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의 골자 제13강(롬13: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년 7월 12일(목)
1. 사도 바울이 로마시대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 대한 대처의 방안인가?(롬13:1-2)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롬13:3) 또한 하나님은 세상의 권력자들을 사용하여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데 그 점을 알게 되면 성도들은 신앙 양심에 따라 그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롬13:4-5)
(1)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의 생각과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생각의 차이는 무엇인가?(마5:43-45)
1)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5:43-45);
2) 선민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가 나타나서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외세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부 쳐부수고 그 옛날 다윗대왕이 건설한 선민 이스라엘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기를 앙망하고 있음. 그와 같은 신앙은 불교의 미륵불 사상이나 그 옛날 아기 장수 사상과 비슷한 것임.
3)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의 선민만의 구원사상이나 정치적인 메시아 사상은 그들에게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민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임. 그러한 사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또 네 이웃(동족)을 사랑하고 네 원수(주변의 이방인)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43)고 말씀하심.
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상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하심.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이 서로를 원수같이 여기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치적인 메시아가 나타나서 전부 쳐부수어 달라고 모두들 그렇게 기도를 한다고 하면 전 인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멸망하고 마는 것임.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말며 서로 용서하고 함께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며 그렇게 화목하게 살아 가라고 가르치고 계시는 것임(마5:44-45).
(2)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로마제국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롬13:1-2)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自取, 스스로 얻음)하리라”(롬13:1-2);
2) 첫째, 사도 바울의 세상권세에 대한 설명은 이미 제11장 말미에서 선언하고 있는 그의 역사관과 같은 맥락임;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있으므로 세상권세도 주로 말미암고 있다는 것임.
3) 둘째, 세상권세를 주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는 것이 상책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답변은 긍정적이지만 많은 성도들의 생각은 부정적임.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임금이란 장차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쫓겨나는 존재이지 영원히 성도들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임(요12:31).
4) 셋째, 많은 성도들과 다른 견해를 사도 바울이 피력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깊은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와 성도가 당장 자신들을 핍박하고 있는 이 세상의 권력과 다투고 저항운동을 전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까지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주님의 손에 그 처분을 맡겨 드리라는 것임. 그것이 그들까지 회개시키고 함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복음적인 해법이라는 것임.
5) 참고로,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진작에 제12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음;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 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
(3) 다스리는 자들은 과연 선한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되지 않고 오로지 악한 일에 대해서만 두려움이 되고 있는가?(롬13:3)
1)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롬13:3);
2) 첫째,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권세라고 하더라도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표방하고 있으므로 선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기본적인 권력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음. 그러므로 선한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 세상의 권력이 두려움이 되지를 아니하고 그 반면에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임.
3) 둘째, 그렇지만 인간의 집단적인 이기주의가 사회와 국가의 권력을 지배하고 있으므로 그것에 마냥 순종할 때에는 다른 집단이나 다른 나라의 백성에 대하여 해악을 끼칠 수가 있는 것임.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여 그들도 주님의 뜻을 받드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임. 예컨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모두 사도 바울을 본받아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임(고전11:1).
4) 셋째,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전제로 하여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임. 그러하지 아니하게 되면 모든 세상 권력을 전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세라고 주장하면서 악한 세상의 권력을 정당화시키고 무조건 맹종만을 성도들에게 강요하는 잘못을 범하기가 쉬운 것임.
(4) 하나님은 세상의 권력자들을 사용하여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데 그 점을 알게 되면 성도들은 신앙 양심에 따라 그들을 어떻게 대하게 되는가?(롬13:4-5)
1)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롬13:4-5);
2) 첫째,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세상 권세자의 칼에 맞서지 말고 분노로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음. 이 세상의 권력이 악하다고 하여 성도가 동일한 방법으로 칼을 사용하여 대항을 하게 되면 그것 역시 생명을 죽이는 악한 것임. 따라서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를 못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지도 못하게 되는 것임. 그 점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의 뜻과 동일한 것임(마26:52-54).
3) 둘째, 악한 세상의 권력이 사용하고 있는 동일한 방법으로 저항운동을 전개하게 되면 악으로 악과 맞서게 되는 모양이 되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지 못하게 됨. 따라서 사도 바울은 진작에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임. 요컨대,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지배자이거나 피지배자이거나 상관 없이 모두를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며 예수님처럼 중보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대속의 방법을 사용하여야 하는 것임(눅23:34).
4) 셋째, 예수님과 같은 긍휼과 신앙 양심을 가지고 성도들이 이 세상의 권세자를 불쌍하게 여기고 그 구원을 간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보다 나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역자를 이 세상의 권세자로 세워 주시는 것임.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섭리하시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신다는 사실을 성도들이 명심해야만 하는 것임(롬11:34-36).
