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88강(요10: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6. 03:05

요한복음 강해 제88(10:1-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15()

 

양의 우리의 문지기가 되시는 예수님(10:1-6)

 

문지기의 역할은 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를 통과시키고 들어갈 수 없는 자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의 우리의 문지기는 양의 우리에 들어갈 수 있는 목자와 양을 식별하여 통과시키며 들어갈 수 없는 목자와 양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양의 우리의 문지기가 목자와 양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자라고 하더라도 양의 우리에 양을 넣고 빼는 주권을 가지고 있는 문지기의 권한에 대해서 왈가왈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문지기가 주권자로서 양의 목자를 전출입(轉出入, 전입시키거나 전출시키는 것)시키는 일에 대하여 양들이 토를 달 수가 없습니다. 그저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면 그 문으로 통과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지기가 문을 닫아버리면 더 이상 출입을 하지 아니하면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양의 문지기의 권한을 존중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막강한 문지기입니다. 모든 목자의 임면권(任免權, 임명과 면직의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주권자이며 일종의 목자장입니다. 그리고 모든 양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에게도 목자발령을 낼 때에 내 양을 치라고 했지 (베드로) 너의 양을 치라고 결코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21:15-17).

그렇지만 세상에는 왕왕 양의 문지기의 권한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면 담을 넘어서라도 우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양의 목자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문지기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목자가 되려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양을 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점을,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10:1-2)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의 우리에 들어가려는 목자는 누구든지 문지기이신 예수님의 허락을 먼저 얻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정상적으로 우리의 문을 통과하여 주님의 양을 만나고 목양에 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목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보내어 주십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에 정결한 동물 7쌍씩, 부정한 동물 2쌍씩을 줄줄이 이끌어서 보내어 주시듯이 그렇게 목자의 교회라는 우리에 주님의 양들을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7:2-3, 9, 14-15).

주님의 양이기에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과 대속의 생애에 감격하고 반응을 하고 있는 양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공생애를 살면서 목양을 하려는 제자와 사도들에게 양들이 순종하고 따르게 됩니다. 반면에 다른 복음을 전하며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기는 거짓 목자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나타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10:3-5). 그렇게 쉽게 말해도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있는 가짜 목자들은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10:6). 눈뜬 장님이 따로 없는 것입니다.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10:7-9)

 

천국으로 가는 문은 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하자면 예수님처럼 공생애를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목자장이라면 사도들은 목자들입니다. 사도들이 성령님의 내주와 역사하심에 힘입어서 그리스도처럼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초대교회가 성립이 되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좁은 문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이 땅에서 목양을 해야만 하는 양의 우리의 좁은 문이 있습니다. 그 문 역시 주님이 가신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목양을 할 수 있는 자들만이 통과하는 좁은 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 좁은 양의 문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10:7). 그것은 자신을 통과하지 아니하고서는 진실한 목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의미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닮아가는 인생을 살지 아니하면 그 양의 문을 찾지 못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양의 문에 무엇을 걸어두고 계시는 것일까요?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확실히 경험하지 아니하고서는 양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살이 그 양의 문에 묻어 있습니다. 말씀의 성육신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그 살은 생명의 떡이며 영적인 양식입니다(6:51). 그러므로 풍성한 생명의 말씀을 양들에게 꼴로 나누어줄 수 있는 자가 양의 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10:10).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