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26(손진길 소설)
전날 장소영 박규철 부부와 함께 만찬을 즐긴 조우제가 오래간만에 숙면을 취한 후 새벽 일찍 호스텔에서 잠을 깨고 있다. 요즈음 그가 그러하듯이 금방 침대에서 내려와서 세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침상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stretching)을 한다. 나이가 50을 향해가고 있는 48세이므로 중년인 조우제에게 그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옆에서는 아내 장경옥이 여전히 꿀 잠에 빠져 있다. 자면서도 그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막내 오빠인 전문의 장치선 부부의 외동딸 장소영을 어제 생전 처음으로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한 것이 그렇게 좋았던 모양이다. 그 점은 옆방에서 혼자 자고 있는 딸 조한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우제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리고 있다. 그도 역시 어제 오후시간과 저녁시간의 일정이 매우 흡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젊은 시절부터 그의 인생에 드리워진 그 짙은 안개가 상당히 사라지는 것을 어제 오전에 경험했다. 형수 김정미가 사죄하면서 그들이 빼돌린 부모님의 유산 중 일부를 변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에 눈을 떠니 몸이 상쾌하고 마음이 시원한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조우제가 침상에서 눈을 감은 채 지난 4월 13일 토요일에 미국에 도착하여 그때부터 보낸 바쁜 일정을 한번 머리속으로 정리해본다;
(1) 2019년 4월 13일에 호주 시드니공항에서 출발하여 20시간 이상 걸려서 미국 뉴욕의 ‘JFK공항’(John F Kennedy Airport)에 도착했지만 날짜변경선을 지나왔기에 하루를 벌어서 역시 4월 13일 토요일이었다. 그날 토요일에 큰처남 장용화의 집에서 병환중인 장모 조경숙을 만나고 일박을 했다;
(2) 다음날 4월 14일 일요일에는 둘째 처남 장준석 목사의 차로 뉴저지에서 코네티컷으로 이동하여 장준석 부부의 이민이야기를 듣고 그 집에서 일박을 했다. 그리고 4월 15일 월요일에는 뉴욕으로 이동하여 퀸스 지역의 종합병원에서 영상의학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막내 처남 장치선 부부를 만나고 인근에 있는 그 집에서 일박을 했다.
(3) 4월 16일 화요일에는 다시 뉴저지 프린스턴 시에 살고 있는 큰처남 장용화의 집으로 가서 장모 조경숙을 병 문안했다. 장모는 막내딸 장경옥을 만난 이후 병세가 많이 호전되고 있다. 다음날 4월 17일 수요일에는 뉴욕 뉴왁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인근도시 오클랜드에 있는 오이코스대학교에 들렀다. 그곳에서 조우제 가족은 친분이 있는 총장 김요한을 만나고 5년전에 불의의 사고로 고인이 된 친형 조강제의 처자식이 3년 전에 출자금의 원리금 1천5백만불을 수령하고 북쪽 시애틀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우제 가족은 그들을 만나기 위하여 국내선 비행기로 시애틀로 이동했다.
(4) 시애틀 도심의 호스텔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4월 18일 목요일에는 오전에 시애틀형제교회(Seattle Brethren Church)를 방문하여 쌍둥이 조카이며 목사인 조영수와 조영탁을 만났다. 그리고 조우제는 형수 김정미의 사과를 받고 은행으로 가서 그녀가 보관하고 있던 부모님의 유산의 일부인 3백만불을 받아 호주에 있는 자신의 구좌로 송금했다. 그날 오후 조우제의 가족은 시애틀을 구경하고 보석상인 친척 장소영 부부를 만났다. 그들과 함께 바닷가의 해물식당에서 만찬을 즐기면서 젊은 그들의 포부와 미래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마냥 좋았다;
오늘은 드디어 4월 19일 금요일이다. 미국에 입국한지 7일째이며 날짜변경선을 통과함으로 하루를 벌었기에 사실은 8일이 경과하고 있는 날이다. 전체 일정을 10일로 잡았기에 조우제의 가족은 오늘 하루를 시애틀에서 보내고 일박을 한 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여 일박하고서 다음날인 4월 21일 일요일에 호주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할 예정이다.
