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무, 짙은 안개(손진길 소설)

농무, 짙은 안개1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8. 20. 16:35

농무, 짙은 안개14(손진길 소설)

 

조우제는 마산에서 서울에 있는 명문 Y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하여 다닌 사람이다. 그만큼 머리가 좋은 편이다. 물론 가정형편의 큰 변화로 말미암아 본과에 진학하였다가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바로 자퇴를 하였다;

그는 형 부부의 배신으로 고향에서 부모님의 재산이 모두 사라져버리자 한국에서 살 수가 없어서 해외이민을 떠나왔다. 조우제는 일찍 의예과를 마치고 1994년에 방위근무를 끝낸 바가 있기에 1996년초에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점수제 이민을 떠나오는데 있어서 애로사항이 없었다;

그때 한국나이로 25세인 청년 조우제는 오클랜드한인교회에서 강원규 집사를 만나 그의 호의로 청소업에 뛰어 들었다. 그가 2001년초에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재이민을 올 때가지 오클랜드에서 5년간 강집사의 신임으로 오피스클리닝을 하면서 슈퍼바이저에 이어 하청업체를 경영하기도 했다.

조우제는 호주 시드니에서도 2년반이상 오피스클리닝 잡(job)을 계속했다;

 그 결과 무려 7년 이상 청소하여 번 돈을 모두 저축하여 그 돈으로 그는 200310월에 시드니 외곽 북서부 라우스힐에 있는 2헥타아르의 땅과 주택을 사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조우제는 오피스클리닝을 그만두고 라우스힐에 살면서 홈클리닝을 시작했다. 그는 200312월에 홈클리닝을 하는 파트너를 구하다가 우연히 이웃 동네 캘리빌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장경옥을 만났다.

그녀는 서울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오래 일하다가 2003년초에 호주에 유학을 와서 뉴카슬대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려고 했다. 그 이유는 호주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협회에 등록하여 정식간호사가 되면 보수도 좋고 영주권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돈이 넉넉하지 못하여 일년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 자퇴를 하게 된 것이다. 이제 홀로 낯선 호주 땅에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장경옥은 우선 한국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시드니로 들어와서 변두리 캘리빌에서 자취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때 장경옥이 우연히 청소파트너를 구하고 있는 조우제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카슬힐 쇼핑센터에 들렀다가 그곳 구인게시판에 한국어로 집 청소 여성 파트너 구함이라는 조우제의 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발폰으로 연락을 취했더니 일요일에 조우제를 만날 수가 있었다.

곧바로 이웃 동네 라우스힐에 살고 있는 조우제와 함께 캘리빌에 살고 있은 한인여성 장경옥이 파트너가 되어 매일 아침 시드니 노스 쇼어로 출근하면서 홈클리닝을 같이 했다. 그렇지만 2003년이 다 가도록 두사람은 나이와 가정형편에 대해서는 일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20041월에 캘리빌에 지독한 안개가 끼이게 되어 그 지역을 벗어나고자 두사람이 애를 썼다;

 그 농무(濃霧)의 두려움 속에서 조우제와 장경옥은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호주에서 앞길을 헤쳐갈 수가 없다고 하는 일종의 동료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비로소 서로의 나이와 약간의 가정형편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만으로 조우제가 32세이고 장경옥이 29세였다. 조우제는 마산 출신이고 장경옥은 서울 출신이었다. 그날 그녀는 조우제가 형의 배신으로 한국에서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호주로 떠나온 불쌍하고도 외로운 청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사정과 비슷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가까워진 두사람이다;

두사람은 이듬해 20054월말부터 동거하다가 그해 말에 혼인절차를 끝내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62월에 딸 한나를 얻었다. 그것으로 외로운 두사람은 호주 시드니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같은 지나온 과거를 조우제2011년 후반에 시드니 도심에서 비교적 가까운 에핑 지역에 이사를 한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 조우제는 행운아였다. 왜냐하면 2006년말에 자신의 라우스힐 소유지를 무려 천만불이 넘는 값으로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돈의 일부를 투자하여 20072월에 리드콤에 사 놓은 2필지의 큰 땅과 주택이 다음 다음해인 2009년초에 시세가 크게 올라 조우제가 다시 5백만불의 이익을 얻은 것이다.  

