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89강(요10:10-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6. 23:08

요한복음 강해 제89(10:10-1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16(주일새벽)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양치기는 양을 돌보고 그 생명을 지키는 자입니다. 평소에는 양들을 풀밭으로 인도하여 꼴을 먹이고 물가로 인도하여 물을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맹수가 나타나서 양을 해치려고 하는 비상시에는 그 짐승과 싸워서 양의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양치기는 양의 육적인 삶을 돌보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반 양치기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육적인 삶뿐만 아니라 영적인 삶까지 돌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자신의 말씀을 듣는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고 자기 대신에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도를 목자로 비유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반 양이나 보통 양치기와 다른 것입니다(21:15-17). 사람이란 양과 다르게 육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2:7). 여기서 육적인 생명은 육체적인 삶이 끝나면 사라지는 유한한 목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명은 훗날 부활의 몸을 입고서 승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8:12-18). 그와 같은 영원한 생명을 얻자면 사람들이 이 땅에서도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처럼 복음을 실천하는 생애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초신자들에게 그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목자들이 맡고 있습니다(21:17-19).

예수님은 풍성한 생명의 꼴을 만민에게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의 꼴을 공생애 기간 동안에 끝까지 받아 먹은 자들이 열두 사도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목자로 세워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꼴을 전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17:17-26).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러한 일을 제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곳이 오늘 날의 교회입니다(16:16-18, 28:18-20, 2:41-47).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생명을 살려야만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리하여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이 목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영적인 생명을 오히려 해치고 죽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들은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고 있는 사탄의 무리들입니다(고후11:14-15). 역사적으로 적그리스도이며 거짓 선지자들입니다(7:15, 요일2:22).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가리켜서 양들의 생명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0:10).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월()담을 하여 들어온 이리와도 같은 자들입니다(10:1, 8). 그 명칭이 설혹 교회라고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탄의 집단에 불과합니다.

 

선한 목자의 자격(10:1-15)

 

  예수님은 선한 목자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0:11).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살리고자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한 목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양들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선한 목자인지 아닌지 그 자격을 하나님이 아시고 또한 양들이 판단을 합니다(10:14-15). 양들이 보기에 이리가 쳐들어 왔을 때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자 도망을 치는 목자는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10:12). 그러한 목자는 돈을 받고 그 만큼만 일을 하는 삯꾼, 곧 월급쟁이에 불과합니다(10:13). 그 고용조건에는 목숨을 바쳐서 목양을 한다는 조건이 들어있지 아니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것은 성직이 되지를 못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목양을 하는 것이 바로 성직인 것입니다(21:18-19). 그 성직은 선한 목자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로, 선한 목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위임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갑니다. 양우리의 문지기가 예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 문으로만 양우리로 들어가는 것입니다(10:3). 그 반면에 예수님을 목자장으로 모시지 아니하고 있는 악한 목자는 월담을 하여 양우리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목자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양들을 착취하고 사리사욕을 챙깁니다. 그러한 자는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자파(自派)세력을 규합하여 교단을 만들고 교황을 만듭니다(10:1, 7-8). 그 교황이 새로운 양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선한 목자는 양우리로 들어가는 문이 비록 좁다고 하더라도 그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한 목자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일 때 그 양우리의 좁은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으로 정당하게 양우리에 들어가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한평생 목회를 하고자 하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