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2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9. 3. 06:24

농무, 짙은 안개27(손진길 소설)

 

조우제 가족은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있다. 그들 3사람은 3일 밤을 도심 바닷가에 있는 그린 거북 호스텔’(the Green Tortoise Hostel)에서 지냈는데 숙박비가 저렴하여 로스(Ross) 목사 부부에게 헌금까지 할 수가 있었다.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조우제가 아내 장경옥에게 어제 로스 목사 부부를 만난 일이 어땠는가를 한번 물어본다. 그러자 그녀가 아주 상쾌하게 너무 좋았어요. 정말 한국인을 사랑하시는 분들이세요. 저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어요라고 응답한다. 그 옆에서 한나가 말을 보태고 있다; “저도요, 엄마 아빠”.

그날 아침에 그들은 호스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탄다.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2시간 15분이 걸린다. 만약  자동차로 달린다면 무려 1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럴 것이다. 그 사이의 거리가 거의 1300킬로미터나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태여 비유를 하자면 서울에서 일본의 남쪽에 있는 오키나와까지의 직선거리에 해당한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조우제는 미국이 남한 땅 10만 평방 킬로미터의 거의 100배나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하기야 조우제의 가족이 살고 있는 호주만 하더라도 그 면적이 미국의 78%가 되고 있는 큰 땅인 것이다.

조우제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 일단 숙소부터 정하고 있다. 공항안내 데스크에 문의하였더니 일박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는 도심의 호텔을 소개하여 준다. 오전에 일찍 예약하고 있으므로 다소 싼 값이다.

호텔에 예약을 했지만 아직 체크인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호텔에 짐을 맡겨 두고서 시내로 나온다. 그날 조우제 가족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the Golden Gate Bridge)를 일단 구경한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북쪽으로 가는 긴 다리인데 1930년대에 현수교로 건설했다고 한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조우제는 역사적인 사실을 되짚어 보고 있다; ‘미국이 세계 제1차대전 당시 유럽에 전쟁상인으로 참여하여 막대한 부를 얻었다. 그런데 10년후에 그 후유증으로 공황이 오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부가 1930년대에 엄청난 건설공사를 시행했다. 이것도 아마 그때의 작품인 모양이다‘;

조우제의 역사적인 추론이 맞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좁은 (, bay)을 건너 그 동편에 있는 오클랜드(Oakland) 시와 연결하고 있는 소위 베이 브릿지’(the Bay Bridge)1935년에 착공이 된 것이니 말이다;

  

그날 점심식사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족과 함께하면서 조우제가 제안한다; “식사를 마치면 우리 모두 인근 버클리 시에 가서 그 유명한 서부의 아이비리그로 불리고 있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대학’(UC Berkeley)을 구경하는 것이 어떨까?... “. 아내 장경옥과 딸 조한나가 모두 찬성이다.

그날 오후에 조우제 가족은 버클리대학의 이모저모를 구경한다;

 그것이 호주에서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는 딸 한나에게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학부모인 조우제와 장경옥이 생각하고 있다;

 그와 같이 조한나의 장래에 벌써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그들 부부이다.

자신들이 젊은 시절 짙은 안개 속을 헤쳐 나왔기에 그들의 유전자를 받은 조한나가 불굴의 의지로 찬란한 미래를 개척하여 줄 것으로 그들이 크게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버클리대학을 구경하고 있는 그들의 관심이 보통이 아니다.

그날은 그 정도로 하루의 일정을 마감하고 조우제의 가족은 짐을 맡겨 둔 호텔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정식으로 체크인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은 조반을 호텔에서 끝내고 체크아웃을 한 다음에 짐을 택시에 싣고 인근 오클랜드 시로 향한다;

 그곳 오이코스 대학교 총장으로 있는 김요한 목사를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한 것이다.

