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패권(작성자; 손진길 박사)
14. 대 항해시대 서양의 패권국 스페인
주후 15세기를 전후하여 스페인이 대 항해시대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1492년 스페인왕국이 보낸 컬럼버스의 선단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자 그때부터 스페인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선점하고서 그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막대한 금과 은을 유럽으로 가지고 와서 스페인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유럽에서 떠난 선단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그리고 나중에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도착하자면 무엇보다 나침반으로 지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서양에 나침반이 도입된 시점이 언제일까?
많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대체적인 합의를 보고 있는 것은 중국의 송나라 시대에 나침반을 사용하여 무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기는 주후 10세기 후반에서 13세기 후반이다. 아마도 13세기에 나침반이 실크로드를 타고서 중동의 아랍에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의 과학문명이 유럽으로 전해진 시기는 언제일까? 그 자세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작이 되고 있는 계기는 알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그러므로 송나라의 나침반이 서양으로 흘러 들어간 시기는 주후 11세기말에서 13세기말 까지 진행이 된 십자군 전쟁의 끝 무렵이 될 것이다;

한편 중동의 역사에 있어서 오랜 십자군 전쟁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셀주크 투르크제국이 쇠퇴하게 된다. 때마침 주후 1369년에 사마르칸트에서 발흥한 티무르가 비틀거리는 셀주크 투르크제국을 치고서 1404년에 거대한 티무르제국을 중동지역에 건설하고 있다.
참고로, 전쟁영웅 티무르는 동양의 제국인 원나라까지 정복하려는 원대한 꿈을 품고서 원정에 나섰으나 1405년 2월에 그만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그에 따라 그의 아들이 두번째 황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티무르의 후계자 샤 루흐가 집권하고 있는 40여년 동안 사마르칸트에서 과학과 천문학이 꽃을 피우게 된다. 그 이유는 그의 태자인 울룩 벡이 사마르칸트에서 대리청정을 하면서 과학자와 천문학자를 대거 초빙하여 문예진흥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사를 생각하여 볼 때, 15세기 중반에 티무르제국의 선진 천문학과 수학이 서구사회에 들어온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항해술의 발달에 크게 일조를 하게 된다.
드디어 15세기 후반에 이태리 출신인 컬럼버스가 나침반과 천문학에 대한 과학지식을 적극 활용하여 미지의 항로를 개척하고자 나선다. 그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동방무역에 나서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후원자를 두루 물색하고 있다. 그때 그 뒷배를 보아준 왕조가 스페인이다;

그와 관련하여 스페인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경의 구약인 히브리정경을 살펴보면, 그 옛날 지중해 무역을 석권하고 있던 페니키아가 멀리 바다 끝의 반도에 개척한 식민도시가 바로 다시스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솔로몬)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해상왕국 페니키아 두로의 왕인)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왕상10:22),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1:3);

