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의 골자 제16강(롬16:1-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23. 22:37

로마서 강의 골자 제16(16: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82()

 

1.    겐그레아 교회를 개척한 바 있는 여집사 뵈뵈는 어떠한 인물인가?(16:1, 18:11, 18) 그리고 사도 바울은 어째서 여집사 뵈뵈라는 인편으로 그의 서신을 로마교회에 보내고 있는가?(16:2)

(1)  겐그레아 교회를 개척한 바 있는 여집사 뵈뵈는 어떠한 인물인가?(16:1, 18:11, 18)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16:1); 로마서 제16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 35명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일일이 서로 주안에서 문안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음. 그 가운데 뵈뵈의 이름을 가장 먼저 거론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쓴 교리서신 로마서를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바로 뵈뵈이기 때문임. 그녀의 신분과 정체가 무엇인지 바울이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음;

2)    첫째,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8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곳 출신인 여성도 뵈뵈는 주후 50년경에 고린도에서 운영이 된 사도 바울의 성경학교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됨(18:11). 그리고 믿음의 의에 대하여 강한 확신을 얻게 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사도 바울로부터 최초의 여집사(deaconess)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임(16:1, NIV).

3)    둘째, 뵈뵈는 부유했으며 여자 사업가로 알려지고 있으며 사도 바울과 더불어 선교의 지평을 넓히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임. 특히,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이태리 반도로 건너가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서유럽 선교를 시작하려고 하는 생각을 사도 바울과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음.  그래서 그런지 사도 바울은 제3차 선교여행을 소아시아에서부터 그리스를 거쳐서 로마로 가는 여정을 계획하고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자신의 결심의 확고함을 보여주고자 겐그레아를 방문하여 뵈뵈가 보는 앞에서 이발을 한 것으로 보임(18:18).

4)    셋째, 2차 선교를 끝내고 모교회인 시리아 안디옥교회로 되돌아간 사도 바울을 뵈뵈가 기다리고 있음. 그런데 제3차 선교를 시작한 바울이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3년간 성경공부반을 운영하고 있는 동안에 예루살렘으로부터 급보를 받게 됨. 그 내용은 유대주의자들을 비롯한 예루살렘교회의 젊은 리더들이 사도 바울을 고발했다는 것임. 그러므로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귀국하여 예루살렘총회에서 해명을 하라는 것임. 사도 바울은 이번 기회에 로마교회로 가서 서유럽선교를 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있음을 깨닫게 됨(15:22). 따라서 급히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반도를 방문하고 아테네에서 3개월간 몇 해 전에 성경공부를 한 성도들을 다시 모아서 제자훈련을 한 것임(20:1-3).

5)    넷째, 그곳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작성하여 뵈뵈 편으로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고 있음.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면서도 제4차 선교여행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는 치밀한 사도 바울임.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지니고 가는 여집사 뵈뵈의 신분에 대해서 서신의 말미에 본문에서와 같이 소개하면서 그 신원에 대해서는 자신이 보증하고 있는데 그 표현이 내가 추천하노니라는 것임(16:1).

(2)  사도 바울은 어째서 여집사 뵈뵈라는 인편으로 그의 서신을 로마교회에 보내고 있는가?(16:2)

1)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16:2); 세개의 구절로 갈라서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함;

2)    첫째, 사도 바울은 너희는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16:2a)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 ①주안에서 성도들은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므로 사랑으로 맞이하라는 것임. ②그녀는 일찍이 겐그레아교회를 개척한 공로가 있는 사람이므로 그 헌신에 합당한 대접을 하라는 것임. ③그녀는 사도 바울의 서신을 전해주는 사자라는 신분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접을 잘 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임.

3)    둘째,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16:2b)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뵈뵈가 바울의 서신을 가지고 로마교회로 간 걸음에 바울이 원하고 있는 서유럽 선교를 준비하고자 하고 있기에 그 일을 도와 달라고 하는 바울의 부탁임.

4)    셋째,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16:2c)는 말은 로마시대에 있어서 보호자라고 하는 용어의 뜻과 관련이 되고 있는데 당시 보호자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 ①첫째가 정치적인 보호자임. 그 도시의 유력자가 나그네의 보호자가 되어 주어야 정치적인 신분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임. ②둘째가 사회적인 보호자인데 로마제국의 도시를 방문하는 이방인들은 보호자의 보증이 있어야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임. ③셋째가 경제적인 보호자인데 일단 보호자로 나서게 되면 그 나그네에게 필요한 숙식과 용돈까지 제공을 하는 것임.

