그것을 차제에 전부 드릴 테니 부디 저희들을 용서해주세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갑자기 허허라고 웃는다. 다음 순간 그는 김정미를 똑바로 보면서 비통하게 말한다; “내 몫의 돈까지 전부 챙겨 가지고 미국으로 도피하고 말았기에 나는 젊은 시절 4반세기를 고통 가운데 살았어요… “.
조우제가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여기까지 추적하여 겨우 찾아왔더니 이제 와서 2할도 안되는 돈만 받고 그만 돌아가라고 하는군요. 만약 형수가 내 처지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
참으로 궁금하여 조우제가 물어본 말이다. 그러자 김정미가 마치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하면서 대답한다; “말도 안되는 말이지요. 하지만 어떡해요. 그것 밖에 여분이 없으니까요… 이제 겨우 교회당을 인수하여 아들 둘이 수익을 내고 있는 걸요. 그러니 조카들을 위해서 한번만 봐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도련님…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김정미에게 말한다; “그 돈 300만불이 별도로 저축이 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니 그러면 나와 함께 그 은행으로 가시지요. 내가 보는 앞에서 그 돈을 전부 내 구좌로 옮겨야 하겠습니다. 당장은 그것이 형수님이 내게 표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인가 봅니다… “.
조우제의 결단이 빠르다. 그 말을 듣자 김정미는 속으로 ‘이제는 살았구나!... ‘고 생각한다. 25년전에 그 큰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피신했는데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분명히 조우제가 속으로는 칼을 갈았을 것이다. 그런데 기껏 3백만불을 받고 사라져 준다면 그야 말로 자신은 횡재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즉시 조우제 가족을 자신이 거래하고 있는 은행으로 데리고 간다. 그 다음에는 조우제가 제시하는 호주 시드니의 은행으로 3백만불을 즉시 송금하여 준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조우제가 속으로 한숨을 쉰다.
그리고 그가 내심 판단한다; “형수는 이 은행에서 그 많은 돈을 호주로 송금하는데 전혀 동요함이 없구나. 그것은 훨씬 많은 돈을 여기서 주무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돈으로 잘 살도록 내버려두자. 그것이 내가 조카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와 배려가 되겠구나!... “.
그 일이 끝나자 조우제가 가족을 이끌고 형수인 김정미의 차를 타고서 다시 그 교회로 간다. 그곳에서 두 조카를 만나서 말한다; “그 옛날 나는 형과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졸지에 헤어졌기에 오늘 형수님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또 옛날에 계산을 해야 할 일을 이제 막 끝냈어요… “;
쌍둥이 조카는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그럴 것이다. 형수와 형이 아들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진실되게 말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이해하고서 조우제가 말한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이제 호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부디 두 조카도 여기서 목회를 잘 하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래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정미는 크게 안도하는 눈치이다. 조우제는 그저 인사만 꾸벅하는데 장경옥은 그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윗동서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서로 포옹을 하고서 헤어진다. 조한나도 “큰 어머니 건강히 잘 계세요. 그리고 두 오빠 목사님도 평안히 계세요”라고 야무지게 인사를 하고서 헤어진다.
그날 조우제는 두 조카와 악수를 한 다음 택시를 불러서 그 교회를 떠난다. 멀리서 형수와 두 조카가 손을 흔들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조우제는 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모든 과거지사를 윤색하고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한 미래를 짐작하면서도 그는 조카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말하지 아니했기에 두 조카는 하나밖에 없는 삼촌이 자신들의 부모가 미국에서 애써 벌어 둔 돈을 뜯어갔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역사를 날조하기는 참으로 쉽다. 간단하게 주어와 목적어만 바꾸면 그와 같은 이야기가 성립이 되기 때문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조우제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제 와서 조카들 앞에서 너희 부모가 나의 유산을 전부 강탈해간 인물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날 바닷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서 호스텔로 돌아왔더니 장경옥이 궁금하여 남편 조우제에게 묻는다; “여보, 당신은 어째서 형수에게서 그 돈을 받았어요. 제가 계산을 해보아도 정당한 유산에서 엄청 모자라는 돈인데 어떻게 그것을 받고서 과거를 지워버려요. 너무 억울하지 않으세요?... 차라리 받지 말지 그랬어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내 기분대로 하자면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러나 나는 많거나 적거나 간에 그것이 부모님의 돈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 돈은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요긴하게 사용해야 할 거예요… 앞으로 호주에서 분명히 그러한 용도로 그 돈을 사용하게 될 거예요!... “;
장경옥은 그 정도로만 이해를 하고 넘어가고 있다. 그녀는 조우제의 마음속에 어떠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는지 자세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늦게 조우제가 아내와 딸을 데리고 시애틀 시내구경에 나선다.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내를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
시애틀은 참으로 살기에 좋아 보이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시내 구경을 한참 하던 조우제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면서 귀금속을 팔고 있는 어느 금은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인에게 “혹시 미스터 박과 미세스 장을 아세요?”라고 묻는다.
주인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 지시를 따라 조우제가 가족을 이끌고 한군데의 금은방에 들어서고 있다. 그곳 주인장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조우제가 찾고 있는 인물이 바로 막내 처남 장치선 부부의 외동딸인 장소영과 그 남편 박규철이다. 그들을 만나서 조우제가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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