전날 조우제가 미리 연락을 해두었기에 김요한 목사가 총장실에서 조우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두번째로 만나고 있는 것이기에 이번에는 간단하게 악수와 포옹을 한다. 그리고 차를 권하면서 김요한 목사가 옛날 친구인 조우제에게 말한다; “그래, 조형, 시애틀에 가서 형수님과 조카분을 만나고 또 오대원 선교사 부부도 잘 만나보았어요?... “;

조우제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김목사가 도와주어서 아주 쉽게 만날 수가 있었지요. 덕분에 일정이 수월하게 끝났기에 오늘은 호주로 돌아가기 전에 시간을 내어 잠시 김목사에게 다시 들린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요한이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일부러 인사차 다시 들러 주어 정말 고마우이. 그런데 표정으로 보아서는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 역시 사람을 많이 상대해본 대학총장이라 그런지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조우제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 다음에 조우제가 진지하게 말한다; “사실은 내가 오대원 선교사를 만나서 김총장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곳 오이코스대학교에서 좋은 인재를 많이 배출하여 시애틀에 보내어 주었기에 안디옥 네트웍사업이 활성화가 되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 요즘은 그 지원사업이 어떠한 가요?... “.

그 말을 듣자 김요한이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 내가 하는 일이야 여기 총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조형도 알다시피 우리 한민족의 미국 이민역사는 호주보다 훨씬 길어요. 그리고 그 성격도 좀 다르지요. 초창기 미국에 들어온 한인이민자의 상당수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월남한 분들이셨지요. 그러므로 그들은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을 만나는 한편 고향인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위하여 도움을 주고자 했지요… “.

김요한 목사가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설명한다; “그러한 움직임이 있기에 북한에 대한 선교도 나름대로 그 흐름에 동승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직 2달이 안 되었지만 지난 227일 하노이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정상회담이 불행하게도 완전히 실패로 끝나자 그만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어요… “;

조우제 가족이 큰 관심을 가지고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드디어 김요한 목사가 결론을 맺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중국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따라서 그 문제가 풀릴 때까지는 민간차원의 방문도 어려워요. 자연히 안디옥 네트웍도 정상가동이 어렵다고 나는 판단해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한가지 질문을 한다; “현실이 그러하군요.  그런데 만약에 극적으로 그 옛날 미소 간의 경쟁의 결과처럼 소련의 붕괴와 흡사한 그러한 큰 변화가 중국이나 북한에서 발생한다고 하면 한반도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후폭풍으로 발생할 수가 있겠군요.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

그 말에 김요한 총장이 즉시 대답한다; “그것은 나의 기도제목이자 우리 기독교인 모두의 기도제목이지요. 그렇게 되어야 우리가 복음을 들고 북한 땅을 마음 놓고 밟을 수가 있을 테니까요!... “.

이왕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조우제가 한가지를 더 질문한다; “내가 잘 몰라서 한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군요. 그 전에는 어떤 방법으로 북한선교를 우회적으로 하신 것이지요? 그 방법이 어떠했나요?... “.

김요한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천천히 대답한다; “서너 가지 방법이 있었어요. 첫째, 중국 연변에 과학기술대학을 세워서 그것이 성과가 있자 그 뒤를 이어 여기 미국의 한인교회와 한국의 교회들이 평양에도 과학기술대학을 세우는데 힘을 보태었지요;

 둘째, 북한 당국이 요청하고 있는 사업에 투자를 한 선교단체들이 있어요. 특히 통일교가 그 일에 적극적이었지요… ”.

잠시 숨을 쉬고서 김요한이 설명을 계속한다; “셋째, 북한어린이들의 영양실조를 예방하기 위하여 국경지대에 들어가서 염소 젖을 짜서 공급하는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넷째, 북한에서 정치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봉수교회가 있어요. 어쨌든 교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988년에 차제 건물을 세웠으니 차제에 북한교회를 방문하고 돕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

김요한이 결론삼아 말한다; “물론 그와 달리 선교사들이 이산가족을 서로 만나게 하면서 조심스럽게 기독교사상을 북한사람에게 전파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성경책을 밀수품처럼 보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중단이 된 상황입니다”.

그날 조우제는 그 정도의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다. 따라서 김요한 목사에게 감사하면서 그와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함께하고서 헤어진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가야만 한다. 저녁비행기를 타고서 호주 시드니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애초의 일정대로 움직였기에 2019423일 화요일에 정확하게 시드니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시드니공항에서 에핑(Epping)에 있는 자택으로 오는 길에는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것이 시드니 중앙역(Central Railway Station)에 접근하면서는 그냥 전철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바깥구경을 하면서 전철로 달리니 어느 사이에 에핑에 도착하고 있다;

집에 당도하자 조우제 가족은 우선 편하게 잠부터 푹 잔다. 그 다음에 다시 일어나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떠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과연 조우제와 장경옥에게 오랜 세월 드리워져 있던 그 농무가 완전히 깔끔하게 사라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