5)    넷째, ‘보호자를 헬라어로는 프로스타티스’(prostatis)라고 부르는데 영어로는 benefactor가 적합한 용어로 볼 수가 있음. 그만큼 법적이나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모든 보증을 다하는 자가 로마의 보호자인 것임. 집을 떠나서 로마제국의 여러 도시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사도나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유력한 보호자가 현지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임. 그러한 맥락에서 뵈뵈는 사도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선교의 일로 겐그레아를 방문하는 성도들을 그렇게 도왔으며 또한 교회내에서 가난한 성도들을 평소에 많이 도와준 부유한 자라고 하겠음.

 

2.    사도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난 인연은 어떠한가?(16:3, 18:2-3, 11, 18, 26) 지금 그들 부부는 어디에 머물고 있으며 장차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16:4-5a)

(1)  사도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난 인연은 어떠한가?(16:3, 18:2-3, 11, 18, 26)

1)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16:3);

2)    첫째, 사도 바울이 제2차 선교 기간 중 그리스 반도의 남단에 있는 큰 항구도시 고린도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되는데 아굴라는 본래 소아시아 북쪽 지방 본도에서 태어난 유대인 교포임. 그는 결혼을 하여 아내와 함께 로마시에 살고 있다가 고린도로 이주한 사람인데 그들이 로마시를 떠나온 이유는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주후 40년대 후반에 유대인들을 로마시에서 쫓아 내었기 때문임(18:2).

3)    둘째, 처음 고린도를 방문한 나그네 사도 바울을 그들이 따뜻하게 대접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임; ①하나는, 아굴라와 같이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교포이며 그 직업이 천막을 만드는 아굴라와 같았기 때문임(18:3, 22:3). ②또 하나는, 이방인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관심사항이 같았기 때문임. 그래서 그들 부부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히브리정경의 메시아 예언을 전하는 바울의 설교를 들었으며 바울이 고린도에서 1 6개월간 성경공부반을 운영할 때에 열심히 참석하게 된 것임(18:4, 11).

4)    셋째,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는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에 동참하게 됨(18:18). 고린도를 떠나는 사도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의 항구도시 에베소로 들어가고 있는 것임(18:19-26). 그들 부부는 에베소에서 알렉산드리아 출신 성경학자 아볼로를 만나 그들이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가르쳐 주기도 함(18:24-26).   

(2)  지금 그들 부부는 어디에 머물고 있으며 장차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16:4-5a)

1)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저희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16:4-5a); 언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선교과정에서 사도 바울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을까요? 그 대목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음.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위기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임;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고후11:23). 여러 번 죽은 뻔한 그 경우의 하나에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가 사도 바울과 생사를 함께한 것으로 보임. 그때 그들은 사도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먼저 희생의 자리에 나선 것으로 판단이 되는 것임.

2)    첫째, 그 하나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에베소에서 발생한 폭동사건을 생각할 수 있음. 주후 52년에서 55년까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면서 3년간 성경공부반을 운영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성하자 그 지역에 초대교회 부흥의 역사가 발생함(19:8-20). 그러자 제우스와 아데미 신을 섬기는 헬라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고자 난동을 부리게 되고 그 와중에서 목숨이 위험해진 사도 바울을 구하고자 제자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서 나서게 됨(19:28-31). 그들 제자들 가운데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가 포함이 된 것으로 보임(18:18, 26, 19:30, 16:4a).

3)    둘째, 그 소동이 일단 잠잠해지자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새로운 담임목사로 디모데를 세우고 유럽의 마케도니아로 건너가게 됨(20:1, 딤전1:3).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는 주후 47년경에 로마시에서 유대인들을 축출한다는 칙령을 내린 바 있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18:2) 주후 54년에 서거하였으므로 이제는 안전한 로마시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교회도 세우고 전도활동을 계속하고자 함(16:5). 사도 바울 자신도 여건만 조성이 된다면 로마시로 들어가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하고자 한 것임(19:21, 15:22-24).

