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제96강(요11:5-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6월 23일(주일새벽)
이틀을 더 유하시고(요11:6)
예수님은 요단 강 동편에 계실 때에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중병이 들어서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요10:40, 11:1). 예루살렘 가까운 동네인 베다니 나사로의 집까지 가자면 요단 강을 다시 건너서 꽤 먼 길을 가야만 합니다. 일찍 서둘러야만 나사로가 죽기 전에 도착을 할 수가 있으며 예수님의 신위적인 능력으로 치유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예수님은 서두르지를 아니하고 느긋합니다. 이틀 동안이나 현지에서 더 머물다가 천천히 움직이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요11:6-7). 왜 그리하였을까요?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11:4),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 세상에는 ‘죽을 병’이 있고 ‘죽지 아니할 병’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환언하면, 불치의 병이 있고 치유가 가능한 병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불치의 병이 없습니다. 38년된 불치의 병자도 고치시고 어떤 여인은 그 옷자락만 만져도 12년이나 된 혈루병이 낫게 되는 기이한 역사가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요5:5-9, 막5:25-29). 단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늑장을 피웠기 때문에 그들이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간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요11:6-7, 39).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사로의 중병과 관련하여 그것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이미 진단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과 관련이 되고 있는 병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인 부활의 능력과 직결되고 있는 병입니다. 한 마디로, “죽어도 사는 병”인 것입니다(요11:25-26). 사람들은 목숨이 끊어지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개념은 다릅니다. 그것은 “그냥 잠을 자는 것” 정도에 불과한 것입니다(요11:11-14). 창조주의 영광으로 부활시키면 다시 살아서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죽을 병이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생명의 부활이 아니라 심판의 부활을 경험하고 영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요5:29). 그것은 유한한 목숨이 끊어지는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 두려운 영원한 죽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죽음의 개념입니다. 육체가 죽는 것은 그 영혼이 그냥 잠을 자고 있는 상태에 불과합니다. 그 잠을 깨우러 오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본문이 알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요11:11).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요11:10)
예수님이 요단 강 동편으로 피신을 하신 이유는 예루살렘의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예루살렘 근방인 베다니로 가려고 하십니다(요11:7). 그래서 제자들이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니까?”(요11:8). 예수님이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해가 있는 낮 동안에 길을 가면 주위가 환해서 안전한 것처럼 빛이 있는 동안에는 실족하지 아니하고 안전하다는 것입니다(요11:9). 그 다음에 의미심장한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요11:10). 사람 안에 거할 수 있는 빛은 태양 빛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 안에 거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의 빛과 성령의 깨우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하심으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태양보다도 더 밝은 하나님의 빛이 그 인생의 길을 비추고 지켜주기 때문입니다(계22:5).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2-3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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