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1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8. 22. 01:00

농무, 짙은 안개15(손진길 소설)

 

조우제 부부가 201110월에 시드니 외곽 북서부 스코필드(Schofield)에서 비교적 시티에 가까운 에핑(Epping) 지역으로 이사를 온다. 이사를 오자마자 조우제는 아내 장경옥에게 딸 한나를 데리고 인근에 있는 에핑 초등학교’(primary school)를 한번 방문해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조우제가 호주에서는 만6세가 아니라 만5세부터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하다는 말을 최근에 한국영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경옥이 딸 한나를 데리고 에핑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그날 교감이 장경옥 모녀를 직접 만나 말한다; “마침 적기에 이사를 잘 오셨어요. 우리 학교는 일년에 4차례 학기 (term)에 맞추어 만 5세가 넘은 아동을 입학시키고 있어요. 이번 학기는 10월 중순에 시작되는데 이제 이사를 오셨으니 한나1학년(year one)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학교에 등교시켜 주세요”.

그때부터 조한나가 즐거운 마음으로 초등학교에 다닌다. 성격이 원만하여 학우들과 잘 지내고 있다. 하기야 스코필드에 살 때에 탁아소와 유치원을 오래 다닌 한나이다. 그러니 단체생활에 상당히 익숙한 것이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자 학교에서 갑자기 한나가 배가 아프다고 야단이다. 양호교사가 급한 조치를 하였지만 걱정이다. 따라서 두 정거장 남쪽 데니스톤(Denistone)에 있는 라이드 종합병원’(Ryde Hospital) 응급실로 한나가 실려간다;

양호교사가 급히 학부모인 장경옥에게 모발폰으로 연락을 취한다. 5분도 되지 아니하여 장경옥이 도착한다. 같은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그녀이기에 재빨리 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각종 검사를 한 결과 맹장염(Appendicitis)라고 한다. 장경옥이 수술에 동의를 하자 급히 시술이 이루어진다. 3일동안 한나가 입원을 한 다음에 퇴원하여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1주일이 되는 날 다시 병원을 방문하여 수술한 부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서 조우제가 깊이 생각을 한다. 역시 아픈 사람을 위해서는 의사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은 한국에서 의예과만 마치고 본과 1학년에 다니다가 중도에 자퇴를 하였다. 가정형편이 갑자기 어렵게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한국에서 전문의가 되어 의사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11년 올해 자신은 한국나이로 40살이다. 내년이면 만으로 40세가 된다. 이제는 돈을 벌만큼 벌었다. 무언가 의미가 있는 일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 나는 불혹의 이 나이에 무슨 일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조우제는 장고 끝에 자신은 호주 시드니에서 의과대학 공부를 마치고 인턴과정을 거친 다음에 가정의 GP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하면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포 한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더 의미가 있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한번 결심을 하면 마치 불도저와 같이 밀어 부치는 것이 조우제의 성격이다. 따라서 그가 2011년말까지 시드니에 있는 의과대학을 전부 찾아다니면서 입학조건을 파악하고 있다. 그 결과 조우제는 최근 2007년에 서부 시드니대학교’(Western Sydney University)가 개설한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얻고 있다;

자신의 결심을 아내 장경옥에게 밝혔더니 그녀가 진심으로 환영하며 적극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힘을 얻은 조우제가 이듬해 2012년초부터 2015년말까지 만 4년간 의과대학 본과에서 공부를 하고서 이어 수련의 생활을 시작한다. 수련의 과정이 끝나자 어엿한 가정의 GP의 자격을 호주에서 취득한다;

 

조우제가 에핑 집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는 메디칼 센터’(medical centre)에서 연봉계약을 하고 가정의로 근무를 시작한 때가 2018년이다. 그의 나이도 어느 사이에 한국나이로 47살이다. 조우제는 아직 50살도 안되었으니 그만하면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한다;

GP로 첫 출근을 하고 조우제가 집에 돌아오자 그날 밤 아내 장경옥이 침실에서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우제 당신이 47살에 가정의가 된 것은 축하할 일이예요. 하지만 당신이 편히 의대공부를 계속하도록 제가 그만 둘째 아이를 낳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지를 못했어요. 이제는 저도 나이가 44살이나 되어서 아기를 더 가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은 딸 한나만 있으면 되나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면서 천천히 말한다; “사실은 그 문제를 내가 많이 생각해보았어요. 나는 경옥 당신도 알다시피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예요. 당신도 마찬가지이지만요. 그래서 나는 재산을 가지고 형제 간에 다투는 것보다는 차라리 딸아이 한나만 있는 것이 더 좋아요. 그러니 후회하지 않아요… “.