4)    셋째, 사도 바울이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16:4b)고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그 당시의 기억을 잊어버릴 수가 없기 때문임. 그들 부부가 어째서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먼저 희생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했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발견하고 있음; “그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대속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인간적으로는 그 희생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아굴라 부부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임. 그래서 그 소중한 이야기를 그가 개척한 이방인교회에도 전해주고 있으며 그 결과 이방인 모든 교회도 그들 부부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하겠음.

5)    넷째, 사도 바울이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16:5a)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주후 54년경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가 로마시로 되돌아 가서 가정교회를 개척하고 전도활동에 열심이라는 소식을 이미 듣고 있기 때문임. 따라서 그 옛날 그들 부부가 다녔던 로마시의 자생교회의 성도들에게 아굴라 부부의 개척교회와 서로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희망을 담아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임.

 

3.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를 통하여 처음 맺은 열매인 에베네도는 어떠한 인물이며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는 누구인가?(16:5b-6) 그리고 사도 바울이 자랑스럽게 자신의 친척이며 동역자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로마의 교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16:7)

(1)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를 통하여 처음 맺은 열매인 에베네도는 어떠한 인물이며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는 누구인가?(16:5b-6)

1)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16:5b-6); 아굴라 부부가 개척한 가정교회 이야기와 성도 에배네도에 대한 이야기를 같은 구절로 분류하고 있음. 본래는 다른 두가지 종류의 이야기이므로 구절을 달리 하는 것이 옳은데 학자들이 그렇게 분리를 하지 아니하고 같은 절에 묶고 있는 것임.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그 두가지 사이에 깊은 관련성이 있기 때문으로 보임. 가장 강력하게 추론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에배네도가 그 가정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것임.

2)    첫째, 그렇다면 아굴라 부부와 에배네도는 언제부터 교제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 부부가 소아시아 에베소에 머물고 있을 당시로 보임. 아굴라와 에배네도는 사도 바울을 잘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들은 친해졌을 것이며 함께 로마시로 들어가서 교회를 개척한 것으로 추정이 됨. 참고로 여기서 에배네도는 남자 성도로 보임. 만약 여자 성도라고 한다면 사도 바울이 나의 사랑하는 자매라고 그를 소개했을 것임.

3)    둘째, 사도 바울이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16:5c)고 에배네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음. 그 연유는 사도 바울이 제1차 선교 때 소아시아를 방문했는데 그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청년 에배네도로 보이는 것임. 참고로, 비시디아 인디옥에서의 그 일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움;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13:43-44).

4)    셋째, 그 때가 주후 46-47년경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작성하고 있는 때는 주후 56-57년경임. 그동안 10년 동안에 에배네도는 어떠한 성도의 삶을 살아간 것일까요? 그가 로마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아굴라의 가정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로마제국의 여러 도시에서 전도와 선교의 일꾼으로 나름대로 일한 것으로 보임.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배네도의 소식을 듣고 있으며 기쁜 마음으로 로마시의 성도들에게 에배네도에 대하여 증거를 해주고 있는 것임.

5)    넷째, 성경의 기록에서 유명한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여러 명임; ①예수의 어머니 마리아(1:18, 1:14), ②글로바의 아내 마리아(19:25), ③막달라 마리아(27:56, 19:25), ④베다니 마리아(11:1-2), ⑤마가의 어머니 마리아(12:12) 등임. 그들 가운데 누구인지를 사도 바울이 특정하고 있지를 않음. 과연 그 여인이 누구일까요?

6)    다섯째, ‘마리아라고 하는 이름이 당시에 흔한 것이기에 일반적으로 그 이름자 앞에 출신 고향이나 가족의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그와 같은 관행을 사도 바울이 모르는 척 그냥 생략하고 있음. 그것은 고의적인 것임. 바울은 어느 특정한 마리아로 한정하고 싶지가 않다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임.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고 있는 그 모든 마리아들이 이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돌보기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항상 그들에게 문안하며 감사하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임.  

