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16(손진길 소설)
2019년 4월 10일(수)에 장경옥이 미국에 살고 있는 큰 오빠 장용화로부터 급한 내용의 카톡을 받는다. 금년에 83세인 모친 조경숙이 위독하다는 것이다. 큰 오빠인 장용화가 서울에 살고 있는 여동생 장경주로부터 시드니에 살고 있는 장경옥의 모발폰 번호를 얻어서 그렇게 카톡을 연결한 모양이다;
그 사실을 듣게 된 장경옥이 남편 조우제에게 그대로 알려준다. 그러자 조우제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일 날이 밝으면 내가 미국 뉴욕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을 알아볼게요. 마침 다음주부터 한나의 가을방학이 시작되니 이번에 딸을 데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미국에 가서 편찮은 장모님을 보고 오도록 합시다. 나도 차제에 미국에 들릴 일이 좀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장경옥이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이유는 남편 조우제가 따로 미국에서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 궁금하여 그녀가 남편의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 장경옥의 표정을 보고서 조우제가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서 조용히 말한다; “내가 아직 당신에게 말하지 아니한 내용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나의 부모님의 재산과 나의 상속분을 모조리 처분하여 미국으로 도피해버린 나의 형 부부에 대한 그후의 이야기이지요. 내가 우연한 기회에 그들의 근황을 파악하게 되었어요. 그것은… “.
그 말을 들은 장경옥이 깜짝 놀라서 묻는다; “몰래 해외도피한 형님 내외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게 된 거예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 그 말에 조우제가 끄응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혼잣말처럼 말한다; “그렇지요. 그러니 내가 그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지요… “.
장경옥이 이제는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그녀의 귀에 다음과 같은 조우제의 신음 섞인 음성이 나직하게 들려온다; “5년전인 2014년 4월초에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가까운 인근 도시의 모 대학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어요. 그 사망자 명단에 나의 형의 이름이 우연히 들어 있는 것을 내가 발견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장경옥은 계속 조우제의 설명을 듣고자 한다. 조우제가 부연설명을 한다; “그 대학은 유명한 UC ‘버클리’(Berkeley) 대학 남쪽에 있는 오클랜드(Oakland) 시내의 ‘오이코스’(Oikos) 대학이지요. 참고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은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있는 실용음악 버클리(Berklee) 음대와는 다르지요. 총을 난사한 자의 신원이 44세의 재미교포 고 모씨인데 그가 쏜 총에 10명이 사살되었어요. 그 가운데 51세인 나의 형 조강제가 포함이 되어 있었지요. 그는 당시… “;
조우제가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그 대학의 ‘ESOL’과정의 학과장을 맡고 있었던 모양이예요. 그 대학의 설립자인 재미교포 김 목사와 공동 투자하여 10년전에 그 대학을 설립한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그러한 직책을 맡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총을 맞고 죽고 말았으니 어렵게 미국으로 빼돌린 그 엄청난 재산이 본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
참으로 기가 막힌 이야기이다. 그래서 장경옥이 조용히 물어본다; “이제 와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있는 그 도시로 찾아가서 형의 가족들을 만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본인의 재산을 도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다시 끄응 신음소리를 내다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요. 그 모든 일이 사후 약방문에 불과하겠지요. 하지만 형수와 조카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한번 알아보고 싶군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던 형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말았으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카들의 얼굴이나 한번 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
그제서야 장경옥이 말한다; “그런 심정이라고 하면 저도 그곳을 방문하는 것에 찬성이예요. 저 또한 그와 비슷한 심정으로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서 뉴저지에 살고 있는 오빠 집을 방문하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장경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당신도 한번은 미국에 살고 있는 오빠들의 얼굴을 보아야 하겠지요. 부모님의 재산을 들어먹고 당신과 셋째오빠 그리고 언니의 유산까지 모두 날려버린 첫째와 둘째 오빠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을 것이 아니겠어요… “.
