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의 골자 제14강(롬14:1-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년 7월 19일(목)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롬14:1-3)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세우는 권능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성도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만 하는가?(롬14:4)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롬14:1-3)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롬14:1-3); 무엇보다도, 같은 우리에 양을 넣어 주시는 분은 목자이신 주님이심. 그러므로 한 우리에 들어 있는 양들은 서로 티격태격할 수가 없는 것임. 그 이유는 자신들이 선택하여 그 우리에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임.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이 나타나고 있음;
2) 첫째,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자신들의 공동체에 다른 사람을 받아 들이고자 하지만 주님께서는 공의의 정신에 따라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우리에 넣어 주시는 것임. 그러므로 못마땅한 성도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성도를 같은 우리에 넣어 주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좁고 이기적인 생각을 뛰어 넘어 서로 관용하고 상대방을 이해해 나가야 한다는 것임.
3) 둘째, 사도 바울은 특히 믿음의 크기를 서로 비교하여 믿음이 큰 자가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도와주라고 말하고 있음(롬14:1-3). 그것이 전도와 선교 만큼이나 중요한 주님의 제자의 양육의 방법인 것임(마28:18-20).
4) 셋째,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은 거룩하신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 그렇게 연약한 자를 이미 성도로 받으셨다는 사실에 유의하라는 것임(롬14:3). 참고로, 그것이 훗날 성 어거스틴의 교회론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하겠음.
5) 넷째, 믿음의 크기를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와 부드러운 음식만을 먹을 수 있는 자의 차이로 설명하는 한편(롬14:2) 특정한 음식에 대한 먹고 못 먹고 라는 차이로도 설명하고 있음(롬14:3). 그러한 두가지의 차이에 대하여 서로 불필요한 논쟁을 삼가하라고 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의도는 음식에 대한 율법의 논쟁을 뛰어 넘어 이제는 복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동역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임(롬14:3). 그것이 믿음이 큰 자와 연약한 자 그리고 유대주의자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 모두를 하나의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살아가도록 만드신 주님의 뜻이라는 것임(롬14:1-3).
(2)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세우는 권능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성도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만 하는가?(롬14:4)
1)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14:4); 다음과 같은 세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음;
2) 첫째, 같은 공동체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나의 하인이 아니고 주님의 하인이라는 것임.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자신의 종처럼 부리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행태인 것임.
3) 둘째, 주님께서는 자신의 일꾼인 성도들을 모두 신앙이 성숙한 자로 세워서 복음을 전파하는 큰 일꾼으로 사용하고자 하신다는 것임. 그러므로 주님께서 행하시는 그러한 은혜를 믿고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라는 것임.
4) 셋째, 믿음이 큰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하인인 성도를 바로 세우시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이 큰 자는 단지 믿음의 본을 보이고 올바른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주는 그것이면 족하다는 것임. 따라서 억지로 자신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바로 세워줄 수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를 말라고 하는 것임.
2. 안식일과 주일 논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롬14:5-6a) 음식에 대한 율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어떻게 생각하라고 말하는가?(롬14:6b-8)
(1) 안식일과 주일 논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롬14:5-6a)
1)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롬14:5-6a); 참으로 묘하게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음;
2) 첫째, 특정한 날을 중하게 여기는 것 또는 모든 날을 다 같다고 생각하는 것 등은 전부 제 마음대로 하면 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임. 세상적인 날들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판단이 들어 있는 것임.
3) 둘째, 주님을 위하여 어떤 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음. 그렇지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임.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 그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임. 상대방도 주님을 위하여 다른 날을 중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 그것도 존중해 주라고 하는 것임.
4) 셋째, 사도 바울은 특정한 음식을 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문제도 특정한 날을 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문제와 동일하다는 것임. 제 나름대로 주님을 위하여 특정한 음식을 중히 여기고 살아가면 되는 것임. 구태여 그것을 주님을 위하여 다른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식생활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는 것임. 그것이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이라고 보고 있음.
(2) 음식에 관한 율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어떻게 생각하라고 말하는가?(롬14:6b-8)
1) “먹지 아니하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6b-8); 참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를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대목임;
2) 첫째, 주님을 위하여 금식을 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라는 것임. 그것은 세상의 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는 사도 바울의 생각임.
3) 둘째,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도 죽음도 모두 주님의 뜻에 맡기는 것임. 육신적인 삶을 아직 계속하게 해주시면 주님의 뜻을 알아서 복음을 전파하면 되는 것이고 향년을 맞이하게 하시면 이제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또 살아가면 되는 것임(빌1:20-24).
4) 셋째,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이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하는 믿음임. 주님의 종으로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주인의 명령과 뜻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 따라서 주인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사역과 제사장의 삶을 각자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다른 세상적인 것으로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자랑할 필요는 없는 것임.
