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패권(손진길 정치학박사)

동서양의 패권 16. 세계패권의 획득에 실패한 유럽대륙의 지배자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작성자; 손진길 박사)

손진길 2022. 3. 18. 12:27

동서양의 패권(작성자; 손진길 박사)

 

16. 세계패권의 획득에 실패한 유럽대륙의 지배자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

 

주후 1776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북아메리카의 동부 13개주 대표가 필라델피아에 모여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미합중국을 건설하기로 합의한다. 그러자 2년후에 프랑스의 전제군주인 루이 16세가 미국의 독립군인 민병대를 적극 지원한다.

프랑스는 식민지 경쟁국인 영국의 영향력을 북미에서 몰아내고자 미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것이다. 마침내 1783년에 영국군이 패배하여 북쪽으로 전부 쫓겨가고 미국의 독립이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국가재정을 미국의 독립전쟁에 너무 많이 사용해버린 프랑스의 루이16세는 국내 시민계급에 대하여 중과세를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나친 세금부담을 견디지 못한 시민들이 마침내 1789년에 혁명에 성공하고 2년후에는 루이16세를 전제군주에서 입헌군주로 그 신분을 바꾸어 버린다;

프랑스 시민세력이 1792년에 공화정을 실시하자 졸지에 루이16세는 일개 시민으로 그 신분이 추락하고 만다. 그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그가 해외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실패로 끝나고 루이16세는 이듬해 1월에 국가반역자로 정죄를 받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9달 후에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마저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프랑스 시민혁명의 파급을 우려하고 있는 주변국 네델란드,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의 전제군주들이 다국적군을 형성하여 왕정복고를 외치면서 프랑스를 침범하고 있다;

프랑스의 공화제 혁명정부는 내침하고 있는 연합군의 공격을 막는 한편 내부에서는 정권투쟁이 치열하다. 그것을 보고서 수년간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집트에서 회군하여 1799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만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정신을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국민 개병제를 실시하여 군사의 수를 대폭 늘린 다음 화친으로 돌아선 스페인을 제외한 기타 유럽의 국가들을 상대로 정복전쟁에 나서게 된다. 그는 놀랍게도 유럽대륙을 석권하는 위업을 달성하고 드디어 1804년에는 프랑스제국의 황제로 즉위한다;

그런데 유럽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에 그리스반도에서 발흥한 헬라가 유럽과 중동지역을 정복하고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이태리반도에서 몸을 일으킨 로마가 헬라 세계를 정복하고서 역시 세계의 패권국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것이 그리스 사람들과 이태리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그에 따라 서구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럽대륙을 석권하게 되면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이상한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남아 있다. 프랑스제국의 황제가 된 정복자 나폴레옹은 자신도 모르게 그 생각에 사로잡혔는지 러시아를 정복하여 유럽대륙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서 1812년에 무리하게 원정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그 옛날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이 미처 점령하지 못한 러시아를 정복하게 되면 나폴레옹이야 말로 세계적인 대제국의 건설자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러시아 정복에 실패하게 된다. 그 이유는 러시아의 고육지책인 청야(淸野)작전과 혹독한 동장군에 걸려들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그 영토가 광활한 나라이다.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가는 길에 불바다가 되어버린 들판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다. 프랑스 원정군에 양식을 제공하는 병참선이 얼마나 길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제때 보급을 받지 못하여 굶어 죽어 나가는 병사가 속출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친 프랑스 원정대가 러시아의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겨울의 맹 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따뜻한 프랑스에 살던 병사들이 그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동사하고 마는 것이다. 그 결과 프랑스 원정군은 40만명 이상의 전사자를 남기고 본국으로 후퇴하고 만다;

결국 유럽의 근대사에 가장 위대한 전쟁영웅 나폴레옹이 러시아원정에 실패하여 40만명 이상의 병력을 잃어버리고 패잔병이 되어 1813년에 돌아오고 만다. 그와 같이 나폴레옹이 동부전선에서 대패하는 광경을 보고서 프랑스에 눌리어 지내고 있던 유럽의 왕국들이 다시 연합하여 나폴레옹의 패권에 도전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의 도전이 성공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가 그동안 나폴레옹이 사용하던 전쟁의 기술을 그들이 배워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유럽의 군대가 일렬로 전진하면서 장총을 발사한 후에 총검으로 서로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그와 같은 전쟁의 방법을 포병장교 출신인 나폴레옹이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그는 보병의 후위에서 박격포를 연속으로 발사하여 적진을 먼저 박살낸다;

 그 다음에는 기병을 내보내어 포탄을 피하기에 여념이 없는 적들을 대거 섬멸한다. 그 전술이 비록 비겁하게 보일지 몰라도 효과 하나는 확실한 것이다;