(2)  사도 바울이 자랑스럽게 자신의 친척이며 동역자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로마의 교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16:7)

1)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16:7); ); ‘안드로니고유니아의 이름은 여기에서 한번만 기록이 되고 있으므로 정확하게 그들의 출신성분과 활동상황을 알 수가 없음. 다만 사도 바울이 증언하기를 그들은 ①첫째, 바울 자신의 친척이라는 것임. ②둘째, 사도 바울과 함께 투옥이 된 적이 있음. ③셋째, 사도들이 그들을 존경하며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 ④넷째, 사도 바울보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인물들임. ⑤다섯째, 아무래도 그들은 부부관계로 보임. 이제 다음과 같이 하나 하나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함;

2)    첫째, 많은 헌신적인 익명의 부부들을 대표하고 있는 실명의 부부로 보임;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도와준 대표적인 부부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이며 그 밖에도 많은 가정과 부부들이 존재하고 있음. 사도 바울이 그들의 가정을 일일이 여기에 나열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너무 그 수가 많기 때문임. 따라서 그 많은 부부들을 대표하여 여기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를 예로 들어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3)    둘째, 바울에게 있어서 친척인 동역자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방인 사도로 헌신하고 있는 바울은 항상 친척과 골육인 선민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를 하고 있는데 그 간절한 심정이 로마서 제9장과 제10장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음(9:1-3, 10:1-4). 그런데 사도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면서 하나 깨닫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이방인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친척과 골육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임. 사도 바울은 그 증거를 로마서 제16장에서 다음과 같이 자랑스럽게 제시하고 있음; “그 실명이 거론이 되고 있는 그의 동역자 35명 가운데 무려 6명이 그의 친척들인 것임”(16:7, 11, 21). 요컨대, 거의 17%나 차지하고 있다는 것임. 그 가운데 바울 자신보다 먼저 기독교인이 된 친척 안드로니고 부부의 이름을 가장 먼저 거론하고 있다고 하겠음.

4)    셋째, 언제 그들이 바울과 함께 감옥생활을 했을까요? 사도 바울과 감옥생활을 함께한 동역자 가운데 안드로니고와 이름이 비슷한 사람으로 아리스다고가 있음(4:10). 하지만 아리스다고는 두가지 점에서 안드로니고가 아닌 것으로 보임; ①그는 유럽인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출신임(27:2). 사도 바울의 집이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다소 성이기 때문에 너무 동떨어진 감이 있음. 아리스다고의 부인이야기가 전혀 없으므로 안드로니고아리스다고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겠음. 그렇다면 언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가 사도 바울과 함께 투옥이 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음. 단지 바울 자신이 여러 번 구속이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으므로(고후11:23) 사도행전이나 기타 서신서에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지 아니한 기타의 경우라고 하겠음.

5)    넷째,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어째서 그들 부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공통적으로 전도와 선교에 열심임. 온세상에 하나님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 초대교회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기 때문임.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방지역에서 유력한 교포 유대인들의 도움이 절실함. 숙박시설이 없는 로마제국이므로 그들이 숙식할 수 있는 가정이 현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 그러한 필요성을 채워주는 자들이 초대교회에 있어서 식주인’(食主人)이며 후견인’(헬라어로 프로스타티스이며 영어로는 benefactor)들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후견인의 역할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가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음.

 

4.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에벨레, 그리고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16:8-10) 그리고 바울의 친척 헤로디온은 어떠한 사람인가?(16:11a)

(1)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에벨레, 그리고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16:8-10)

1)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권속에게 문안하라”(16:8-10);

2)     첫째,암블리아가 누구인지 성경에서는 달리 비교할 수 있는 대목이 없음. 따라서 성경학자들이 주로 세가지 측면에서 접근을 하고 있음; 암블리아라고 하는 이름이 흔한 노예의 이름임. ②왕족으로 편입이 된 암블리아가 있음. ③사도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은 성도임. 세가지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두번째임; “암블리아라고 하는 이름이 흔하기 때문에 그를 노예 출신으로 보고 있는데 로마의 노예 6천만명 가운데에는 학문과 기술이 뛰어나 해방 노예의 신분으로서 제국에서 출세를 한 인물들이 많이 있음. 특별히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통치 AD41-54)의 시대가 그러한데 그는 로마의 귀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원로원의 세력을 견제하고 황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학식과 경륜이 있는 해방 노예를 대거 등용하여 행정부를 이끌어가도록 한 것임. 묘하게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통치기간이 대체로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의 기간과 겹치고 있음. 특이하게도 황족의 가문에 편입이 되는 기적이 발생하기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로마의 왕족인 도미틸라 가문에서 자신들의 카타콤 일부를 기독교인들에게 사용하도록 주고 있으며 그곳에서 암블리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정교한 비석이 발견이 되고 있음. 일반적으로 황족과 귀족 가문의 인물이 그러한 비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름에는 가문과 성이 함께 새겨져 있기 마련임. 그런데 이상하게도 암블리아라고 하는 이름만 새겨져 있음.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그것이 노예  출신인 암블리아가 황족인 도미틸라 가문에 편입이 되고 그 무덤과 비석이 그곳에 남게 된 것이라고 보고 있음. 다만 다른 기록이 없어서 그가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 대단한 집안의 일원이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것임”.