미국의 서부에서 탑승하였기에 비행시간이 14시간으로 줄어들지만 문제는 반대로 일부변경선을 넘어가기에 이번에는 하루를 더 지나는 것으로 계산이 되어 전체적으로 이틀을 소요한 셈이 된다. 따라서 시드니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그 날짜가 4월 23일 화요일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2019년 4월 30일 화요일에 시드니에서 새학기가 시작되므로 딸 조한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하이스쿨에 등교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지나간 여정과 앞으로의 일정을 머리속으로 정리한 조우제가 침상에서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오늘 오전에 시애틀에 살고 있는 미국선교사 데이비드 로스 목사 곧 한국이름으로 오대원 선교사 부부를 만날 생각이다.
그들 부부로부터 미국에서 한국을 위하여 어떠한 선교전략을 수립하고 있는지를 한번 들어볼 생각이다. 그 이유는 조우제가 그냥 평범한 의사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싶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얻게 되자 줄곧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그 짙은 안개 농무를 하나님이 사라지게 해주신다면 그는 그 보답으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마음속 결심이다.
그것을 위하여 조우제는 시드니에서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고 이제는 더욱 의미가 있는 일들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우선 시드니 외곽에 실버타운을 지어 운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조우제는 노년의 오대원 목사를 만나서 그로부터 일종의 영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조우제의 바람대로 그날의 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번 그들을 만나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호스텔에서 조반을 마치자 조우제 가족은 일찍이 오이코스대학교 총장인 김요한에게서 받은 주소를 가지고 오대원 선교사의 집을 찾아가고 있다. 그 주소를 기록하고 있는 모발폰을 운전수에게 보여주자 택시가 신나게 시애틀 도심을 통과하여 외곽으로 빠지고 있다.
그렇지만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는 아니한 위치에 그 집이 자리를 잡고 있다. 조우제는 벌써 김요한 총장으로부터 받아 놓은 전화번호가 있기에 출발하기 전에 미리 전화를 드렸다. 따라서 오전 11시에 정확하게 현관문에서 노크를 했더니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준다. 80세가 넘은 여자분인데 한눈에 보기에도 사진에서 보던 오대원 선교사의 부인인 엘렌이다.
그 뒤에는 남편인 오대원 선교사가 서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조우제 가족이 노부부에게 인사를 한다. 오대원 선교사가 거실로 안내하면서 소파에 자리를 권한다. 그 자리에 앉기 전에 조우제가 서서 오대원 선교사 곧 로스 목사 부부에게 정식으로 자신과 가족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조우제가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저는 1990년대 초에 서울 신촌에서 의대를 다닌 사람입니다. 그때 예수전도단 화요 예배모임에 더러 참석하여 로스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로스 목사가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조우제가 자신의 가족을 소개한다; “여기는 제 아내인 장경옥인데 호주에서 간호사입니다. 그리고 우리 두사람의 딸인 조한나입니다. 현재 시드니에서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로스 목사가 먼저 말한다; “잘 오셨어요. 먼 길에 저의 집을 방문해주니 고마워요”. 엘렌은 아예 장경옥의 손을 잡은 후 포옹을 하면서 말한다; “저희 부부를 찾아주니 정말 고마워요. 잘 오셨어요… “;
모두들 자리에 앉아서 엘렌 부인이 차려준 티와 과자를 먹는다. 그때 로스 목사가 천천히 말한다; “우리 부부는 젊은 날 1961년에 한국으로 파송이 되어 선교사 일을 시작했어요. 1967년부터는 서울공대기독학생회 지도목사로 일했지요. 1971년에 안식년을 지내고자 미국에 돌아와서 당시 ‘성령운동’에 감명을 받았어요. 따라서 나는… “;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1972년에 한국에 돌아가 처음에는 공릉동에서 서울공대 기독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연희동으로 이사하여 신촌일대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영적 부흥운동’을 시작했지요. 그 결과 1973년에 서울에서 ‘예수전도단’이 출범하게 되었어요… “.