그 말에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장경옥이 한참 말이 없다가 드디어 일을 연다; “그래도 셋째 오빠가 고마운 사람이지요. 자신의 몫까지 부모님의 유산을 모조리 날려버린 두 형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미국으로 초청하여 살길을 열어 주었으니까요… “;
장경옥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서 설명한다; “그 덕분에 두 오빠네 가족이 모두 1994년에 도미하여 그곳에서 생활의 기반을 잡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2001년에 큰 오빠가 방한하여 그동안 처녀인 내가 8년간이나 모시고 있던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시고 갔지요. 따라서 나는 그 이듬해 2002년 5월에 호주로 유학을 떠나온 것이고요. 그런데… “.
오늘에서야 조우제가 상세하게 저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의 귀에 아내 장경옥의 말이 조용히 들려온다; “큰 오빠와 둘째 오빠가 부모님의 재산을 모조리 날려버린 그해 1993년에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돈이 없어서 대학진학을 할 수가 없었지요. 더구나… “.
장경옥이 잠시 숨을 쉬고서 더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이듬해에는 어머니를 한국에 두고 그들 가족만이 미국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므로 내가 빨리 직업을 가져야만 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간호보조학원에서 재빨리 단기과정을 공부하고 병원에 간호조무사로 취직한 것이었어요… “;
조우제는 이미 아내 장경옥으로부터 들은 내용이 일부 들어있다. 하지만 가장 소상한 이야기는 오늘 정확하게 듣고 있다. 따라서 조우제가 말한다; “딱하기는 나와 별로 다르지가 않군요. 그래도 당신에게는 서울에서 좋은 집에 시집을 가 있는 언니 장경주 처형이 있어서 약간의 도움을 받지 않았겠어요. 그나마 다행이지요… “.
장경옥이 남편 조우제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은 그렇다. 자신에게는 그래도 서울의 언니 장경주와 미국에서 의사로 성공한 셋째 오빠 장치선이 있다. 그러나 조우제에게는 그러한 고마운 형제가 전혀 없다. 그러니 더 고립무원이 아닌가? 남편이야 말로 혈혈단신인 것이다. 그래서 장경옥이 더 이상 넋두리를 하지 못한다.
다음날 아침에 조우제가 여행사 여러 곳에 전화하여 가장 빨리 미국 뉴욕으로 가는 좌석 3개를 예약한다. 그것도 미국 뉴욕 다음에 샌프란시스코이고 그 다음이 10일후에 호주 시드니로 돌아오는 비행기표이다;
저녁에 병원에서의 간호사 일을 마치고 장경옥이 돌아와보니 남편 조우제가 예약한 비행기 출발일자가 토요일인 4월 13일이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일을 끝내고 시드니에 다시 도착하는 일자가 열흘 후인 화요일 4월 23일이다.
그 비행기표를 보여주면서 조우제가 말한다; “한나가 제1학기 텀(term) 1을 실질적으로 금요일인 4월 12일에 끝내지요. 그래서 이번 가을방학에 함께 미국에 가기 위하여 다음날 토요일 4월 13일에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했어요. 그러니 당신이 한나와 함께 간단하게 여행가방을 꾸리세요. 내가 우선 비행기 티켓과 여권을 모두 챙기고 비자카드를 확실하게 지참할게요”.
그 말을 듣자 얼른 장경옥이 말한다; “그러면 우제 당신은 모발폰(mobilephone)을 미국 현지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조치를 해놓으세요. 그것이 편리해요”. 조우제가 얼른 ‘오케이’라고 말하면서 딸 한나의 방에 들러 경과설명을 해준다. 한나도 매우 좋다고 말한다.
조우제의 가족 3사람이 미국 뉴욕공항에 도착한 날이 여전히 토요일인 4월 13일이다. 그 이유는 날짜변경선을 지나왔는데 미국이 호주보다 시간이 하루 늦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하루를 벌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귀국을 하는 경우에는 도로 까먹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이치가 다 그런 모양이다. 초년에 잘 나가게 되면 말년에 어려움이 온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잔뜩 안개가 끼어 있으면 나이가 들어서는 맑고 쾌청한 날이 더 많다고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끝까지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에서 조우제의 가족은 어떠한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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