3)     둘째,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16:8)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음; ①암블리아의 나이가 사도 바울보다는 한참 연하라는 것임. ②둘째, 그는 바울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회심한 인물이라는 것임. 그가 로마 제국의 수도로 들어가서 일약 출세를 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그에게 문안하고 사귀게 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사도 바울이 보고 있는 것임.

4)     셋째, 성경에서는 본문에서만 우르바노스다구의 이름이 나오고 있으므로 그들에 대하여 자세하게 비교해서 말할 수는 없음. 하지만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유추할 수는 있음; 우르바노라고 하는 이름은 로마의 노예의 이름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황제의 종의 이름으로 우르바노가 주로 사용이 되고 있음. 9절은 앞서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16:8b)고 말한 직후에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암블리아우르바노의 경우가 서로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가 있음. 그들은 비록 시작은 로마의 노예였지만 나중의 출세는 대단함. 암블리아는 황족의 가문에 속하게 되고 우르바노는 황제의 종이 되고 있는 것임. 그런데 나이는 우르바노가 암블리아보다 연상이라고 하겠음.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그들을 부를 때에 암블리아에게 있어서는 주 안에서 사랑하는 암블리아”(16:8a)라고 표현함으로써 그가 바울 자신보다 한참 연하임을 짐작하게 해줌. 그렇지만 우르바노의 경우에 있어서는 동년배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우르바노”(16:9a).

5)     넷째, 사도 바울이 우르바노에 대해서는 자신만이 그를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음. 바울 자신의 선교팀들이 모두 그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음. 그래서 우리의 동역자 우르바노라고 하는 표현을 하고 있음. 그렇다면 우르바노는 그리스 반도에서부터 사도 바울과 인연을 지니고 있으며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배운 자임. 그렇게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같은 구절에 함께 기록이 되고 있는 젊은이 스다구때문임. ‘우르바노라고 하는 이름은 라틴식으로 개명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어린 스다구는 헬라식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 그리고 우르바노와 스다구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것임. 참고로, 로마제국이 헬라제국을 정복하면서 특별히 희랍인들을 중용하고 있음. 왜냐하면, 희랍인들의 학문과 철학 그리고 과학과 예술이 높은 수준이기 때문임.

6)     그 가운데 학문이 뛰어나고 정치철학에 밝은 자들을 많이 황제의 종으로 사용하고 있음. 그래서 그 이름을 라틴식으로 개명해주고 있는데 그 중에 스다구의 부친이 들어 있다고 하겠음. 그렇게 우르바노는 황제가 하사한 이름이며 정련이 되고 우아한종이라고 하는 좋은 뜻을 지니고 있는 이름이므로 훗날 로마의 교황들 가운데 우르바노라고 하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자가 많은 것임. 또한 헬라식 이름인 스다구이삭 또는 곡식의 알맹이라는 좋은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스다구는 그의 이름에 어울리게 신앙심이 좋은 청년으로 보이는 것임.

7)     다섯째,아벨레라고 하는 이름이 본문에서만 언급이 되고 있으므로 아벨레의 내력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음. 다만 사도 바울이 아벨레를 소개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16:10a)고 상당히 특이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인정함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 능력이 출중함을 말하고 있음. 그렇게 행정능력이 뛰어난 아벨레임. 그렇다면 그는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에 의하여 발탁이 된 그리스 사람이며 행정부의 요직에 있는 기독교인이라고 하겠음.