조우제 가족이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로스 목사가 간략하게 설명한다; “1973년에 커닝험 목사가 창설한 ‘와이엠’(Youth with a mission)이 한국에 상륙을 했는데 그후 그는 나에게 한국지부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그 이유가 외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전도활동에 나서게 되면 한국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위축이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
그 다음 로스 목사의 설명이 흥미롭다; “1979년에 와이엠 본부가 있는 하와이에 가서 내가 그들의 활동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자 나는 찬성을 하고 예수전도단을 그 지부로 만들었지요. 그 이유가 그들은 하와이를 본부로 하여 전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자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우리 한국의 젊은 기독청년들이 그 훈련을 받고 온세상에 나가서 선교하는 일이 크게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지요… “;
더 흥미로운 설명이 이어진다; “1986년에 나는 고려대학 정문에서 길거리 전도활동을 하다가 그만 한국정보기관에 촬영이 되고 말았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한국에서 추방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으로 보여요. 나는 선교지 한국에서 이탈이 되자 미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절망에 빠졌지요.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새로운 선교방향을 제시해 주었어요. 왜냐하면… “;
조우제의 가족이 숨을 참아가면서 경청한다. 그것을 보고서 로스 목사가 설명을 계속한다; “미국에는 벌써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고 더구나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탈북자들이 미국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우리 주님의 역사는 미국에서 그렇게 준비가 되고 있어요… “;
잠시 숨을 돌리고 로스 목사가 결론을 맺고 있다; “나는 그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복음으로 한민족을 통일하는 일에 그리고 북한을 복음화화는 일에 앞장서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이곳에서 ‘와이엠’ 산하에 ‘안디옥 국제선교 훈련원’(Antioch International Network)을 만들어 그 일을 추진하고 있어요… “;
조우제는 시종 로스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장차 무엇을 해야 할지를 나름대로 생각하게 된다. 우선은 궁금한 점을 질문한다; “로스 목사님, 연세가 벌써 80대 중반이신데 여기서 누구와 함께 살고 계시는 것입니까?... “. 그 말에 엘렌 사모님이 명랑하게 대답한다; “막내딸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요. 그들은 이곳에서 오래 클리닝 잡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 좋아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는 김요한 총장이 오클랜드(Oakland)에서 해준 말이 생각난다; “로스 목사님 부부는 한국에서 자녀를 3명이나 입양하여 잘 키우셨지요. 나는 한국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들 선교사에게 감복하고 있어요. 시애틀에 가시면 그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
그 말을 같이 들은 바가 있기에 엘렌 사모님을 바라보면서 장경옥이 먼저 제안을 한다; “오늘은 저를 막내딸처럼 생각하시고 저희 가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가시지요. 저희들이 바닷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
엘렌 사모님이 장경옥에게 말한다; “고마워요. 그러면 우리 부부가 함께 가도록 할게요. 차는 내가 운전하면 되어요”. 그날 조우제의 가족은 로스 목사 부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그리고 헤어질 때에 조우제는 미리 준비해둔 돈 봉투를 건넨다.
그것을 로스 목사님에게 주면서 조우제가 말한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저희들의 여행경비에서 절약하고 남은 것입니다. 한반도를 통일하는 복음일꾼들을 양성하는데 조금의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훗날 호주 시드니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조우제가 그 말을 그냥 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호주 시드니의 ‘와이엠’ 지부에서 로스 목사 부부를 초청하여 여러가지 행사를 치루고 있는 것을 그가 크리스챤 뉴스지를 통하여 몇차례 접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조우제가 로스 목사 부부를 만난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는 오랜 세월 그에게 중요한 영적인 각성제가 되고 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남도 변하지 않아요. 한국기독교인들이 주님의 뜻에 맞게 변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통일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아요. 나는 그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
조우제는 앞으로 호주 시드니에 살면서 과연 어떻게 복음 안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자 결심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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