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23(손진길 소설)
조우제는 다음날 새벽 곧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아침에 일찍 눈을 뜬다. 어제는 참으로 일정이 바빴다. 비행기로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오고 그 다음에는 오이코스 대학교를 방문한 후에 다시 시애틀로 들어오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닷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스텔에 들어오자마자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렇지만 새벽 일찍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고 있다. 그것은 조우제의 오랜 습관이다. 선친이 그러했듯이 차남이자 막내아들인 조우제가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눈은 떠졌지만 조우제가 침대에서 내려오지는 아니하고 있다.
자신이 일찍 눈이 떠졌다고 하여 세수를 한다거나 하루 일과를 일찍 시작하게 되면 늦잠을 자는 아내 장경옥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우제는 조용히 다시 눈을 감고 침대에서 그 옛날 젊은 날을 회상해본다;
부모님은 참으로 부지런하신 분들이셨다. 남해안의 마산 바닷가에서 평생을 어부로 살아오셨으며 나중에는 어장을 사서 잘 관리하여 성공하신 분들이다. 50대에 나름대로 수산회사를 만들어 경영하면서 평생 열심히 일한 보람을 누린 부부이셨지만 너무 열심히 일한 그것이 그만 환갑 전에 은퇴를 하게 되는 이유가 되고 만다.
사람의 신체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쉬기도 하면서 잘 관리하여야 하는 것인데 그것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너무 무리하게 일만 하다 보니 몸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장남 조강제가 부산에서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기에 일부 사업체와 재산관리를 그에게 맡기고 그들 부부는 서서히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남이 부산에서 사귀던 여성이 찾아왔다.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장남과 대학을 다니면서 동거를 했다는 것이다. 장남인 조강제도 그녀 김정미와 혼인하기를 원하고 있기에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이듬해 쌍둥이 아들을 생산한 그녀가 욕심을 부렸다;
시부모에게 남편이 더 열심히 보람을 느끼고 일할 수 있도록 사업체와 재산관리를 전부 맡겨 달라는 것이다. 조우제의 부모님은 손자를 둘이나 보았기에 며느리와 장남의 말에 순순히 동의를 해주었다. 그리고 부부는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허무하기도 하다. 평생 뼈빠지게 일하여 사업체를 일군 부부가 장남부부에게 사업체와 재산관리를 모두 맡기고 그제서야 여행도 하면서 인생의 낙을 즐기고 있는데 그만 교통사고를 만나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집의 차남인 조우제가 서울에서 의대공부를 하고 있다가 졸지에 부모상을 당하고 말았다. 고향 마산에 내려갔더니 형 내외가 정성을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있다. 장례식을 마치고 조우제는 공부가 바빠서 급히 상경을 한다.
그때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따라 나와서 조강제가 동생 조우제를 배웅하면서 말한다; “이제 장례를 무사히 치렀으니 우제 너는 서울에 올라가서 딴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만 해라. 네가 의대공부를 마칠 때까지 모든 지원을 내가 해주마. 수산회사가 잘 굴러가고 있으니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리고 네 몫의 유산은 내가 확실하게 챙겨주마… ”;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시고 나니 이 세상에는 단 두 형제 뿐이다. 그래서 조강제는 동생 조우제가 서울에서 의대공부를 잘하여 의사가 되기를 바라고 조우제는 형 조강제가 마산에서 사업체를 잘 경영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형수인 김정미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부산에서 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한 여성이다. 3살 위의 복학생 조강제와 사귀고 동거까지 했다. 경영대학원을 마친 조강제가 고향 마산으로 가서 부친이 경영하고 있던 수산회사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한번 살그머니 방문을 해보니 그 규모가 상당하다;
그녀는 마침 조강제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기에 나중에 마산을 찾아가서 그 집의 맏며느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시집에는 남편 조강제보다 똑똑한 둘째 아들 조우제가 있다. 서울에서 의대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이는 남편보다 8살이 적다. 김정미가 보기에 자신의 남편보다 머리가 좋은 시동생이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다.
그런데 시부모님이 그만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고 그 큰 재산을 자신의 남편 조강제가 모두 맡아서 관리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없는 좋은 기회이다. 100억원이 넘는 큰 재산을 얻는 것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인 것이다.
그녀는 그 큰 재산의 상당부분을 시동생 조우제에게 결코 나누어 주고 싶지가 아니하다. 따라서 김정미는 서서히 남편 조강제를 설득하고 일년 안에 그 재산을 모두 정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우제가 자신들을 찾지 못하도록 아예 미국으로 도피하고 만 것이다. 그것은 계획적인 완전범죄이다;
그렇게 행동한 형수 김정미가 쌍둥이 아들 조영수 및 조영탁과 함께 미국 서부 오클랜드 시에서 신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하니 조우제는 그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서 그 일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재산을 꿀꺽하기 위하여 나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형수이다. 그러한 형수가 어째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일을 하고 있는가? 또 쌍둥이 조카는 어째서 시애틀에서 교회건물을 사서 공동목회를 하고 있는가? 아무튼 오늘 만나보면 알 일이다… ‘.