풀이를 해보자면, 주전 10세기 솔로몬 대왕의 시절에 벌써 지중해 끝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도시 다시스가 페니키아인들의 무역항이다. 그리고 주전 8세기에 그곳으로 가는 배를 타고서 선지자 요나가 동쪽 니느웨로 가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서쪽 끝으로 도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로마제국은 이태리반도에서 시작하여 그 영향력을 당시 유럽의 서쪽 끝인 이베리아 반도까지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은 당연히 라틴 문화권에 속하고 있다. 그런데 주후 476년에 고트족이 서로마제국을 점령하고 서고트족이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주후 8세기에 아랍의 이슬람제국이 쳐들어오자 그만 패전하여 그들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14세기가 되자 십자군 전쟁을 경험한 캬톨릭의 기사들이 대거 이베리아 반도로 쳐들어와서 스페인 땅을 아랍인들에게서 되찾고 있다. 그 결과 15세기에 카톨릭을 국교로 하고 있는 스페인왕국이 이베리아 반도를 다스리게 된다.
셋째로, 15세기말에 라틴 아메리카의 존재를 알게 된 스페인왕국에서는 16세기에 그곳에 식민지를 개척한다. 금과 은을 채취하여 국부를 늘이게 되자 스페인은 선단을 인도양과 태평양에 보내어 항로를 개척하게 하고 아시아지역에도 식민지를 개척하게 된다. 그리고 경제적인 부를 이용하여 로마 카톨릭의 최대의 후원국이 된다. 따라서 대 항해시대의 주인공은 스페인이며 그들의 패권이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식민지역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 로마교황청은 스페인의 패권을 믿고서 성경말씀에도 없는 교황과 카톨릭교회의 우상화를 전개하고 있다. 로마 교황이 발행하고 있는 면죄부를 사기만 하면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가 그대로 임한다고 하는 교리를 퍼뜨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황의 어록이 성경말씀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변한 것이다.
로마교황청의 우상화 작업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종교개혁의 목소리로 16세기를 전후하여 유럽에서 높아지고 있다. 드디어 1517년에 프러시아의 땅에서 신부인 말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 글을 비텐베르크 대학교 부속 교회당 정문에 공고하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로마교황청에서는 그를 파문하고 처형하려고 했으나 정치적으로 카톨릭에 반대하고 있는 작센 선제후인 프리드리히(Friedrich)가 말틴 루터를 보호하므로 성공하지를 못하게 된다.
그때부터 유럽에서는 카톨릭에 대한 종교개혁과 신교운동이 번져가고 있다. 로마 카톨릭의 존폐에 관한 위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스페인에서 이그나티우스가 나타나 로마 교황에게 타개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이 크게 보아 두가지이다;
하나는, 종교개혁논리에 대항할 수 있도록 신부들을 재교육시킨다는 것이다. 교육의 내용은 절대적인 진리인 카톨릭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신부들이 로마 교황을 총사령관으로 삼고 자신들이 장교가 되어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도들을 부하로 삼아 철저하게 카톨릭 교리를 공부시킨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럽에서 카톨릭이 수세로 몰리더라도 해외 식민지에 카톨릭 교회를 많이 세우게 되면 교세가 커져서 생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의 선박이 식민지에 내왕할 때에 신부를 동승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안에서 잃은 것을 바깥에서 찾는 카톨릭의 해외선교의 방식이다. 그 일에 스페인이 세상적인 패권을 이용하여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그나티우스의 방법이 놀랍게도 종교개혁의 높은 파고를 뛰어넘어 로마의 카톨릭이 역사적으로 생존하게 되는 비결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신흥종교들이 국내에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해외선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선례가 있는 행동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와 같이 로마 카톨릭과 함께 패권을 행사하고 있는 스페인의 영광이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고 있다. 그 이유가 크게 보아 2가지이다;
첫째, 영국에서 1689년에 명예혁명이 발생하고 있다. 그 의미는 시민계급에 의하여 평화적으로 국왕이 바뀐 것이다. 그때부터 부르주아 계급인 시민들은 국가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하면서 자신들의 자본을 크게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그러한 분위기에 발맞추어 18세기 초에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18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산업의 현장에서 그리고 운반의 현장에서 에너지원으로 적극 사용이 된다. 구체적으로, 공장제 기계공업에 의한 생산과 증기열차 및 증기선박의 운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더구나 1830년에 영국정부가 봉건적인 교구에 의한 주민들의 이동규제를 철폐하게 되자 드디어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공장에서 엄청난 물량을 생산하게 되자 영국은 상품을 팔기 위하여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한다. 그것이 식민지를 개척하는 영국제국주의의 주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이 해외식민지를 선점하고서 금과 은을 채취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영국이 스페인의 식민지를 무력으로 빼앗아 자국의 소비시장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영국의 군대가 스페인의 식민지를 계속 빼앗고 있다. 드디어 스페인의 패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1789년에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이 발생한다. 황제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있다;

주변의 왕국들이 깜짝 놀라서 ‘왕정복고’를 외치면서 연합군을 형성하여 프랑스를 압박한다. 그러자 프랑스의 혁명세력이 4가지 전략으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1) 첫째, 프랑스의 시민혁명정신에 찬성하는 자를 프랑스의 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민족주의를 버리고 이념적인 공동체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외에서 프랑스의 시민혁명정신에 찬성하는 자본가들과 시민들이 그 편을 들고 있다.
(2) 둘째, 프랑스는 용병제나 모병제를 버리고 과감하게 국민 개병제를 실시한다. 그것은 프랑스의 시민혁명정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누구나 군인이 되어 총을 든다는 의미이다.
(3) 셋째, 전략에 밝은 포병장교출신인 나폴레옹에게 전권을 주고 징병한 젊은이들을 훈련하여 외세의 침략에 맞서게 한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여 나폴레옹이 유럽대륙을 정복한다. 그에 따라 그는 프랑스 시민혁명정신을 수호하는 전도사로서 일약 프랑스제국의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4) 넷째, 프랑스의 시민인 자본가들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직수입하여 생산을 늘리고 그것을 팔 수 있는 해외시장의 개척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가까운 아프리카로 진출하여 먼저 식민지를 얻고 그 다음에는 아메리카와 아시아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과 프랑스가 해외시장을 구하기 위하여 사사건건 스페인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의 공격에 스페인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왜냐하면, 스페인의 상업적인 이익이 결코 영국과 프랑스의 산업혁명에 따른 공장제 대량생산의 이익보다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원리는 오늘날에도 세계의 패권의 변동에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술을 혁신하여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많이 가진 국가가 다음 세대의 패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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