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64강(요21:24-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24. 21:56

요한복음 강해 제164(21:24-2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827()

 

사도 요한은 자신의 기록의 진실성을 누가 입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21:24)

 

사도 요한은 자신의 기록을 보고 그것이 진실임을 믿어줄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사도로 불리고 있는 자신이 소천을 하고 나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직접 보고 들은 제자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비() 경험세대인 성도들의 시대입니다. 그들이 바로 사도 요한 자신의 기록을 보고서 그 글의 진실성을 믿어줄 사람들입니다. 무엇에 근거하여 그들이 요한복음의 기록이 사실이며 그 주장이 진리라고 믿어줄 수가 있을까요? 세상학문적으로 말하자면, 비슷한 자료를 대조하여 비교연구를 함으로써 진리를 검증해낼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진리는 한 차원이 더 깊고도 높습니다; 먼저, 성도들 가운데 내주하여 계시는 진리의 성령님이 그 기록이 진실한 것임을 사람들의 영혼 깊숙이 깨닫게 해주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의 이성과 지성에 비추어서도 그것이 사실임을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작업을 이미 사도 요한은 거쳤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표현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21:24).

사도 요한은 특이하게 그의 복음서의 결론을 두 번 맺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결론은 제20장 끝입니다. 요한이 복음서를 저술한 목적을 그곳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0-31). 또 한번의 결론이 약간 다른 각도에서 제21장 끝에 다음과 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노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1:24-25). 그것은 요한이 그의 독자들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글이 진실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와 같은 두 번의 결론의 차이를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20장 말미를 다시 살펴보면,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을 사도들에게 먼저 입증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경험세대인 사도들이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장래의 성도들이 보지 아니하고도 영적인 진리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복을 만민에게 그리고 후세대에게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구세주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온 것이라고 사도 요한이 자신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둘째로, 추가되고 있는 제21장의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로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목숨을 바치기를 두려워하는 그들을 격려하면서 그 모습 그대로 목자로 발령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도가 되어 교회를 만들고 목양을 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지고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예언이 역사 가운데 성취되고 있음을 요한복음의 독자인 성도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21:24). 결론적으로, 그들의 증언은 제21장의 내용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모든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전체의 결론을 맺기 전에 사도 요한의 복음서가 지니고 있는 특이한 기술방식에 대하여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당장 서론부분을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그의 복음서는 연역적인 방법에 의하여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관복음처럼 예수님의 교훈과 행적을 모두 모아서 그것을 분석한 결과 그 분의 정체가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이며 그 사명이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비로서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가설이 먼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과 공존했으며 창조주의 영광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전제로부터 독생자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독생자가 창조주의 영광을 하늘에 내려놓고서 이 땅에 구세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신은 그 아들이 되어 철저하게 아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뜻과 세상적인 방법을 버리고 영적인 아버지의 뜻을 구현하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와 같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독생자의 영광이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다는 사실을 사도 요한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서론에서부터 요한복음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론은 다음과 같이 마치 기본 법칙의 적용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은 기본 가정(假定)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기에 그 틀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기본적인 서론만 잘 이해하면 본론의 내용들은 쉽게 정리가 되는 것들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애로써 신구약이 모두 이해가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정체성이 태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생명과 빛으로 계시하는 주관자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약의 하나님 말씀의 주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여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성육신을 하셔서 직접 계시로써 바로 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말씀의 본 뜻을 되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모든 창조물에게 죄의 사함과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요한복음의 본론입니다. 그와 같은 사도 요한의 주장과 기록이 진리임을 이 글을 미리 읽은 성도들과 그들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진리의 영이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 요한복음 제21장 제24절의 내용이며 제4복음서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의 분량이 어느 정도라고 사도 요한이 주장하고 있으며 그 엄청난 일 가운데 오직 이 정도만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21:25)

 

예수님이 행하신 일의 분량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면 피조세계가 모두 담을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분량이 될 것이라고 사도 요한이 주장하고 있습니다(21:25). 이 땅에서 성육신하여 단지 33년간을 살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교훈이 어떻게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분량이 된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한 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되지도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 말씀의 주관자인 독생자이며 그 분의 성육신이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독생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는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세계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피조세계인 우주가 아무리 광대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세계에 비하면 조그마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유전자 DNA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결합되고 분해됨으로써 삼라만상이 생성되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질서를 말씀으로 바로잡고 계십니다. 한 마디로, 온 우주를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능력이 없으면 우주는 사라지고 다시 혼돈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일찍이 하나님이 욥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한자어로는 柱礎임, 기둥 밑에 괴는 돌 따위의 물건을 말함)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38:4-11).

그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을 수도 없겠지만 모두 알 필요가 없습니다(20:30). 사도 요한의 생각으로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한번뿐인 인생을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 그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20:31). 위대하신 창조주의 존재를 알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일생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사실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에 사도 요한은 그것만을 증거하고자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사도 요한의 기록이 진실이며 그것만으로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많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읽고서 부디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라고 독자들을 두 차례나 권면하면서 그의 제4복음서의 기록을 끝마치고 있는 것입니다(20:30-31, 21: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