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85강(요9:8-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4. 14:40

요한복음 강해 제85(9:8-1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13()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거지가 눈이 생기고 멀쩡하게 보게 되자 주위사람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9:8-12)

 

날 때부터 맹인인 거지가 갑자기 눈이 생기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 거지의 소경신세를 잘 알고 있었던 이웃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소경인 사람의 눈과 그러하지 아니한 사람의 눈은 그 모양이 다릅니다. 눈의 모양의 차이 때문에 용모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거지가 동일한 인물인지 아니면 단지 인상착의가 비슷한 다른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주위의 사람들이 갑론을박(甲論乙駁, 서로 논쟁을 함)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용모가 너무나 똑 같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투다가 마침내 당사자에게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거지가 답변을 합니다; “내가 그라!”(9:9). 당연히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9:10). 그 거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9:11). 이웃사람들은 그 거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해가 불가능한 일의 발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상식적인 이해와 과학적인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기적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기적을 체험한 그 소경거지의 진술을 살펴보면, 그것은 참으로 담담하고 간단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을 그대로 맡겨버리자 잠시 후에 눈이 보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로암에 다녀 오는 정도의 수고를 했을 뿐인데 갑자기 새로운 눈이 생기고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진술이기에 오히려 주위 사람들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행한 나사렛 예수를 직접 만나서 설명을 듣고자 애쓰고 있습니다(9:12).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합니다. 자신의 힘이나 세상사람들의 능력을 벗어나 있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에 속합니다. 기적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막상 기적이 일어나서 그 혜택을 누리게 되면 그 다음 수순이 흥미롭게 진행이 됩니다. 처음에는 당황해 하고 감격해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이 반복이 되면 그것 역시 범상한 일로 치부가 되고 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보인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선지자 이상의 기적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만 가지고서는 뜨겁고 감격스러운 믿음생활이 지속되기가 힘이 듭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그 기적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있어야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 때에 비로소 성도의 삶이 지속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소경거지의 경험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어떤 선지자가 그 거지의 딱한 처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9:1). 둘째, 천부적인 장애를 짊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습니다(9:2-3). 장애자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 생전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9:3-4). 셋째, 그 장애자 거지의 직임을 바꾸어주는 일, 곧 운명을 바꾸어주는 일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9:5-8). 그 말씀은 야곱의 운명을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었듯이 예수님이 똑 같은 창조주의 일을 이 땅에서 행하고 있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32:28-30).

 

이웃사람들은 그 거지를 왜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는가?(9:13-16)

 

  안식일 날 종교적인 기적이 동네에서 발생했습니다. 맹인 거지의 이웃사람들은 그 일의 의미와 자초지종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 거지를 데리고 히브리 성경의 선생인 바리새인들에게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떤 선지자가 일으킨 기적에 대하여 유대교 랍비로부터 유권적인 해석을 듣고 싶어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 정경의 선지자들의 기록을 참조해보더라도, 날 때부터 소경인 자의 눈을 뜨게 해준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면 다음과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35:3-6). 그 대목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11:4-5).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거부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가 앞서서 영적인 눈이 마치 소경과 같이 감겨지고 있습니다(11:8). 예언의 말씀대로 행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꼬투리를 잡아서 시비부터 걸고 있습니다(9:14-16).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