8)     여섯째, 아리스도불로권속에게 문안하라”(16:10b)는 사도 바울의 언급에 대하여 말하자면 당시에 아리스도불로라고 불리고 있는 사람은 유대 땅에서나 로마시에 있어서 유명한 인물임; “왜냐하면, 그는 로마의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에 의하여 주후 41년에 유다의 왕으로 임명이 된 헤롯 아그립바1세의 친동생이기 때문임. 참고로, 로마제국의 황손들과 아그립바1세는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인데 그 이유는 아그립바1세와 그의 형제 자매들이 황제에 의하여 모두 예루살렘에서 로마시로 옮겨져서 황실의 도움으로 황손들과 함께 자라났기 때문임.  로마황제는 유대 왕 헤롯 대왕이 왕비 미리암과 아들 아리스도불로 등을 살해하자 아리스도불로의 자식들을 보호하여 로마시에서 살도록 조치한 것임. 그 덕택에 아그립바1세의 동생들인 아리스도불로와 헤로디아 등도 모두 로마의 황손들과 함께 로마시에서 성장을 하고 친구가 된 것임”.

9)     일곱째, 로마의 귀족이 되고 있는 아리스도불로와 그 집의 권속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이고 있으며 그 집안의 노예들까지 기독교인이 되고 있음. 그 점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앞으로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에는 아리스도불로를 찾아가서 상의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임. 그렇게 로마제국의 정치의 흐름과 권세가들의 동향에도 밝은 자가 사도 바울이라고 하겠음.

(2)  바울의 친척 헤로디온은 어떠한 사람인가?(16:11a)

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16:11a); ‘헤로디온에 대한 언급은 본문에서만 나타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이 헤로디온을 자신의 친척이라고 소개하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그에게 문안하고 영적인 교제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음. 본문에서 두가지를 생각해보아야 함; ①하나는 헬라어로 친척이라고 하는 신제네이스’(syngeneis)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임. ②또 하나는 바로 앞절에서 아리스도불로에게 문안하라”(16:10)고 언급하면서 헤로디온의 이야기를 곧바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관성을 살펴보는 것임;

2)    첫째, 전통적으로 사도 바울이 내 친척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두가지임; ①하나는 진짜 혈통적인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임. ②또 하나는 친척의 범위를 동족까지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혀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임. 그 근거는 친척이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 syngeneis가 친척, 친족, 동족의 뜻으로까지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임. 예를 들면, 그러한 의미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제9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는 것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9:3-4). 자신의 형제와 친척 나아가서 동포들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그렇게 적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친척이라는 용어에는 자신의 동족이 모두 포함이 되기도 하는 것임.

3)    둘째, 그렇지만 여기 로마서 제16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성도들을 선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별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렇게 유대주의자들처럼 양분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임. 다만 사도 바울이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친척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이 구원하여 자신의 동역자로 삼아 주셨는가 하는 그 점임.

4)    셋째, 바울이 이방인 사도로 열심히 사역에 전심전력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제와 친척을 구원하기를 소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시고서 그들을 많이 구원하여 성도로 그리고 자신의 동역자로 삼아 주셨다는 것임. 그러므로 로마교회의 성도들이나 여러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바울처럼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살아감으로써 그 복을 누리라는 것임.

5)    넷째, 로마시에서 살고 있는 헤롯의 왕족인 아리스도불로의 집에는 이두매 사람 뿐만 아니라 유대인 부하가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사도 바울의 친척인 헤로디온으로 보임. 헤로디온이 기독교인이 되자 사도 바울이 그의 친척인 헤로디온을 통하여 아리스도불로를 알게 되고 그에게 일찍이 헬라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보임. 그러므로 아리스도불로의 권속”(16:10)이라고 하는 말 가운데에는 당연히 바울의 친척인 헤로디온이 우선적으로 포함이 되고 있다고 하겠음(16:11a).

 

5.    나깃수의 가족 중 성도는 누구이며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는 누구인가?(16:11b-12) 그리고 루포의 어머니는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째서 바울이 개인적으로 영적인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는가?(16:13)

(1)  나깃수의 가족 중 성도는 누구이며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는 누구인가?(16:11b-12)

1)    나깃수의 가족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16:11b-12);

2)    첫째, ‘나깃수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학자들이 두가지로 말하고 있음; ①하나는 그가 누구인지 달리 말하고 있는 성경의 구절이 없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는 것임. ②또 하나는 당시에 권력자 가운데 악명이 높은 나깃수하고 하는 자가 있는데 그를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임. 후자의 경우, 나깃수는 특정 종교를 가족이나 종들에게 강요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따라서 그의 가족 중에 주 안에서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임(16:11b). 그 말은 나깃수가 그의 종들까지 교회에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임. 만약에 종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여 일을 적게 하게 되면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할 것이므로 성도가 아닌 주인이 종들에게 그러한 자유까지 주고 있는 것은 아닌 것임. 그러므로 주인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면 종들은 주인 몰래 교회에 다닐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참으로 고달프고 힘든 삶인 것임.