뒤끝을 흐리고 있는 남편 조우제의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장경옥은 자신의 마음이 허허로워지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이나 자신이나 형제로부터 배신을 당한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아니한 아픔으로 남아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만 잠을 청하고자 한다.

한편 딸 한나2018년인 지금 벌써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하이스쿨(high school) 1학년이다. 호주말로는 year 7인 것이다. 공부를 제법 잘하여 공립 명문 소위 셀렉티브’(selective)에 다니고 있는데 6년후 2024년에는 대학생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조우제는 한국나이로 53세가 된다. 아내인 장경옥50세가 된다;

조우제는 메디칼 센터에서 가정의로 일하면서 그와 같이 세월이 지나가는 것과 자신의 나이가 멀지 아니하여 50줄에 접어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그렇게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세월 가운데 좀더 보람이 있는 일을 찾아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민사회에서 그러한 중요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상대는 많지가 아니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조우제에게는 친동생과 같은 한국영 목사가 있다. 그는 리드콤에서 한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한국영 목사가 모처럼 쉬는 날이 매주 월요일이다. 그 점을 알고 있는 조우제가 2019121일 월요일 저녁 이스트우드에 있는 중화요리점 양자강에서 한국영 목사를 만나 모처럼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우제가 먼저 말문을 연다; “한목사는 목회도 하고 때로는 오피스청소도 하느라고 매우 고단하겠어. 요새는 좀 어떠신가?”. 한국영 목사가 껄껄 웃으면서 대답한다; “형님, 아직 젊은 저는 두가지 일을 병행해도 괜찮습니다. 아무렴 지난날 6년이상의 세월을 투자하여 호주에서 가정의 GP가 되신 형님만이야 하겠습니까?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역시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자네도 참 내가 할 말이 없도록 만들고 있구만. 나야 한국에서 마저 끝내지 못한 공부를 여기 시드니에서 한 것에 불과하지. 한목사는 호주에 와서 본래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 목회의 길로 접어들어 기어코 한인교회를 개척하고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더 대단한 일이지… “.

그 말에 한국영 목사가 겸손하게 말한다; “저는 아픈 사람을 만나면 고치지를 못하고 의사인 형님에게 보내는 일만 하고 있는 걸요. 그러니 형님이 더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조우제가 얼른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육신의 병을 고치기도 힘이 들지만 한목사는 영적인 치유까지 행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더 근원적인 치유를 하고 있는 셈이지… “.

그 말을 듣자 한국영 목사가 말한다; “이거 오늘은 제가 목사가 아니라 우제 형님이 목사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하실 말씀이 있어서 저를 불러내신 것입니까?... “.

조우제가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별 이야기가 아닐세. 그저 세월이 유수와 같이 지나가고 우리가 이곳 시드니에서 너무 빨리 늙어가는 것만 같아서 한 목사 자네를 불러서 함께 식사나 하고자 한 것이지… “.

그 말을 듣자 한국영 목사가 의사 조우제의 얼굴을 잠잠히 쳐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우제 형님의 얼굴이 이제는 완연히 중년입니다. 제가 올해 한국나이로 46살이니 형님은 48살이군요. 참 세월이 빠릅니다”.

그 말에 조우제가 본론을 꺼낸다; “그래서 말이야. 나는 더 늙기 전에 무언가 더 보람이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 예를 들면, 삼사 십년 전에 호주에 이민 와서 열심히 사시다가 이제는 늙어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한인들을 실버타운에 모아서 보살피는 일을 해보면 그것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지. 한목사의 생각은 어떠한가?... ”;

한국영 목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저와 같은 한인목회자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진작부터 나누고는 있지만 막상 계획적으로 일을 추진하지는 못하고 있지요. 그런데 형님과 같은 분이 합세하여 그 일을 함께한다고 하면 분명히 성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제가 한번 교계에서 그러한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모아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날은 그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고 즐겁게 식사를 하다가 헤어진다. 앞으로 그 일이 시드니에서 과연 어떻게 추진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