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83강(요8:52-5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 05:15

요한복음 강해 제83(8:52-5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11()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8:53)

 

이 땅의 영광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하늘의 영광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뜻의 말씀을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8:50-51).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본문은 두 가지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늘의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죽음을 당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듣는 제자들도 죽음을 그대로 통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8:52).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이 죽음을 그대로 통과할 수 있어야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영광이 주어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가운데 똑똑한 바리새인들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8:53).

그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8:54). 첫째,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이 땅에서 스스로 얻고자 하는 영광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늘의 영광에 비하여 볼 때, 실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이 땅에서의 영광은 이슬과 같이 스러지며 죽어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유한한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영광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면 예수님의 아버지가 성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1:12-13, 17:17-26, 8:15-17). 그리고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준 영생의 선물을 성도들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8:54, 17:1-2). 그것이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영광입니다(고전15:42-44). 예수님은 그 영광을 얻기를 소원하였습니다(17:1, 5).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이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17:24). 그것이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아브라함은 왜 예수 그리스도가 오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가?(8:56)

 

자신의 인생 한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경전에 밝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한갓 귀신이 들린 자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이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8:52-53). 그 말끝에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예수님의 응답은 두 가지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창세기의 인물 아브라함이 먼 훗날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는 것을 미리 알고서 즐거워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메시아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 또한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두 가지 내용에 대하여 모두 검토를 해보아야만 합니다; 과연 아브라함은 메시아가 종말로 이 땅에 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보면 그 대답은 긍정적입니다. 창세기의 인물들 가운데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었던 최초의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21:33). 그 신앙이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 이레의 믿음으로 더 깊어집니다(22:13-14). 하나님께서 숫양을 준비하시고 대신 제물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아들 이삭의 생명을 살려주시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장래에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여호와 이레의 신앙입니다. 말을 바꾸면, 그것이 바로 메시아의 오심을 확신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의 믿음은 노년에 더욱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하나님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4:3). 그것은 믿음의 가문에 약속의 아들을 대대로 낳게 해 줄 믿음의 며느리를 구해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신앙이 믿음의 가계에서 계속 승계될 수 있도록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다음에, 땅의 하나님께서 실현시켜나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서 실현시키고 있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어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메시아를 만나고 있는 것일까요? 현실적인 만남이 있어야 보고서 기뻐할 것이 아닙니까? 사도 요한이 그 점을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5:28). 사도 마태는 더 적나라한 표현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27:50-53). 메시아의 부활과 함께 아브라함 역시 부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적인 메시아와의 만남입니다. 그 소망이 믿음 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실상이라는 지적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눈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만을 보고 있는 육신적인 눈이 아닙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반드시 이루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미래를 보고 있는 영적인 눈입니다. 그는 그 눈으로써 이미 그리스도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사람들이 백 년 안팎의 짧은 인생살이 가운데 그 믿음의 영적인 눈을 반드시 얻어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남은 인생길을 기쁘고 즐겁게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시는 이(8:58)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8:42, 54). 그리고 유대교인들이 자신을 인정하든지 아니하든지 간에 상관이 없이 자신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의 영광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54, 17:5). 더구나 자신의 말씀을 준수하면 누구나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게 된다고 유대인들에게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5:24, 8:51). 유대인들은 귀신이 들린 것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나사렛 예수의 말이 너무 해괴합니다. 그래서 지각이 있는 유대인들이 마지막으로 묻고 있습니다;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8:57). 예수님이 다시 답변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 그 대답은 과거에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8:25). 그 말씀은 세례 요한이 이미 증언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1:15). 그 어떤 사람보다도 먼저 이 세상에 계신 분이 바로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이십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창조주의 영광을 가지신 독생자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1:1-3, 14, 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