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96강(요11:5-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8. 19:49

요한복음 강해 제96(11:5-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23(주일새벽)

 

이틀을 더 유하시고(11:6)

 

예수님은 요단 강 동편에 계실 때에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중병이 들어서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10:40, 11:1). 예루살렘 가까운 동네인 베다니 나사로의 집까지 가자면 요단 강을 다시 건너서 꽤 먼 길을 가야만 합니다. 일찍 서둘러야만 나사로가 죽기 전에 도착을 할 수가 있으며 예수님의 신위적인 능력으로 치유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예수님은 서두르지를 아니하고 느긋합니다. 이틀 동안이나 현지에서 더 머물다가 천천히 움직이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11:6-7). 왜 그리하였을까요?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11:4),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11). 세상에는 죽을 병이 있고죽지 아니할 병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환언하면, 불치의 병이 있고 치유가 가능한 병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불치의 병이 없습니다. 38년된 불치의 병자도 고치시고 어떤 여인은 그 옷자락만 만져도 12년이나 된 혈루병이 낫게 되는 기이한 역사가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5:5-9, 5:25-29). 단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늑장을 피웠기 때문에 그들이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간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11:6-7, 39).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사로의 중병과 관련하여 그것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이미 진단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과 관련이 되고 있는 병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인 부활의 능력과 직결되고 있는 병입니다. 한 마디로, “죽어도 사는 병인 것입니다(11:25-26). 사람들은 목숨이 끊어지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개념은 다릅니다. 그것은 그냥 잠을 자는 것정도에 불과한 것입니다(11:11-14). 창조주의 영광으로 부활시키면 다시 살아서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죽을 병이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생명의 부활이 아니라 심판의 부활을 경험하고 영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5:29). 그것은 유한한 목숨이 끊어지는 육체적인 죽음보다 더 두려운 영원한 죽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죽음의 개념입니다. 육체가 죽는 것은 그 영혼이 그냥 잠을 자고 있는 상태에 불과합니다. 그 잠을 깨우러 오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본문이 알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11:11).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11:10)

 

예수님이 요단 강 동편으로 피신을 하신 이유는 예루살렘의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예루살렘 근방인 베다니로 가려고 하십니다(11:7). 그래서 제자들이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니까?”(11:8). 예수님이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해가 있는 낮 동안에 길을 가면 주위가 환해서 안전한 것처럼 빛이 있는 동안에는 실족하지 아니하고 안전하다는 것입니다(11:9). 그 다음에 의미심장한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11:10). 사람 안에 거할 수 있는 빛은 태양 빛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 안에 거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의 빛과 성령의 깨우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하심으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태양보다도 더 밝은 하나님의 빛이 그 인생의 길을 비추고 지켜주기 때문입니다(22:5).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2-3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