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92강(요10:25-2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7. 07:16

요한복음 강해 제92(10:25-2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19()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고 있다(10:25)

 

나사렛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알 수가 있을까요? 그 증거는 어떻게 확보될 수가 있는 것일까요? 두 가지의 입증방법이 가능합니다; 그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날 때부터 맹인인 거지를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눈을 창조해주는 것입니다(9:6-7). 또는 죽어서 무덤 속에 안장이 되어 있는 사람을 되살려내는 것입니다(11:43-44). 그 둘째는 예수님의 복음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합치된다고 하나님께서 직접 증거해주시는 것입니다(10:25). 예를 들면, 예수님의 경우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으며 그가 외친 복음의 내용 그대로 공생애를 살다가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14:36). 그러자 그것이 만민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역사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예수님을 무덤 속에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27:50-54, 2:32). 요컨대, 예수님의 부활,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의 본래 뜻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한 사역이 모두가 하나님의 의도에 합치된다는 증거입니다. 한 마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옳다고 그의 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주장했던 사실, 곧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만민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그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옳다고 판정이 된 것입니다.

이제 백성들의 찬송을 받게 되는 창조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있습니다(2:32-36, 5:12-14).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 속 부활사건이야 말로 야훼 하나님 한 분만을 찬양의 대상으로 공식화하고 있는 유대교의 교리에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6:4-5). 당시 바리새인들의 큰 스승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랍비 수업을 받고 있었던 영특한 교포 청년 사울은 도저히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22:3). 그래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나사렛 예수파의 박멸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러나 그마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 가운데 만나고 나서는 그의 신관과 구원관이 모두 변하고 말았습니다(22:6-21). 유대교의 교리에 오류가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옳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그리고 성령님이 모두 똑 같은 만민구원의 진리를 계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5-6).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누구든지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1:1-5, 11-18, 14:16-20).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른다(10:27)

 

  예수님이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듣는 백성들 가운데 두 무리가 나타납니다. 한 무리는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입니다. 또 한 무리는 말씀을 받아 들이는 자들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두 무리로 갈라진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는 자들이 누구인지 구별이 되게 되면 예수님은 그들을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붙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로 삼아서 말씀으로 계속 양육을 하게 됩니다. 풍성한 말씀의 꼴을 받아 먹으면서 제자들의 믿음이 성장을 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보면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게 되고 장차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처럼 공생애을 살게 되는 사도가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의 말씀이 본문에서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10:26-28).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게 주셨고 나를 통하여 그들에게 영생까지 주신다. 그 일과 그 영생을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다(10:28-29)

 

  영생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2:7, 30:20, 21:6-7, 22:1-5). 유한한 인생을 이 땅에서 살고 가는 허무한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창조주밖에 아니 계십니다. 유한한 목숨 대신에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의미합니다. 새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와 같은 역사를 경험한다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것과 같은 은혜입니다. 지금 자신을 선한 목자로 믿으며 그리스도로 알고서 마치 양들이 목자를 따르듯이 그렇게 제자로 따르는 자들은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10:27-28).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선물입니다(5:24, 10:28-29).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이나 악한 영들조차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역사를 방해할 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창조주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받도록 되어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있는 존재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9).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