그러한 방법을 다국적군이 그대로 사용하게 되자 나폴레옹 군대의 전승의 신화가 이제는 서부전선에서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마침내 18143월말에 3면에서 공격해오는 50만 대군에 의하여 파리가 포위당하고 4월에는 나폴레옹이 작은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듬해 나폴레옹은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되돌아와 다시 복위를 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18156월에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군에게 패하여 결국 남대서양 중앙에 있는 세인트헬레나 섬의 롱우드 저택에 유폐가 되고 만다. 그것을 일컬어 나폴레옹의 백일천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회상록을 구술하여 남긴 후 1821년에 별세하고 만다. 오늘날 파리의 앙발리드에서 볼 수 있는 나폴레옹의 무덤은 1840년에 영국이 그의 유해를 프랑스에 돌려줌으로써 그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곳 박물관에서는 지금도 전쟁 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생물, 도시건축 등에 두루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던 프랑스의 대 영웅 나폴레옹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한사람의 천재가 유럽에서 세계제국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약10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 나폴레옹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또 한사람의 천재를 유럽에서 만날 수가 있다. 그가 독일수상으로서 나치군대를 지휘하여 한때 유럽대륙을 석권했단 히틀러이다. 차제에 그의 패권의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한번 추적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로, 나폴레옹은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의 성공 후 1792년에 성립된 공화제 정부가 외환과 내우로 크게 흔들리고 있을 때에 1799년 이집트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유럽전쟁에서 승리하여 1804년에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한 인물이다. 한편 독일의 히틀러는 유럽전쟁에서 패전한 조국이 1919년부터 전쟁배상금을 갚지 못하여 허덕이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 대안을 제시한 인물이다.

히틀러는 1933년에 수상이 되어 나치군대를 집중적으로 양성하여 1939년에 유럽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아예 배상금을 갚을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공통점은 유럽전쟁에 승리함으로써 휘청거리고 있는 조국을 일단 번영과 패권의 반석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둘째로, 그러나 전쟁영웅인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는 똑같이 러시아를 정복하고자 원정에 나섰다가 참패를 당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나폴레옹의 군대가 1812년에 러시아원정에 나섰다가 청야전술에 휘말려서 굶주리게 되고 급기야 겨울철에 접어들자 지독한 추위 때문에 많은 동사자를 남기고 이듬해 후퇴를 하게 된다.

그와 똑같은 길을 독일의 수상인 히틀러와 그의 나치군대가 걷게 된다. 1941년에 러시아 원정에 나섰지만 역시 청야전술에 휘말리고 동장군에게 져서 후퇴를 하는데 그 뒤를 1942년에 소련군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동부전선에서 참패를 했기에 서부전선 곧 서구에서 적들의 반격이 대대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경우에는 1814년에 3갈래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50만 대군을 막지 못하여 수도인 파리가 함락을 당하고 그는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듬해 섬을 탈출하여 권좌를 되찾지만 소위 백일천하’로 끝나고 1815년에 남대서양 중앙에 있는 세인트헬라나 섬의 저택에 유폐가 된다. 마침내 1821년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런데 히틀러의 경우에는 그 말로가 나폴레옹보다 더 비참하다. 1942년에 소련군이 후퇴하고 있는 나치군대를 추격하면서 동구지역을 점령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2년이 지나자 미국과 영국을 위시한 연합군이 유럽대륙의 서쪽 끝인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있는 것이다. 상륙한 연합군의 공격을 막다가 보니 동구에서 쳐들어오는 소련군이 먼저 베를린으로 진격하고 있다.

그에 따라 19454월말에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57일에 독일정부가 항복함으로써 세계 제2차대전 가운데 유럽전쟁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태평양전쟁에 있어서는 그해 815일에 일제의 천황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세계 제2차대전이 완전히 끝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근세와 현대의 전쟁영웅인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19세기의 프랑스와 20세기의 독일이 각각 유럽의 패권을 한때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대륙의 패자가 세계의 패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다.

두사람이 믿고 있는 것은 유럽의 대륙을 석권하면 세계패권을 가질 수가 있다고 하는 옛날 헬라시대나 로마시대의 역사적 선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5대양 6대주가 모두 개발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성립이 되지 아니하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

히틀러가 일으킨 세계 제2차대전의 결과 유럽에서는 대영제국의 영광이 사라지고 있다. 유럽대륙이 아니라 유럽의 섬에서 세계로 진출하여 제국주의 시대의 최강자가 된 영국이지만 더 이상 세계패권을 보전할 수가 없게 되고 만 것이다.

대영제국의 뒤를 이어 오늘날에는 미국에 의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20세기 후반에는 소련이 그리고 21세기에는 중국과 같은 강력한 패권도전국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의 패권은 유지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과거와 같은 산업생산력의 우위에 의한 세계패권의 유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부터 미국내 제조업이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소위 산업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 대영제국과 달리 오늘날 미국의 패권은 무엇으로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일까? 세가지를 우선적으로 손꼽을 수가 있다; 첫째, 세계 군사력의 절반을 넘고 있다고 하는 막강한 미군의 존재이다. 둘째, 세계의 지하자원과 곡물의 유통 및 자본의 흐름을 규제할 수 있는 미국의 힘이다;

셋째, 미국의 달러가 유일한 세계적인 기축통화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와 같은 미국의 패권에 태클을 거는 국가가 나타난다고 하면 미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끝까지 주저앉히고 말 것이다. 그것이 2020년대에 나타나고 있는 세계적인 이슈와 국제관계의 핵심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