2. 사회적으로 조세를 거두어 복지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어떠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는가?(롬13:6) 그러한 일을 행하는 정부에 대하여 성도들은 어떠한 생각으로 협조를 해야만 하는가?(롬13:7)
(1) 사회적으로 조세를 거두어 복지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어떠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는가?(롬13:6)
1)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롬13:6); 국가가 다음과 같이 제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가 있는 것임;
2) 첫째, 오늘날 복지국가는 가난한 자와 노약자 그리고 장애자와 병든 자에게 생계비를 주고 사회적으로 돌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음. 그리고 갑자기 실업을 당한 자를 구제하고 난민까지 돌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음. 그러한 복지제도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나그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라고 하는 율법의 가르침을 벌써 제도화하고 있는 것임.
3) 둘째, 율법에서는 개인적으로 노약자를 돌보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을 현대 복지국가는 국가 재정을 가지고 사회정책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국가가 조세를 거두어 그러한 복지정책을 실시한다고 하면 그것을 성도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임.
(2) 그러한 일을 행하는 정부에 대하여 성도들은 어떠한 생각으로 협조를 해야만 하는가?(롬13:7)
1)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사상과 동일한 것임;
2) 첫째,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로마제국이 유럽과 중동을 다스리고 있는 때임. 로마제국은 수많은 속국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에게 조세는 내부적으로 속국의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하고 단지 관세를 거두어 로마황제에게 바치라고 명령하고 있음. 따라서 속국인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조세에 대해서는 반감이 별로 없지만 관세에 대해서는 그 시선이 곱지가 못한 것임.
3) 둘째, 유대인 출신의 세리들이 로마제국의 관리로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국내세를 거두어 선민 유대인을 위하여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는 유대인들이 세리를 크게 비난하고 있지 아니함. 그러나 세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세리에 대해서는 원망이 극심함. 그들을 매국노이며 율법상 죄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세관원인 레위를 불러서 제자로 삼고 나중에는 사도 마태가 되도록 했으며(마9:9-13, 10:3, 눅5:27-31), 여리고 세관장인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여 회개하는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하심(눅19:8-9).
4) 셋째,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22:21)고 말씀하심. 그 뜻은 열심당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무장독립투쟁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이 은근히 바라고 있는 정치적 메시아 사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 것임. 역사섭리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선민 유대인들과 성도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임. 요컨대, 예수님처럼 온세상에 다니며 복음사역을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가르치신 것임.
3. 사도 바울이 사랑의 빚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롬13:8)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을 갚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롬13:9-10)
(1) 사도 바울이 사랑의 빚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롬13:8)
1)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다음과 같은 당시의 역사적인 사건을 이해할 때 그 구체적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음;
2) 첫째, 로마제국의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압제하고 있는 외세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여 줄 정치적 메시아을 앙망하고 있음.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큰 선지자 나사렛 예수가 그 능력으로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라고 하는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임. 그에 따라 유대교지도자들의 실망과 예수님에 대한 배신감은 대단한 것임.
3) 둘째,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이며 가짜 메시아라고 판단하고서 그를 체포하여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대 공회에 끌고가서 심문을 하고 있음. 구체적으로, 예수가 유대교리를 위반하고 여호와 모독죄를 범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종교적으로 정죄를 하고 있음. 그리고 로마총독에게 끌고가서 로마황제에게 반역을 도모한 자라고 거짓고발을 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만들고 있음. 로마총독이 유월절 명절이므로 전례에 따라 한 사람의 죄인을 무죄 석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예수와 바라바 가운데 택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음. 유대교지도자들과 선민 유대인들의 선택은 만민구원을 부르짖고 있는 예수가 아니라 무장독립투사인 바라바임. 그 결과 주후 60년대 후반부터 유대인들이 로마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있음. 급기야 70년에 로마 정예병의 내침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초토화가 되고 만 것임.
4) 셋째, 주후 50년대초 사도 바울은 이 글을 작성하면서 초대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이 마치 유대교인들처럼 로마제국에 대하여 고분고분하지가 않으며 세력이 커지면 로마황제에게 대항이라도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심히 우려를 하고 있음. 그러한 노선은 예수님 대신 석방이 된 바라바의 노선이지 결코 이방인들 그리고 로마인들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복음사상이 아닌 것임. 따라서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고 강조하고 있는 것임.
(2)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을 갚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롬13:9-10)
1)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으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9-10); 다음과 같은 이치를 말하고 있음;
2) 첫째,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알기 쉽게 십계명의 취지를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으로 요약하여 말씀하심(막12:30-31).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돌보고 사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는 것임.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인 성도들이 로마제국의 위정자들을 미워하고 무력으로 세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획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것임.
3) 둘째, 무장투쟁노선을 포기하고 성도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할까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취지임; ①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을 용서하고 또한 구원하기를 원하고 있으니 부디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임. ②세상의 제국인 로마를 상대할 수 있는 세상적인 힘이 성도와 교회에는 없으므로 아무쪼록 주님께서는 그 옛날 출애굽 당시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제국인 로마를 다시 한번 굴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임.
4) 셋째,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순교의 역사가 헛되지 아니하여 주후 324년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유일한 국교가 되는 대 사건이 마치 기적과 같이 찾아오게 되는 것임.