3.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안식일 논쟁과 음식의 율법은 어떻게 결론이 나고 있는가?(롬14:9)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논쟁하고 비판한 일이 언제 보응을 받게 되는가?(롬14:10-12)
(1)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안식일 논쟁과 음식의 율법은 어떻게 결론이 나고 있는가?(롬14:9)
1)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14:9); 사도 바울의 신앙생활이 과거 랍비 사울이었던 때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는 대목임;
2) 첫째, 랍비 사울이었던 시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히브리경전을 연구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율법선생인 랍비로서의 자신의 직분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유대교인 사울임.
3) 둘째, 랍비 사울은 히브리경전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해석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집사 스데반이나 기타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못마땅하여 그들을 배척하고 박해하는 것이 거룩한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인물임(행8:1, 9:1-2).
4) 셋째, 그러나 이제 바울의 생각은 다른 것임.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제3일의 부활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믿고 있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의 복음사역을 계승하여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예수님이 얻으신 그 놀라운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영광을 성도들도 얻게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임(눅22:28-30, 요14:1-3, 롬8:11, 고전15:20-23, 빌3:10-16).
5) 넷째, 3년 반의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고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권능으로 그의 사상과 행동이 옳다고 판단하시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게 하셨으니 그것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임.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 이제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주님께서 얻으신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고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는 것임.
6) 다섯째, 사도 바울은 이제 자신의 믿음생활의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음. 따라서 다른 성도들에게도 자신처럼 그렇게 그 푯대를 향하여 전력질주를 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음. 괜히 세상적인 날과 음식에 더 관심을 두고서 그것을 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생각을 생명과 부활의 주님보다 더 앞세우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임.
(2)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논쟁하고 비판한 일이 언제 보응을 받게 되는가?(롬14:10-12)
1)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사45:23), 주께서 이르시되(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사45:23), 내가 살았노니(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사45:23))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0-12);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되고 있음;
2) 첫째, 모든 성도들도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임(요5:28-29). 그 앞에서 세상적인 것을 가지고 형제들을 비판하고 업신여긴 모든 죄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임. 그 세상적인 것들 가운데 특정한 날을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중시하여 남에게 강요하고 또한 특정한 음식을 하나님처럼 중시하여 남에게 강요한 잘못이 드러나고 있는 것임.
3) 둘째, 심판대 앞에서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공의의 정신을 실천했는가? 하는 것임. 창조주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돌보시고 그 생명을 모두 살리기를 원하시고 계심. 그것이 창조주의 피조물 사랑이며 넓고도 높은 공의의 정신인 것임. 그것을 현세적인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실천하지를 못하고 있음. 따라서 창조주의 공의의 사랑을 어느 정도 현세에서 실천을 했는가? 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음.
4) 셋째,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한 자는 주님처럼 살려서 영생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임. 인류의 역사 가운데 유일하게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인간사랑으로 실천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 그는 복음사역을 통하여 두가지를 말씀하심; ①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유대교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선민만의 구원사상이나 이방인 차별이 아니라 모두를 구원하는 만민구원사상이라는 것임. ②또 하나는, 메시아를 통하여 선민만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과 이방인을 모두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고자 하시는 것임.
5) 넷째, 예수님께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길을 열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바치신 것임.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을 실천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시켜 주신 것임. 그에 따라 이제는 사람들이 어떠한 신앙생활을 영위하여야 부활과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지를 알게 된 것임. 따라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 옳으며 괜히 세상적인 날과 음식을 가지고 이생의 자랑으로 삼으며 다른 성도들에게 강요하지를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
4. 형제 앞에 두지 말아야 하는 거치는 것은 무엇인가?(롬14:13) 그리고 거치는 것을 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롬14:14-16)
(1) 형제 앞에 두지 말아야 하는 거치는 것은 무엇인가?(롬14:13)
1)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롬14:13);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할 수가 있음;
2) 첫째, 성도들은 서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임. 주인이 종을 나무라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종들이 서로 나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임. 주님의 종이 마치 자신이 다른 성도들에게 대하여 스스로 주인이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바로 비판이라는 것임.
3) 둘째, 부딪칠 것을 다른 성도들 앞에 두지 말라는 것임. 특정한 날을 마치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중시하여 그것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임. 그것은 다른 성도들을 부딪치게 하여 넘어지게 하며 자신도 넘어지게 만드는 것임.
4) 셋째, 거칠 것을 다른 성도들 앞에 두지 말라는 것임. 특정한 음식을 주님만큼 중시하여 그것을 먹거나 또는 먹지 말도록 다른 성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거칠 것을 다른 성도들 앞에 두는 행위임. 그것 역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고 자신의 신앙생활도 성숙하지를 못하고 초보에 그치게 하는 것임.
(2) 거치는 것을 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롬14:14-16)
1)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롬14:14-16);
2) 첫째,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은 모두 스스로 속된 것들이 아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속되다고 여기는 것은 그 마음 속에서부터 속되다고 하는 판단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임.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의 속마음으로 판단하지를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따라 판단을 하라는 것임.
