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22(손진길 소설)
2019년 4월 17일 수요일 오후 미국 서부의 오래된 도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는 화창한 봄날씨가 완연하다. 샌프란시스코의 남부에 있는 공항에서 조우제 가족 3사람은 시내버스를 타고 일단 다운타운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였기에 아무리 용건이 바빠도 한시간 정도 시내 구경을 한다;
그 다음에 곧바로 택시를 대절하여 긴 ‘만’(灣, bay)을 가로지르고 있는 다리를 건너 오클랜드(Oakland) 시로 들어간다;
그곳에 있는 ‘오이코스’(Oikos) 대학교를 방문하기 위한 것이다;
그 대학교는 사실 신학을 가르치는 조그만 신학대학이 그 시초이다.
그런데 설립자인 김학장이 여러 투자자를 끌어들여서 음악대학, 경영대학, 동양의학 등을 가르치는 3개의 대학을 더 만들었다. 그 결과 15년전에 정부로부터 대학교(university)로 인가를 받고 김학장이 스스로 총장이 되었다;
그러나 비극적인 총기사건이 그 대학교에서 5년전에 발생한 것이다. 한인교포 고모씨가 총기를 난사하여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조우제의 형인 조강제가 총격을 받아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며칠 후에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 참혹한 사건의 현장을 5년이 지나서야 방문하고 있는 조우제의 마음은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25년전 곧 1994년말에 부모님의 재산과 조우제 자신의 상속분을 모조리 팔아 치우고 그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피해버린 형의 가족에 대한 원망이 아직도 응어리로 남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5년전에 이국 땅에서 허무하게 유명을 달리한 단 하나밖에 없는 형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한 상반된 두가지 마음을 가진 조우제가 아내 장경옥 그리고 딸 조한나와 함께 오이코스대학교 총장실을 찾아 방문을 노크한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그런지 안에서 건장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려 있어요. 그냥 들어오시면 됩니다”.
조우제 가족이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나이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대학교총장이라는 명패를 가진 큰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 이름을 보니 ‘김요한 총장’(President John Kim)이다.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말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일단 소파에 앉으시지요!... “.
서글서글한 눈매에 인상이 좋은 중년인이다. 그는 일단 소파의 상석에 앉은 다음에 자신의 소개부터 한다; “저는 이 대학교의 총장인 김요한 목사입니다. 방문용건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깍듯한 인사이다.
따라서 조우제가 호감을 가지고 정중하게 말한다; “저는 호주에서 이곳 미국까지 5년전에 별세한 친형의 소식을 듣고자 찾아온 조우제라고 합니다. 제 형의 이름이 조강제입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김요한 총장이 조우제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본다. 그리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시 서울 Y대학교에 다니던 조우제 씨가 아닙니까? 저는 그 옛날 1990년대 초에 서울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김요한입니다마는… “.
그 말에 이번에는 조우제가 한참이나 김총장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 다음에 그가 반갑게 말한다; “그렇군요. 그 옛날 예수전도단 화요 찬양예배에서 여러 번 본적이 있는 신학생 김요한이군요.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요한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조우제를 찾아와서 덥석 악수를 하면서 포옹을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거,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 기이하게도 이곳 미국 서부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참으로 반갑습니다, 조형!... “;
다시 자리에 앉아서 두사람이 그 옛날 이야기를 10분이나 나누고 있다. 그렇게 되자 장경옥과 조한나는 비서가 가져다 준 차를 마시며 과자를 먹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조우제가 그때서야 말한다; “김형, 내 아내인 장경옥과 딸 한나입니다. 나는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데 이번에 형 조강제 가족의 행적을 찾고자 이곳을 방문했어요… “.
김요한이 조우제 가족과 인사를 나눈 다음에 솔직하게 말한다; “먼저 가형께서 5년전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일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해요. 당시 그 분은 저의 삼촌의 권유로 상당한 재산을 이 대학교에 출자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유족들은 이곳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3년전에 3분이 모두 이곳을 떠나 북쪽의 시애틀로 이사를 갔어요. 그 이유는… “.
조우제 가족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김총장이 이어서 말한다; “총격사건이 발생하자 총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이듬해에 총장인 삼촌은 일선에서 물러났어요. 그때부터 조카인 내가 그 뒤를 이었는데 당면한 문제가 조강제 씨의 투자분을 유족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었지요… “.
