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90강(요10:14-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6. 23:10

요한복음 강해 제90(10:14-1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17()

 

선한 목자의 비밀(10:14-15)

 

선한 목자는 양들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자입니다. 그 이유는 선하다고 하는 뜻이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4). 예수님은 그렇게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무엇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4-15). 목자와 양이 서로를 잘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잘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예를 들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이 서로 잘 알고 있다는 상호이해의 관계가 마치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관계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생애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동거하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가 피붙이같이 느껴지기까지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한 가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한 가족이 되었을 때 비로서 상대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목양을 하는 것이 마치 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부모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정도의 상호이해가 없이 함부로 남의 생명을 살린답시고 자신을 희생한다면 그것은 종종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한 마디로,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해서는 깊은 이해가 먼저 필요하며 서로가 목숨을 나누어주어도 아깝지 아니하다는 사랑의 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섣불리 흉내를 낼 수 있는 선심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희생으로 바치고 있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유한한 목숨이라는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선례를 따라서 목양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인류최초의 완벽한 선한 목자가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양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선한 목자의 사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수님의 선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보다 더 큰 것이 아닙니다. 그 점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예수님의 제자인 성도들이 뒤쫓아가야만 하는 스승 예수님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 믿고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백성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의 제물로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이 땅에서의 유한한 목숨을 희생하는 대가로 천국에서의 영생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덤에서 부활하여 새로운 몸을 얻고 있습니다. 그 부활의 몸을 입고서 스스로 승천을 하고 있습니다그러한 선례를 예수님의 제자인 성도들이 뒤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목자와 양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관계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둘째,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같이 목자가 양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모든 수고와 희생을 다 동원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방법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양의 생명을 살리고 끝까지 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렇게 선한 목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인 성도를 구원과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서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려서 하늘의 보좌로 인도하신 사실을 바라보면서 성도들이 선한 목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넷째, 여기서의 예수님의 가르치심, 양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주어진다는 공식이 선한 목자로 세움을 받게 되는 모든 사도와 제자들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다섯째, 그 적용의 법칙이 진리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진리의 영으로 오늘 날도 제자들에게 내주하여 말씀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14:26).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에 대한 이야기(10:16-18)

 

  예수님은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3:16-17). 그 만민을 양으로 비유를 하자면 예수님의 양의 우리에 이미 들어가 있는 양이 있고 또 아직 들어가 있지 아니한 양으로 대별이 됩니다. 후자의 양들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10:16-18); 첫째, 아직 예수님의 우리에 들어가 있지 아니한 양들을 우리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예수님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0:16a). 둘째,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 후자의 양들이 그것을 알아 듣고 장차 우리에 들어가서 다른 양들과 같은 식구가 되고 목자의 지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10:16b). 장차 믿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성령님의 역사로 복음을 믿게 되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기존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이 양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이 세상에서의 유한한 목숨을 희생하면 죽어도 다시 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0:17a, 11:25-26). 그 이유는 양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자를 창조주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지극히 큰 상급인 영생으로 보답하시기 때문입니다(10:17b). 넷째, 피조물인 사람은 스스로 자살을 할 수 있는 권세가 없습니다. 다만 복음을 전하고 목양을 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할 수가 있습니다(10:18a).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유한한 세상의 것을, 목숨까지라도, 바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영원한 것으로 갚아주신다고 하는 보상의 원칙이 계명으로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10:18b, 6:4, 33, 10:42). 그 계명 그대로 훗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무덤에서 되살아나서 승천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24:44-53). 그 사건은 하나님의 계명이 진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욥기의 기록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42:10-17).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보상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이 욥기에서 이미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구원과 영생을 이 땅에서도 만끽할 수 있는 신앙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