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61강(요21:1-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21. 21:32

요한복음 강해 제161(2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825(주일새벽)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40일간의 행적(20:19-21:14, 5:8, 24:49-53)

 

부활하신 예수님의 40일간의 행적을 살펴보자면 사도 요한과 의사 누가의 기록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1:3). 그 이유는 서로가 보완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서 부활하여 베다니에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유대와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제자들을 재교육시키셨는데 그 행로가 공생애 36개월과 궤적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그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 네 번의 유월절을 맞이하십니다. 그 가운데 처음 두 번을 예루살렘에서 맞이하시고, 네 번째 마지막 유월절에 베다니 인근 동산에서 체포를 당하고 마침내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만민구원을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고 맙니다. 세 번째 유월절에는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을 하십니다. 그와 같은 행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고스란히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과 의사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신 장소가 예루살렘입니다(20:19-23, 33). 그리고 두 번째 나타나신 장소도 예루살렘입니다(20:26-29). 처음 나타나신 날은 부활하신 당일 저녁입니다(20:19). 그리고 두 번째 나타나신 날은 8일이 지난 후입니다(20:26). 드디어 세 번째로 나타나신 날은 그 후 어느 날인데 그 장소가 갈릴리입니다(21:1, 14). 네 번째는 베다니에서 승천을 하시기 전이며 그 장소가 예루살렘입니다(24:47-49). 마침내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다니에서 승천을 하시고 있습니다(24:50-52). 이상을 요약해보자면 한 마디로, 예수님의 공생애 3년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의 행적으로 압축이 되어서 다시 그대로 이 땅에서 재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적으로 동일하신 원칙을 고수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궤적은 같은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오늘 날 나와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에서도 동일하게 임하실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이 강조하신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구약의 예언대로 메시아가 이 땅에 왔으며 죽음에서 부활한 사실을 온 세상에 전하는 증인의 삶을 제자들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24:44-48, 20:31, 21:24-25). 다음으로, 성령님이 강림하여 임재하시면 사도들과 제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24:49, 20:22, 21:18-19, 1:8). 끝으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지라도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명을 받아서 목양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21:15-17). 사역자들이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믿음의 성숙을 맛볼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말씀입니다(21:18-19).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사역자에게 아가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성화의 과정이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점을 그의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6:22).

사도 요한은 본문 21:1-14’ 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어로작업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을 필요이상으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의문을 해결해줄 수 있는 실마리가 누가복음 제5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3년반 전에 공생애를 막 시작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몬의 배를 타시고 그 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부들은 밤새도록 갈릴리 호수 깊은 곳에서 어로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습니다. 또 같은 장소에 가서 그물을 내려 보아야 허탕을 칠 것이 뻔합니다. 그렇지만 시몬 베드로가 결단을 내립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있는 예수님을 예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서 그물이 찢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배를 타고 있는 동무 어부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겨우 생선을 두 배에 나누어 싣고서 호안에 도착을 합니다. 의사 누가가 당시의 상황을 취재한 바로는 그 때 두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생선의 어획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서 시몬 베드로와 함께 어로작업에 참여를 했던 사람들, 곧 야고보와 요한도 깜짝 놀랐습니다. 시몬은 너무나 놀라서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현신한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디 죄인인 자신을 떠나달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5:1-8).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갈릴리로 제자들을 찾아 오셨을 때에 옛날 그 일이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 등 갈릴리 출신 제자 7명이 모두 호수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 왔습니다. 모두들 예수님인지 몰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가에서 지시를 하십니다. 그물을 옮겨서 배의 오른 쪽으로 한번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몬은 반신반의하면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이번에도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153마리의 생선이 한꺼번에 잡힌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먼저 그 기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채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가리키고 있는 표적입니다. 그래서 외쳤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스승께서 이제 갈릴리에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겉옷을 급히 두르고 호수에 뛰어내립니다. 한시라도 빨리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습니다”(21:1-7). 하나님은 인간으로 현신하실 때에 그 모습이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분의 성품과 하시는 사역입니다. 동일한 기적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 점을 사도 요한이 또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어선을 100m쯤 끌고 와서 호수 가에 도착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금방 잡은 생선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숯불구이를 하십니다. 생선과 떡을 제자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생선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시 말하고 있는 장면일 것입니다”(21:8-13).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동행을 하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경험을 모두 누리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이 아닐지라도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눌 때에 말씀이 깨달아지고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는 기적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의사 누가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눈 제자들의 모습 가운데 그 일을 두 차례나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려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24:29-32),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24:40-43). 그 식사를 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24:44-49).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식사를 함께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해주고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설명해주고자 하실 때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것 어느 하나 복음의 전파와 관련되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0:31). 반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먹을 것을 공급해주고 그 말씀을 들을 자를 보내어주셨다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때에는 형편이 여의치 아니하면, 오병이어의 기적까지 또 베푸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살펴본다면, 예수님이 입고 있는 부활의 몸의 특수성입니다. 그것은 시공간에 갇히지 아니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이미 보았습니다. 이제 그 몸은 생전의 예수님의 몸과 똑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찍이 하나님과 두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현신을 했습니다. 그 때에도 아브라함이 극진한 대접을 하는 것을 잘 먹고 마신 바가 있습니다(18:1-8). 그와 같은 사실은 한 가지의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가진다고 하는 것은 필요하면 육체적인 작용까지 일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이 그것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육신한 것이 아니고 잠시 현신을 한 것이므로 그것은 완전한 인간의 몸이 아닙니다. 영적인 능력이 감추어져 있는 몸에 불과합니다. 구태여 시공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는 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입으신 몸은 완전한 인간의 신체입니다. 똑 같은 고통을 맛보고 죽음으로써 비로서 벗어버리는 몸입니다(고후5:1-4). 예수님도 그 몸을 빨리 벗고 부활과 영생의 몸을 입으시기를 희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한 소망으로 살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3-24),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그렇지만 불편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이 바로 지상명령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입니다(28:18-20, 16:26-31). 그 기회를 결코 가볍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