김요한 목사가 숨을 한번 쉰 다음에 말한다; “마침 삼촌이 다른 투자자를 구하였기에 그 돈을 마련하여 3년전에 유족들에게 돌려주었어요. 그 금액이 자그마치 1천 5백만불입니다;
애초에 1천만불을 투자하였지만 그동안의 이자를 합산하여 그렇게 지불한 것입니다. 그 점은 나중에 시애틀로 가셔서 형수와 조카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가 있을 거예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두가지를 더 물어본다; “김총장님, 소상한 설명에 감사해요. 그런데 두가지 더 알고 싶군요. 하나는, 그 3사람이 여기서 무슨 과목을 공부했는지요? 또 하나는, 어째서 북쪽 시애틀로 이사를 간 것이지요?... “.
김요한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3분이 모자간에 전부 여기서 신학을 공부했어요. 3년전에 ‘신학 학사’(Bachelor of Theology) 과정을 모두 마치고 시애틀에 가서 그곳 ‘브레드런 처치’(Brethren church)에서 세 분이 부교역자로 일했지요;
지금은 쌍둥이 아들 두사람이 아예 그 교회를 사서 ‘시애틀 형제교회’(Seattle brethren church)로 명명하고 공동으로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
소상한 설명이다. 따라서 조우제가 말한다; “이거 김요한 총장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옛날 예수전도단에서 만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그러면 저는 이제 시애틀로 가서 형의 가족을 한번 만나보고 곧바로 호주로 돌아가야 하겠어요. 훗날 호주 시드니에 오게 되면 연락을 주세요”.
조우제가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김요한 총장에게 건네 준다. 그것을 보고서 김요한이 말한다; “어허, 역시 의과대학을 마치고 시드니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군요. 그러면 먼 길에 잘 다녀가시고 훗날 시드니에서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조형,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
김요한은 역시 총장이기 이전에 목사인 모양이다. 그는 조우제를 한번 포옹한 다음에 방문 밖까지 배웅을 한다. 인사를 마친 조우제는 가족을 데리고 급히 오클랜드 공항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를 곧바로 예약하고 북쪽으로 날아간다.
빨리 서둘렀기에 밤이 되기 전에 시애틀에 도착하고 있다. 공항에서 조우제는 도심에 있는 호텔이나 호스텔에 전화로 예약부터 한다. 마침 ‘그린 거북 호스텔’(Green Tortoise Hostel)이라고 하는 숙소에 빈방이 있다. 위치가 도심의 바닷가이고 요금이 싸다;
따라서 조우제가 얼른 2베드룸 하나와 1베드룸 하나를 3일간(three nights) 예약한다. 그는 어째서 형의 가족을 만나는데 3일이나 필요한 것일까?... 그 점이 궁금하여 호스텔에 도착한 다음에 장경옥이 남편 조우제에게 물어본다.
그랬더니 조우제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마침 이곳 시애틀에는 그 옛날 서울에서 예수전도단을 만든 데이비드 로스(David E. Ross) 선교사가 살고 있어요. 그는 1960년대초에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오래 일하다가 198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
조우제가 잠시 숨을 돌리고 천천히 말한다; “예수전도단의 창설자인 그 목사님을 나는 여기서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그 분이 한국이름으로는 오대원 목사이지요. 내가 간접적으로 듣기로는 로스 목사님이 여기서 한국의 통일을 앞두고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다고 해요. 마침 여기까지 온 김에 그분을 한번 만나고 싶군요… “;
장경옥은 남편 조우제의 또다른 면모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어째서 그 옛날 말로만 듣고 있던 오대원 선교사를 만나고자 하는 것일까?... 그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장경옥은 우선 옆방에 들러 짐을 풀고 있는 딸 한나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1층 ‘Ground level’에서 조우제가 제안한다; “경옥, 여기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는 바깥으로 나가서 좋은 식당을 한번 찾아보지요. 내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할께요!... “.
마침 그 호스텔의 근방 바닷가에 좋은 음식점들이 많다. 따라서 조우제가 그 지역의 해산물을 요리하여 팔고 있는 ‘해물 식당’(seafood restaurant)에 가족을 이끌고 들어간다;
시애틀만 하더라도 추운 지방이다. 따라서 생각보다 해산물이 맛이 좋다. 역시 따뜻한 바다 보다는 추운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이 더 맛이 좋은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호스텔에 돌아와서 고단한지 모두들 단잠에 빠지고 있다. 이제 날이 밝으면 그들은 고인이 된 형의 가족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 어떻게 장경옥의 막내 오빠인 전문의 장치선의 딸 장소영과 그 남편 박규철을 만나고 또한 오대원 목사를 만나보게 되는 것일까?...
'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무, 짙은 안개24(손진길 소설) (0) | 2022.08.31 |
---|---|
농무, 짙은 안개23(손진길 소설) (0) | 2022.08.31 |
농무, 짙은 안개21(손진길 소설) (0) | 2022.08.27 |
농무, 짙은 안개20(손진길 소설) (0) | 2022.08.27 |
농무, 짙은 안개19(손진길 소설) (0) | 2022.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