4. 사도 바울이 서방선교를 계속하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시간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언급인가?(롬13:11) 2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종말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롬13:12)
(1) 사도 바울이 서방선교를 계속하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시간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는 언급인가?(롬13:11)
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13:11); 사도 바울의 근시안적인 종말론을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음;
2) 첫째, 사도 바울이 이 글을 로마시에 있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고자 시도하고 있는 때는 그의 제2차 세계선교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임. 그는 그리스 반도 남단의 큰 항구도시 고린도에서 이 글을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롬15:23). 벌써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반도까지 사도 바울 자신의 세계선교가 마무리가 되고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이제 로마를 거쳐 지중해의 끝인 스페인까지 가서 선교를 하고 나면 세상의 종말이 찾아올 것이라고 바울이 보고 있는 것임.
3) 둘째,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종말론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것임. 왜냐하면, 그는 로마제국이 군용도로로 닦아 놓은 그 길에 있는 큰 도시만을 찾아다니면서 징검다리식으로 선교를 하고 초대교회를 개척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임. 그가 그렇게 하여 지중해 끝의 항구도시 다시스까지 가게 되면 그것으로 자신의 이방인 선교가 끝나고 이 세상에는 주님의 재림과 종말 심판이 오게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임(롬15:28, 13:11).
4) 셋째, 주님의 생각은 사도 바울의 생각과 다르심. 따라서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죄인으로 만들어 로마로 압송하는 과정에 있어 전혀 뜻하지 아니한 오지와 섬에 복음을 전하게 하심(행28:1-14). 대 도시에만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지까지 두루 복음을 전하여야 올바른 선교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임. 따라서 이방인에게 선교를 한 그만큼 종말의 때에 가까워지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도 바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껑충껑충하는 선교방식으로 세계선교가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하는 것임.
(2) 2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종말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롬13:12)
1)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주후 51년경 사도 바울이 이 글을 고린도에서 작성하면서 장차 자신이 로마에서 서바나까지 서방선교를 마무리하게 되면 그것으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러나 그것은 다음과 같이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음;
2) 첫째, 그로부터 15년후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 사도 바울의 일대기를 생각한다면 로마서를 작성하고 있는 시점은 사도 바울 자신의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때임.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종말은 아닌 것임.
3) 둘째,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고 성도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종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자신의 종말이라고 하겠음. 그 이유는 육신을 벗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임.
4) 셋째, 그와 같은 의미에서 자신의 향년을 바라보면서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세계선교에 최선의 마무리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음. 그 일을 위하여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고 다짐하면서 영적 재무장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임.
5. 육신을 입고 공생애를 살며 복음의 일꾼으로 일할 수 있다는 인생의 중요성을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빌1:23-24) 그러므로 이 세상에 유익하게 그리고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성도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몰13:13-14)
(1) 육신을 입고 공생애를 살며 복음의 일꾼으로 일할 수 있다는 인생의 중요성을 사도 바울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빌1:23-24)
1) “내가 그 둘(현세와 내세)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3-24);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함;
2) 첫째, 사도 바울은 힘든 이방인 선교의 일을 빨리 끝내고 향년을 맞이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좋다는 것임. 그 이유는 예수님처럼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영광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임. 반면에 자신의 향년이 늦어지고 육신을 입고서 더 오래 이방인 선교를 하게 되면 자신에게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듣고 배우게 되는 이방인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더 유익이 된다는 것임.
3) 둘째, 사도 바울은 그러한 둘 사이에 끼어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인지는 자신이 아니고 자신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결정하실 것으로 확신하고 있음.
4) 셋째,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눅16:19-31)를 통하여 이미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람이 육신을 입고 있는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임(빌1:24). 왜냐하면,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선지자들의 예언 그대로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널리 전할 수 있기 때문임(눅16:31, 24:44-48).
(2) 이 세상에 유익하게 그리고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성도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롬13:13-14)
1)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2) 첫째, 성도들이 죽음에서 부활할 때에는 현재와 같은 몸이 아니라 영생의 몸을 입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됨(고전15:42-44). 예수님께서 영의 몸으로 부활하여 40일 후에 그대로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신 것처럼 성도들도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임(눅24:51, 22:28-30, 롬8:11, 빌3:10-12).
3) 둘째, 이 세상에서 입고 있던 육신을 마치 헌옷처럼 벗어버리고 새로운 옷을 입고 부활 승천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여 남은 인생을 성도들은 현재의 몸을 가지고 제멋대로 살아갈 수가 없음. 왜냐하면, 그 불편한 육신을 입고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면서 주님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하는 것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영생이냐 아니면 영벌이냐의 상급과 처벌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임(요5:29).
4) 셋째, 그와 같은 엄중한 사실을 모르고 영과 육은 전혀 별개라고 하는 영지주의 이론에 현혹이 된 니골라 당 성도들은 쾌락주의에 빠져서 제멋대로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간 것임. 그 결과 그들은 요한계시록 제2장에서 정죄를 받고 있음;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2:15-16).
5) 넷째, 그와 같은 불이익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정신을 차리고 이방인선교에 전념하라고 권면하고 있음;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서구에서는 기독교와 교회가 화석처럼 존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영적인 타락이 심하여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에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참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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