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94강(요10:40-4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8. 08:44

요한복음 강해 제94(10:40-4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21()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를 베풀던 곳(10:40)

 

세례 요한이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침례를 베풀었던 장소를 사도 요한이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AD 27년경으로 보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이 글을 적고 있는 시점은 AD 90년경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거의 60년 동안이나 사도 요한이 그 지명을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요단 강 건너 편 베다니입니다(1:28). 왜 그렇게 오랜 세월 그 지명을 기억하고 있었을까요? 그의 글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 일은 요한이 침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1:28-30).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례 요한이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소개한 장소가 바로 요단 강 동편의 오아시스 마을 베다니이기 때문입니다. 사막과 광야와 같은 험한 인생길을 지나고 있던 백성들이 베다니에서 메시아를 만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꿈에도 그리던 구세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가장 기쁜 소식을 들은 장소가 바로 베다니입니다.

그 복음은 요단 강 동편 땅에만 전달된 것이 아닙니다. 요단강 서편 땅에도 전해졌습니다. 그 중심지가 또한 예루살렘 동편의 근교마을 베다니입니다. 나그네들을 위한 값싼 민박집이 많이 위치하고 있었던 주막동네 베다니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묵고 있는 나그네 인생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민박집 주인 나사로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죽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자 되살려내기도 한 것입니다(11:1, 11, 35, 42-44). 부활의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이전에 이미 민박동네 베다니에서부터 그 서쪽 예루살렘으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그 부활의 소식을 진화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유대교지도자들이 얼마나 노심초사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서 극형으로 사형시킴으로써 나사로의 부활사건을 잠재워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선지자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부활의 몸으로 되살아나오는 것만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한지 40일 후에 역시 역사적인 장소 베다니에서 승천하게 됩니다(24:50-51). 그와 같은 풀 스토리가 모두 베다니라는 지명과 직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80세가 넘은 노인 사도 요한이 그 지명을 여전히 기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던 자들이 구세주를 처음으로 만난 곳, 나사로의 부활의 소식을 들은 곳, 그리고 승천이 이루어진 곳, 그 동네의 이름이 모두 베다니입니다. 묘하게도, 유대교지도자들이 몰려 살고 있었던 예루살렘이 아니고 민초들이 살고 있었던 동네 베다니입니다. 본문에서도 그곳에 살고 있었던 민초들이 한결같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설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10:39-40).

 

세례 요한과 나사렛 예수님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10:41-42)

 

히브리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선지자의 이름이 말라기입니다. 말라기의 활동시기는 대략 BC 420년경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황제가 파견한 예루살렘 총독 느헤미야의 개혁이 물거품이 되고 나자 대제사장과 유대교지도자들은 더욱 세속화되고 말았습니다(13:6-7, 10, 28-31).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고 있는 레위인들에게 생계비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십일조를 내지 아니한 것입니다(3:10). 레위인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지방으로 흩어져버렸습니다(13:10, 2:9). 제사장들이 사라진 텅빈 유대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말라기 선지자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있는 예언이 그의 소선지서 말라기입니다. 그는 종말로 메시아가 이 땅에 나타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4:2). 또한 메시아를 소개하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가 다시 이 세상에 온다고도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 야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4:5).

그때로부터 약 450년의 세월이 지나자 유다 땅에 별안간 두 명의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세례 요한과 나사렛 예수입니다. 누가 다시 오는 엘리야이며 누가 메시아일까요?(1:19-27). 두 사람이 함께 만났던 동네가 바로 요단 강 동편의 오아시스 마을 베다니입니다(1:28). 그곳의 주민들이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10:41). 표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표적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표적을 행한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는 메시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백성들에게 소개를 했던 증거자입니다(1:6-8, 29-36). 그의 사명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부활하신 주님의 증거자입니다(24:48). 소아시아 땅 에베소에서 헬라인들에게 그리고 로마제국의 사람들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생애에 대해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베다니 마을에서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10:40). 창조주 하나님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며 모두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5:24-29). 그 말씀을 듣고서 많은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고 있습니다(1:11-18, 10:42). 훗날 사도들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초대교회가 형성될 수 있는 초석이 이미 예수님에 의하여 마련이 되고 있음을 사도 요한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2:4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