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98강(요11:17-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9. 14:03

요한복음 강해 제98(11:17-2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25()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11:21)

 

인생 가운데 주님이 내게 계실 때와 아니 계실 때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구절이 마르다의 입을 통하여 고백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임마누엘의 은혜로 함께 하고 있을 때에는 죽지 아니하는 역사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옳다고 확인해주고 있는 주님의 선언이 다음과 같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여기서 예수님은 백성들이 특별한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부활이요 생명으로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을 부활과 생명의 주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피조물인 사람의 힘으로써는 결코 부활과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를 인정하고 그 능력을 힘입을 때에 비로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창조주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주인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갈 때에 비로서 부활과 영생의 그 놀라운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마르다의 평범한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본문에서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어떠한 믿음이 요청되고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다음과 같이 그 뜻을 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너의 부활과 영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라. 그리고 주인의 뜻대로 선한 목자로 그리고 올바른 청지기로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 그렇게 주인이 기뻐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창조주의 능력이 종인 너에게 임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인 너를 하나님이 지키시고 예수님에게 주신 부활과 승천을 똑같이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그렇게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가르침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7-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6:53-57). 일찍이 모세시대에 출애굽을 했던 약 24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조상들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존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13:20-22).  그리고 매일 주시는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었습니다(16:4-5, 12-16). 나아가서 반석에서 주시는 물이 있었습니다(17:6-7). 생존을 위한 조건들을 모두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자신을 주인으로 모시면 생명의 양식과 음료수를 주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6:43-56).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주님을 믿고서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서 살아갈 때에 부활과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상징적인 수법으로 알려주고 있는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6:53-59).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11:22)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그리스도 예수를 자신의 부활과 영생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사실들은 무척 생소한 것들입니다; 첫째, 자신은 피조된 세상에 무방비로 던져진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벌거숭이 몸으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이 세상에 마치 유배를 온 것과 같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매우 낯이 선 풍경들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창조해놓은 천지만물과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소위 창세기 제1장의 내용입니다. 둘째, 그 때부터 생존을 위한 교육이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피조된 세계에서 성실한 청지기로 살아가도록 교육과 훈련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2장의 내용과 같습니다. 셋째,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행하지를 못합니다. 창세기 제3장의 내용과 진배가 없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물리적으로 처벌도 해보고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재교육을 시켜보아도 별로 달라지지를 아니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독생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직접 이 세상에 성육신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육신을 입은 상태로 이 세상에서 과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끝까지 선한 목자요 청지기로 살아갈 수가 있는지 시험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서 모든 백성들의 운명이 결정이 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승리를 하신다면 모든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 이제부터라도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똑 같은 방법으로 그 분의 제자가 되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부활과 영생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심장한 뜻을 지니고 있는 고백이 우연하게도 본문 가운데 마르다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11:22).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새로 태어난 인생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시는 부활과 영생의 선물을 종에게도 주시기를 간절하게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도와 달라고 예수님에게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라버니 나사로를 비록 늦었지만 살려달라고 하는 마르다의 간절한 소원을 예수님이 심각하게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답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11:23). 간절한 소원은 있었지만 막상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말씀을 듣게 되니 이제는 마르다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종말에 가서야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에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바리새인 랍비들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11:24, 12:18-23,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