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아볼로
(1)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다(행18:24a). 그는 헬라의 철학과 학문을 익혔으며 히브리성경에도 밝았다(행18:24b). 초대교회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는 헬라 철학과 학문이 가장 발달한 도시였으며 특히 머리가 좋은 유대인출신 학자가 많았다. 유대인 필로가 AD 1세기에 가장 뛰어난 알렉산드리아 학자였다. 그는 헬라의 철학을 중심한 학문과 유대인 종교와 사상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던 유명한 학자였다. 그러므로 같은 시대 그 곳 출신인 아볼로는 필로의 친구로 생각된다. 그리고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제자로 추정되며(행18:25) 요한처럼 담대하게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행18:26). 특히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살고 있는 이방 지역을 여행하고 그들의 회당을 방문하여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히브리 성경의 예언서를 가지고 증거했다(행18:24-26). 이상 아볼로에 관한 의사 누가의 사도행전기록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자 또는 사도에게서 직접 배운 적이 없는 자가 오로지 헬라 학문과 히브리 성경 그리고 세례 요한의 증거만을 공부하여 얻을 수 있는 메시아 사상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볼로는 애굽에서 출발하여 육로를 타고 북상하여 소아시아 에베소에 이를 때까지 열심을 가지고 유대인 교포들에게 예수가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아임을 증거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요한의 세례까지만 베풀 수 있었다(행18:25, 19:3). 왜냐 하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여 성령 세례를 받게하는 경지에 대해서는 무지했기 때문이다(행19:4-6). 그리고 일찌기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얻은 바와 같은 영적 체험, 곧 이미 부활∙승천하신 주님이 직접 베푸시는 계시의 영에 의한 깨달음이 없었던 것이다. 요약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죄사함의 세례, 성령의 임재와 역사, 주님이 주시는 계시 등 이 세 가지가 아볼로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위의 세 가지가 없을지라도 히브리 성경상의 선지자의 예언을 의지하여 메시아를 고대하는 자는(눅2:25-38) 세례 요한의 증거만을 믿고서 메시야가 이미 다윗의 자손 나사렛 예수로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선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유대교인 가운데 회심하는 자가 많이 생겨났던 것이다(눅3:10-12, 21, 행18:27-28, 19:1-3).
(2) 에베소의 회당에서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다(행18:26a). 그들 부부는 아볼로의 설교 가운데 무엇이 빠져있는가를 즉시 알아챘다. 그것은 그들 부부가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행18:11) 다음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의 진수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구원의 길을 십자가의 도로 제시했으며 하나님이 이를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자신의 부활과 승천으로 입증하였다. 그리고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옷입혀 주셨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아볼로 부부에게서 이와 같은 엄청난 진리의 말씀을 배웠다. 그는 마음속이 불붙는 것과 같았다. 그의 헬라 학문과 히브리 성경지식에 또다른 불이 지펴졌던 것이다. 그는 불붙는 열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행18:25-27) 바다건너 그리스에도 전하러가고자 했다. 마침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건너와 있었으므로 고린도 개척교회 중 하나인 가이오의 가정교회(house church)에 아볼로를 소개해주었다(행18:27, 고전1:14, 롬16:23).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서 증거했다. 그리고 이제는 회당 뿐만 아니라 여러 공중앞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힘있게 증거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린도의 그리스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나 시오니즘 보다는 만민구원의 사상을 더 선호했다.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설득력이 있었으며 유대인들의 쇄국적인 유대교 사상은 빛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행18:28).
(3) 고린도교회내에 아볼로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전1:12). 그들은 헬라 철학과 학문에 심취되어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히브리성경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을 읽고 있었던 자들이었다. 헬라 철학은 여러 갈래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온 우주적인 진리와 지혜에 대한 추구, 그리고 자연의 법칙에 대한 추구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추구였던 것이다.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추구였다. 이에 비해서 유대교적인 추구는 그 전제가 완전히 달랐다. 유대교는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철저한 신본주의에 해당했다(신6:4-9). 이들과 비교할 때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이 추구하면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은 신본주의이자 동시에 인본주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의도와 능력이 인자였던 나사렛 예수가 추구했던 십자가의 도, 바로 그 복음속에 담겨있었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롬1:16-17).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과 화평하는 신본주의 제사였으며 동시에 이웃 사랑과 만민구원을 성취하는 복음이었던 것이다(요3:16, 막12:28-31). 그러므로 헬라철학적인 인본주의와 유대교적인 신본주의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적인 “십자가의 도”였다. 그래서 아볼로파 역시 십자가 구원의 방법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묵상했다. 그들의 신앙은 자라기 시작했다. 철학과 학문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그들 신앙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내에 아볼로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아볼로가 고린도를 떠나 다른 이방지역 선교에 나섰지만 고린도교회내에서는 여전히 철학과 학문적 배경 그리고 여러 사도들과의 친소(親疎)관계에 따라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또는 순수 그리스도파 등으로 분파와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고전1:12). 이와 같은 분파를 잠재우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의도와 능력을 깨닫도록 재삼 설명한 자가 사도 바울이었다. 그는 심은 자, 물을 준 자도 중요하지만 신앙이 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의도와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 분의 의도에 따라 평생을 살 것이며 무슨 성취나 열매가 있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분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그 분에게만 영광을 돌리라는 가르침이었다(고전15:24). 하나님의 종인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오직 일한대로 주인앞에서 각자의 상을 받을 따름이다(고전3:3-9).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자신의 제자를 만들면 아니된다는 준엄한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4) 탁월한 학문을 지닌 전도자였던 아볼로의 이름은 “침략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의 의미 그대로 아볼로의 삶은 천국을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침략자와 같았다. 그는 헬라 철학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헬라 학문을 열심히 갈고 딲았다. 그리고 유대인 디아스포라답게 율법과 유대교 사상도 열심히 공부했다. 명절때에는 매년 예루살렘으로 성전순례도 나섰다. 그래서 요단 강가에서 세례 요한을 만나 선지자의 외치는 소리도 들었고 아예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도 다시 공부했다. 그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이방 땅에서 고생하면서 기다렸던 메시아, 다윗의 자손이 이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기 위하여 이 땅에 왔으며 머지않아 다시 재림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열심으로 이방지역 유대인 회당을 찾아다니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파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볼로와 같은 인위적인 노력가, 열심인 세례 요한의 제자가 유대인만의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메시아의 나라를 얻으려고 침략자처럼 노력할 것이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예언하고 계셨다(마11:12-13). 그와 같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만민구원의 십자가의 도를 제대로 전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것임을 주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볼로를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훗날 아볼로에게 거듭 부탁했다. 고린도교회에 다시 부임하여 목회자로 일해달라는 간곡한 청이었다(고전16:12). 사도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는 에베소교회를 부탁하고 아볼로에게는 고린도교회를 부탁하였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동역자, 교회의 사역자가 어떻게 서로를 포용하고 함께 일해나가야 하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아볼로의 남은 생애는 그를 높이 평가해준 사도 바울의 청을 받아들여서 고린도교회의 주교로 끝까지 헌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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