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19(손진길 소설)
조우제 가족이 미국에 도착한지 3일째가 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식사하고 그들은 손위 처남 장준석 목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으로 남하하여 뉴욕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떠나 오기 전에 조우제가 처남인 장준석 목사에게 한가지를 부탁한다.
그 내용이 특이하다; “형님, 혹시 이곳 ‘베리타스 실버타운’을 지었을 때의 설계도면을 사본으로 1부씩 구할 수 있을까요? 훗날 제가 살고 있는 시드니에서 그것이 필요할 것만 같아서 미리 부탁을 드립니다… “;
그 말을 듣자 장준석 목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래, 의사인 자네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하니 훗날 시드니에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군. 그것 참 의미가 있는 일이야. 내가 반드시 그 설계도를 찾아서 매제의 이멜로 보내어주겠네!... ”.
옆에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경옥이 속으로 생각한다; ‘한나 아빠가 그런 생각이 있어서 아직 스코필드의 땅을 팔지 아니하고 있는 것인가? 엄청 비싼 값으로 사겠다고 하는 바이어가 있어도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더니 아마 그래서 그런 모양이군!... ‘.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스코필드의 땅의 규모가 여기 맨스필드의 실버타운 크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장경옥이 슬쩍 오빠 장준석 목사에게 물어본다; “오빠, 그런데 여기 실버타운의 면적이 어느 정도예요? 몇 에이커이지요?... “.
장준석 목사가 쉽게 대답한다; “작은 호수 면적까지 합하여 5에이커 정도이지. 6천평 규모이니 2베드룸 50채는 거뜬히 지을 수가 있어요. ‘프리 스탠딩 하우스’(free standing house)로 지어도 여기서는 대지가 80평 정도이면 한 채를 지을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 도로를 내고 공용건물까지 충분히 지을 수가 있다고 보아야지… “;
그 설명을 듣자 장경옥이 생긋 웃는다. 남편 조우제의 생각을 알 것만 같다. 스코필드의 땅과 같은 규모이니 그가 시드니에 도착하면 나중에 그곳에 50채의 하우스를 가지는 실버타운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뉴욕으로 출발하기 위하여 차가 움직이기 전에 하성은이 남편 장준석 목사에게 말한다; “여보, 뉴욕에 가는 김에 아들 장하늘이도 한번 만나보세요. 일이 바빠서 그런지 요즘은 통화를 자주 하지 않는군요!… “;
뉴욕시내로 들어서자 장준석 목사가 큰 종합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그러면서 조우제 가족에게 말한다; “내가 막냇동생 치선이에게는 어제 벌써 연락을 해두었어요. 오늘 오전 11시쯤에 내방을 하겠다고 말이예요. 이제 시간이 거의 비슷하게 되었으니 우리 한번 들러 봅시다… “.
서구사회에서 이민생활을 하게 되면 남의 집을 방문할 때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필수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정해진 예약시간에 맞추어 벨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러하듯이 몇 분 빠르거나 늦거나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그러한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지 장준석 목사가 조우제 가족 3사람에게 장치선 의사의 사무실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고 말한다. 11시 예약시간에서 3분 일찍 도착을 했는데도 그러하다;
그것을 보고서 조우제는 장준석 목사가 성격이 상당히 치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자 한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철두철미한 사람이 어떻게 젊은 날 한국에서는 그토록 큰 사업상 실패를 경험한 것일까? 그 참 알다가도 모르겠군!... ‘. 훗날 조우제가 그 점을 아내 장경옥에게 물어보자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다.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오빠는 저보다 14살이 많아요. 첫째와 둘째 오빠가 부모님 재산을 차지하고 서울에서 큰 사업에 뛰어든 것이 1991년 곧 그들의 나이 33살과 31살 때의 일이지요. 큰오빠와 둘째 오빠가 당시 서울공대와 서울 문리대에서 공부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초년생에 불과해요;
그들이 의욕에 넘쳐서 큰 돈을 투자하여 사업하다가 보니 단 2년만에 망하고 말았지요... “.
장경옥이 한숨을 내쉬면서 이어서 말한다; “옛말에 이룩하는 것은 수십년이 걸리지만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진리인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제 눈으로 그것을 똑똑하게 본 걸요. 제가 여고 3학년 때 1993년도에는 절망적이었어요. 저보다 10살이 많은 막내 오빠가 마침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았기에 두 형의 가족을 미국에 초청하여 준 것이지요… “.
잠시 숨을 쉬고서 장경옥이 마무리를 한다; “저의 언니는 시집에서 잘 살고 있었기에 독신인 저와 어머니는 서울에서 따로 우리 끼리 살면서 고생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 많은 이야기를 오늘 또 하게 되네요. 저는 이제 모두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살고 싶어요!... “.
그렇지만 미국에서 오랜 세월 고생을 많이 한 장준석 목사는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가 11시 정각에 동생의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그러자 안에서 전문의 장치선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려 있습니다”.