그 이익금을 가지고 2009년에 조우제가 에핑(Epping)에 건물과 주택을 샀는데 그 가운데 상태가 좋은 주택에 조우제 부부가 딸 한나와 함께 201110월경에 이사를 한 것이다. 그 결과 장경옥이 에핑에서 비교적 가까운 데니스톤(Denistone)에 있는 라이드(Ryde)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딸 한나는 초등학교(Primary School)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시드니에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자 조우제가 깊이 생각을 한다. 한국나이로 25살에 겁 없이 혼자서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나온 그가 우연히 청소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고 호주로 재이민을 와서 또 클리닝 잡을 하면서 돈을 벌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시절은 20041월에 캘리빌에서 만난 그 짙은 안개 농무와 같이 사실은 돈을 모으는 재미만 있을 뿐 앞날이 깜깜한 시기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아내 장경옥을 만나 조우제는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나를 얻게 되자 조우제는 젊은 시절 자신에게 밀려왔던 그 짙은 안개를 거두어 가고 있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인생에 있어서 어려움을 이기는 힘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에핑에 살면서 조우제가 2011년말부터 계속 그의 가족이 시드니에 살면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때로 조우제가 한인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영을 만나고 있다.

조우제보다 2살이 적은 한국영은 시드니에 있는 한인교회와 현지인교회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한국영의 의도는 조우제가 이제 돈을 벌만큼 벌었으니 더 의미가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그와 같은 한국영의 의도를 알면서도 조우제가 모르는 척하면서 자세하게 물어본다.

그리고 조우제가 설명한 내용을 나름대로 요약하여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국영이 자네가 설명한 내용을 요약하면 시드니에 있는 한인교회 가운데 그래도 세력이 큰 것이 3개이구만. 첫째가 총신 계열의 새순교회이고, 둘째가 여의도순복음 계열의 시드니순복음교회이고, 셋째가 고려신학의 시드니중앙장로교회이구만. 그러면 시드니에서 영향력이 큰 현지인교회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한국영이 신이 나서 알기 쉽게 설명을 한다;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역시 카슬힐에 있는 힐송처치(Hill Song Church)이지요. 정말 많은 오지(Aussie)사람들이 참석하고 있어요;

 그리고 전국적으로 조직이 되어 있는 유나이팅 처치’(Uniting Church)가 있고요.  그것은 일찍이 감리교, 침례교, 그리고 장로교의 일부가 합하여 만들어진 교단이지요. 그리고 소수교단 가운데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형제교회’(Brethren Church)가 있어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담을 말한다; “내가 스코필드에 살고 있을 때에 주일날 이웃동네 리버스톤에 있는 유나이팅 처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이름이 유나이팅(uniting)이라 내 마음에 들었거든. 사실 한국에는 그러한 교파의 이름이 없지. 그리고 또 하나 있어… “;

한국영이 귀를 기울인다. 조우제의 설명이 들려온다; “한번은 내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을 때에 같이 청소하는 동료를 따라 한인교회가 아니라 키위교회에 나간 적이 있어. 그것이 시티에서 멀지 아니한 쓰리 킹스’(Three Kings)에 있는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였어. 그 운영이 굉장히 평신도 중심이고 민주적이던데… ”;

그 말을 듣자 한국영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요. 너무 민주적이기 때문에 장로들의 세력이 큰 한국에는 들어오지 못한 교단이지요. 그 교단의 구성원들이 17세기 전반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필그림 파더’(Pilgrim Father)들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하버드대학교도 그 교단에서 세운 것이고요. 하지만 뒤늦게 미국에 들어오는 종파들을 많이 탄압하였기에 그만 지금은 소수교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해요… “.

그 말을 듣자 조우제가 말한다; “한국영 전도사는 참으로 아는 것이 많아. 내가 앞으로 많이 배워야 하겠어. 고마우이. 앞으로 내가 모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볼 터이니 아는 대로 좀 가르쳐 주시게나. 부탁하네… “.

한국영은 형님, 물론입니다. 언제라도 좋아요!”라고 경쾌하게 말한다. 조우제는 그렇게 밝은 인상의 한국영 전도사가 마음에 든다. 그렇게 그들의 2011년이 시드니에서 저물고 있다.

벌써 한국나이로 조우제40살이고 한국영 전도사가 38살이다. 그들은 앞으로 시드니에서 어떻게 어울려서 계속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