3) 둘째,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여 구원으로 인도하라는 것임. 그것은 창조주의 공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 그런데 특정한 음식이나 날을 강요하고 그것을 율법으로 지키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의의 사랑이 아니라 편협한 이기적인 자기 주장에 불과한 것임.
4)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는데 성도들이 그러한 뜻을 모르고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특정한 날과 음식을 강제하면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복종시키고자 하고 있음. 그러므로 그것은 주님의 선한 뜻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도리어 욕을 보이고 있는 잘못된 행위라는 지적임.
5.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롬14:17-18)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무엇을 조심해야만 하는가?(롬14:19-21)
(1)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롬14:17-18)
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7-18);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됨;
2) 첫째, 사도 바울은 육신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구별하고 있음. 세상나라에서는 먹고 마시는 육신적인 삶이 목숨유지를 위하여 절대적임. 그러나 영의 몸을 입고서 살아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아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영적인 양식을 먹고서 살아가게 됨,
3) 둘째, 영적인 양식을 사도 바울은 알기 쉽게 성령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하고 있음. 남은 인생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이 세상에서도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처럼 실천하게 되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평강과 희열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임.
4) 셋째, 그렇게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세상사람들에게도 이 세상을 구원하는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칭찬을 듣게 된다는 것임. 그것은 세속적인 것을 강제하거나 강요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구원의 신앙을 세상적인 논쟁거리로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
(2)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무엇을 조심해야만 하는가?(롬14:19-21)
1)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14:19-21); 사도 바울의 구체적인 설명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음;
2) 첫째,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을 알기 쉽게 사도 바울이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음. 여기서 ‘화평’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서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바로 서는 것을 말하고 있음. 따라서 이제 자신의 주인이 주님이시므로 그 삶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것임. 그에 따라 유대주의자들의 안식일 논쟁과 음식문제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것임.
3) 둘째, 여기서 ‘덕’(德)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편협한 주장을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모두를 살리는 복음적인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임. 그것은 율법의 완성이 복음이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음(롬3:31, 13:8-10). 즉,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덕을 베푸는 선한 복음적인 치유가 없으면 율법은 완전한 것이 못된다고 하는 지적인 것임(고전14:4-6).
4) 셋째, 특정한 음식을 강요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것임; ①하나는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일부는 깨끗하고 일부는 부정하다고 하는 인간적인 판단이 앞서게 되는 것임. ②또 하나는, 거룩하신 창조주의 뜻을 의심하면서 거리낌으로 먹게 되면 그것은 인간들의 편파적인 율법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사랑마저 해치게 되는 악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임.
5) 넷째, 혹시 형제가 어떤 음식에 대해서는 거리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 형제와 교제하고 그를 성숙한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는 그 형제에게 거리끼는 일을 삼가하는 것이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음(롬15:21). 그러한 경우 필요하다면 스스로 잠시 육식을 금할 수 있으며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할 수가 있는 것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제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적인 것이지 목적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겠음.
6. 사도 바울이 믿음 생활이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롬14:22) 하나님 앞에서 묻고 답을 얻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한 것이 죄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말은 어째서 신앙생활의 황금률이 되고 있는가?(롬14:23)
(1) 사도 바울이 믿음 생활이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롬14:22)
1) “네게 있는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남을 비판하고 강요함으로써)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14:22);
2) 첫째, 믿음생활이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임. 따라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거나 강요하게 되면 그것은 문제를 야기하게 됨.
3) 둘째, 자신의 믿음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남에게 믿음이 약하다고 그 점을 비판하게 되면 그것으로 도리어 비판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도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한 정죄를 받게 되는 것임(마7:1-5).
4) 셋째,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 특정한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이 더 낫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그것을 강요하게 되면 그것은 세상적인 것으로 형제를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대신하고 있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마땅한 잘못된 신앙인 것임.
(2) 하나님 앞에서 묻고 답을 얻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한 것이 죄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말은 어째서 신앙생활의 황금률이 되고 있는가?(롬14:23)
1) “(아담부부처럼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여)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하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
2) 첫째, 창세기 제3장에서 아담부부가 실족하게 되는 연유를 말하고 있음.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부부는 여호와의 뜻을 오해하고 의심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고 있음(창3:1-7). 만약 그들이 한번만이라도 욕심의 충동으로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서 하나님말씀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더라면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아니했을 것임. 그러한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아담부부처럼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여)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롬14:23a) 라고 말하고 있음.
3) 둘째, 믿음생활의 비결은 의심이 들고 잘 알 수가 없는 문제는 전부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따라 행동을 취하는 것임. 설령 성령님의 감동으로 무엇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옳은 것임. 성경이란 그러한 용도로 사용을 하라고 이미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임.
4) 셋째,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사도 바울은 안식일 논쟁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율법의 논쟁을 마무리하고 있음; “(아담부부처럼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여)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하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 한 마디로, 믿음생활의 황금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쾌한 설명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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