장준석 목사가 조우제 가족 3사람을 데리고 함께 들어서면서 유쾌하게 말한다; “장치선 박사, 내가 오늘은 반가운 손님들을 모시고 왔어. 보라고, 우리 막내 여동생 장경옥과 그의 남편 조우제 그리고 딸 조한나야… “. 벌써 그들을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장치선이 한걸음에 그들에게 접근하여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장경옥을 품에 안고서 말한다; “경옥아, 보고 싶었다. 이 막내오빠가 너무 무심했구나”. 장경옥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한다; “치선이 오빠, 나도 보고 싶었어요. 우리 집안을 살린 치선이 오빠를 내가 참으로 보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오빠… “.
그 말에 냉정하게 보이는 장치선이 안경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말한다; “내가 경옥이 너를 만나니 오늘은 눈물이 다 나오는구나. 나야 이곳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전문의가 되어 잘 지냈지만 너는 홀로 서울과 호주에서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니!... 모두가 우리 오빠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니, 경옥이 네가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 하려무나!... “;
그 말을 듣자 장경옥이 일부러 쾌활하게 말한다; “그 말은 치선 오빠가 나보고 무조건 큰오빠와 둘째 오빠를 용서하라고 권하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벌써 두 오빠를 용서했고요. 그리고 막내 오빠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 뿐이예요. 참으로 우리 집안을 살린 큰 인물이 치선 오빠이니까요!... “.
그 말에 장치선이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말한다; “참으로 고마운 말이다. 내가 부모님 재산을 못 받았어도 미국에서 성공을 했듯이, 경옥이 너도 호주에서 성공을 했겠구나. 이민국가에서는 맨 땅에서 일어나는 자가 진정한 승자이지. 그래 우리 모두가 그러한 승자가 맞구나, 하하하… “.
그날 55세인 장치선의 사무실로 그의 아내인 간호과장 최준미가 들어선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 장준석 목사가 얼른 조우제 가족에게 소개를 한다; “경옥이 너도 처음 보겠구나. 막내 올케인 최준미 간호과장이다. 제수씨 여기는 시누이 장경옥과 그녀의 남편인 조우제 그리고 따님 조한나예요… “.
3사람이 반갑게 최준미와 인사를 나눈다. 그것을 보고서 장치선이 간단하게 자신과 아내에 대하여 소개를 한다; “나는 서울 Y대학교 의예과를 마치고 한국에서 1년간 방위근무를 했어요. 그리고 복학하여 본과 4학년을 마치자 마자 1989년초에 미국으로 들어왔어요. 왜냐하면, 서울에서 ‘CC커플’로 사귀던 간호학과 출신 최준미 간호사의 가족이 전부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지요…”;
조우제 가족들이 관심있게 경청하자 장치선이 계속 설명한다; “장인어른이 목사님이신데 뉴저지에 있는 한인교회에 담임으로 청빙이 되셨기에 일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이지요. 덕분에 나도 함께 미국에 따라가서 집사람과 결혼을 하고 미국의 종합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한 후에 영상의학 전문의가 되었어요. 지금을 이곳 뉴욕의 종합병원에서 집사람과 함께 근무하고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그 옆에서 장준석 목사가 부연설명을 한다; “참, 그리고 두사람의 딸인 장소영이 보통 인물이 아니지. 그녀는 뉴욕에서 미대를 마치고 보석가공을 배웠는데 그 솜씨가 일품이야. 그래서 재미교포 가운데 보석업에 종사하여 성공하고 있는 젊은 사업가 박규철을 만나 LA에서 살다가 작년에는 북쪽 시애틀로 점포를 옮겼다고 해. 아주 동부에서 서부 그리고 북부로 거침없이 이주하는 당찬 젊은 여성이지요, 하하하… “;
그 말이 끝나자 조우제가 조용히 막내 처남 장치선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저의 대학교 의대 선배님이시군요. 연세로 보아 저보다 7년 선배가 되겠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Y대학교 의대 본과 1학년을 다니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사람입니다. 지금은 호주에서 의대공부를 모두 마치고 가정의로 일하고 있지요. 잘 부탁합니다, 선배님… “.
그 말을 듣자 장치선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이거 내 여동생 경옥이와 결혼을 해준 고마운 매제이면서 또한 나의 대학 후배가 되시는 구만. 오늘 아무리 바빠도 우리 집에서 축하파티를 해야 겠어. 여보, 몇 시가 좋을까?... “.
그 자리에서 최준미가 얼른 대답한다; “그러면 오늘 일과를 마치고 여기서 5시에 다시 만나 함께 집으로 가도록 하지요. 집에 포도주와 샴페인이 충분하니 파티 준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좋아요, 호호호… “.
그 쾌활한 음성을 들으니 그녀가 여걸인 것만 갔다. 미국에 온 후 참으로 유쾌한 만남이다. 그래서 조우제의 가족들은 괜히 기분이 좋다. 그날 점심식사를 중국식당에서 한 다음 오후 5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일단 헤어진다;
그 이유는 뉴욕의 현지인 로펌에 근무하고 있는 장준석 목사의 아들인 30세의 장하늘 변호사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떠한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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