아침식사를 호스텔에서 한 다음에 조우제 가족 3사람은 ‘시애틀형제교회’(Seattle Brethren Church)를 찾아간다. 상당히 큰 규모의 교회이다;
담임 교역자실을 찾아 조우제가 노크를 한다. 안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려 있습니다”.
젊은 목사는 조우제의 가족 3사람이 동시에 들어오자 처음보는 사람이라 어리둥절한다. 그래서 물어본다; “오늘 저희 교회에 처음 오신 모양입니다. 저는 담임목사의 한사람인 조영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조우제가 대답한다; “저는 샌프란시스코 근처 오클랜드 시에 있는 ‘오이코스 대학교’에서 그곳 졸업생인 조영수 목사님과 조영탁 목사님 두 분이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번 찾아 뵙고자 들렀습니다만… “.
그 말을 듣자 조영수 목사가 기뻐하면서 말한다; “멀리서 이곳으로 오신 것이군요. 이곳 시애틀로 이사를 하신 것입니까? 혹시 주일예배를 드릴 교회를 찾고 계신 것인가요?... “. 조영수는 새로 이사를 온 교인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제서야 조우제가 용건을 정확하게 말한다; “나는 호주에 살고 있는 조우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가족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친형인 조강제가 5년전에 오이코스대학교 총기사건으로 별세했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그 가족을 만나려고 온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조영수 목사가 깜짝 놀란다. 그는 한참동안 조우제의 모습을 바라본다. 선친 조강제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다;
그때서야 그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숙부님, 제가 미처 알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 먼 호주에서부터 저를 찾아오셨다고 하니 정말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차라도 드시면서 천천히 말씀을 나누도록 하시지요… “.
조영수 목사가 차를 타오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3사람에게 일일이 권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조우제가 자신의 가족을 소개한다; “영수야, 내가 삼촌이니 말을 놓으마. 여기는 너의 막내 숙모인 장경옥이고 이쪽은 사촌 누이인 조한나이다. 서로 인사를 해야지… “.
조영수 목사가 먼저 처음 만난 숙모 장경옥에게 인사를 한다. 그것을 보고서 조한나가 일어나서 조영수 목사를 보고서 말한다; “저는 조한나예요. 오늘 사촌 오라비를 처음 뵈어요. 반갑습니다… “.
그 다음에 조영수 목사가 모발폰으로 쌍둥이 동생 조영탁 목사를 부른다. 조영탁 목사가 5분도 되지 아니하여 도착하는 것을 보니 그 교회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쌍둥이이지만 그 모습이 제법 다르다. 그 이유는 일란성이 아니라 이란성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시 인사를 나눈 다음에 조우제가 묻는다; “어떻게 미국에 와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지?... “. 조영수가 대표로 말한다; “아버지가 그 대학재단에 투자를 하게 되자 저희 가족들이 전부 그곳에서 신학공부를 한 것이지요. 이 교회는 저희들이 작년에 인수를 했고요. 어머니는 이곳에서 전도사로 일을 하는 한편 선교사들을 돕는 일도 하고 있어요. 지금 그곳에 나가 계세요… “.
그 말을 듣고 조우제가 말한다; “그러면 내가 너희 모친부터 만나보고 싶은데 어디로 찾아가면 좋을까?... “. 그 말을 듣자 조영수 목사가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서 모친에게 전화를 낸다. 그 대답을 듣고서 그가 말한다; “15분내로 도착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네요. 이곳에서 나중에 뵙도록 하시지요… “.
조우제는 그 말을 듣자 다소 걱정이 된다. 옛날 일을 말해야 되는데 조카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이 덕이 되지 못할 것만 같아서 그러하다. 그런데 그것이 기우이다. 김정미는 담임목사실에 들어서자 마자 두 아들에게 잠시 방을 비워 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쌍둥이 아들이 방을 나가자 김정미가 조우제 가족에게 먼저 머리를 숙여서 사죄부터 한다; “도련님, 그리고 동서와 질녀,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을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잠시 저의 말을 한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
과연 그녀는 무슨 말을 조우제에게 하고 싶은 것일까? 조우제는 정말 그것이 궁금하다. 따라서 조우제는 조용히 형수 김정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 입에서 과연 무슨 말이 나오는지를 계속 지켜 보고만 있다…
'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무, 짙은 안개25(손진길 소설) (0) | 2022.09.01 |
---|---|
농무, 짙은 안개24(손진길 소설) (0) | 2022.08.31 |
농무, 짙은 안개22(손진길 소설) (0) | 2022.08.29 |
농무, 짙은 안개21(손진길 소설) (0) | 2022.08.27 |
농무, 짙은 안개20(손진길 소설) (0) | 202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