3)    둘째, 나깃수의 수하와 비교할 때 아리스도불로의 신하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의 친척인 헤로디온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 주인이 성도이기 때문에 헤로디온이 더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며 전도생활까지 할 수가 있기 때문임. 그러므로 노예나 종들이 교회의 성도가 된 경우에는 자신들의 주인이 복음을 받아 들이고 기독교인이 되도록 얼마나 열심히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임.

4)    셋째, 사도 바울이 여자 성도 가운데 3사람을 묶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생활에서 모범이 되고 있는 그들 여성도들의 헌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의미가 강한 것임. 그런데 그 표현이 두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①하나는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16:12a). 또 하나는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16:12b). 사실 주 안에서 수고한 자매 누구라고 하는 것으로 충분한 표현임(16:12a). 그것은 아름다운 헌신의 여성도라는 의미이기 때문임. 그리고 사도 바울이 그들의 모범을 본받으라고 하는 의미에서 그들에게 문안하라고 적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함.

5)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버시의 경우에는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16:12b)라고 적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주님 안에서 헌신하고 봉사할 수가 있기 때문임. 따라서 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항상 젊은이들에게 더 많이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쳐주고 복음의 큰 일꾼으로 세우고 싶어함. 장차 그들이 대를 이어서 이방인선교를 계승해 나갈 것이기 때문임. 그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바울이 젊은 자매 버시를 바라보고 있는 것임.  사도 바울은 장차 버시가 잘 성장하여 그 옛날 막달라 마리아처럼 초대교회의 역사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고 하겠음.

(2)  루포의 어머니는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째서 바울이 개인적으로 영적인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는가?(16:13)

1)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16:13); 골고다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께 실질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시몬이라고 하는 구레네 사람임. 시몬에 대하여 공관복음에서 공히 기록하고 있는데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그의 아들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15:21). 시몬에 대해서는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또한 기록하고 있음;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13:1). 더구나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시몬의 아내이며 루포의 어머니에 대하여 자신의 영적인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음(16:13).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몇가지를 차제에 살펴보고자 함;

2)    첫째,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변화하고 있음. 예루살렘의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북 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온 시몬임. 그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일찍 유대교인이 된 경건한 사람으로 보임. 그런데 그가 그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주는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에 골고다 언덕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 것임; “선지자 예수가 자신을 저주하는 백성들과 못박는 자들을 용서해주고 있음(23:34). 다윗왕의 후계자이며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할 자라고 믿어지던 메시아가 허무하게 십자가 처형이 되고 있음. 그것은 유대교인인 시몬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기이한 일인 것임”.

3)    둘째, 3일 후에 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음. 예수가 무덤속에서 부활했다는 이야기가 예루살렘에 나돌고 있는 것임(27:53-54). 그것이 사실일까요? 구레네 출신 시몬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가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찾아가고 나중에는 시리아로 옮겨가서 안디옥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됨(13:1).  

4)    셋째, 시몬의 가족들의 삶도 달라지고 있음; 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시몬은 장로로서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한 사람이 되고 있음(13:1). 그리고 그의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도 복음의 젊은 일꾼이 됨. 그래서 젊은 성도 마가가 그들과의 교류가 있었기에 시몬의 이름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임(15:21). 그리고 안디옥 출신인 의사 누가가 시몬을 알고 있으며 안디옥교회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쳤던 사도 바울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를 더 잘 알고 있음. 그로 미루어 보아 객지인 안디옥에서 교역자 생활을 하고 있던 바울이 시몬의 집에서 신세를 많이 진 것으로 보임.

5)    넷째, 루포의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사도 바울을 감동시키고 있음; 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이방인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사도 바울이 10년 세월을 소아시아와 유럽선교에 열심임. 그런데 그가 모교회인 안디옥교회에 돌아오게 되면 항상 시몬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음. 각별한 보살핌을 받고 있기에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16:13)고 기록하고 있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