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2강(요1: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7. 05:10

요한복음 강해 2(1:2-5)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5()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 독자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신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공유하고 있는 독생자입니다. 그러므로 정체성은 하나님의 부분으로 독립성을 누리고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과 몸이 되어서 모든 창조의 행위를 완성하고 있는 자입니다. 독생자가 땅에 파견되어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불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독특한 설명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저술하고 있었던 당시의 헬라 철학과 사상에 의하면 그의 설명은 상당히 논리적인 것입니다. 동시에 히브리 성경에서도 근거를 찾을 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원시적인 형태의 영지주의가 그러합니다. 그리고 모세오경의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 이미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영지주의는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신의 세계가 먼저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적인 지혜로부터 창조되고 있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자연계 그리고 육체적인 인간의 세계가 하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인들의 신의 세계는 범신론적이지만 신들의 아버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소위 최고의 신이 아버지로서 365개나 되는 많은 신을 아들 신으로 만들어내었다는 관념입니다. 가운데 열등한 신으로서 이른 말씀 또는 진리 의미하고 있는 로고스 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로고스 그만 지혜가 출중하여 아버지의 금기를 어기고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창조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러한 헬라의 철학자들의 로고스사상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라도 창조주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주되심을 그들의 사상에 비추어서 설명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독생자는 헬라의 사상보다 위대한 것입니다. 이유는 유일한 창주주 야훼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는 히브리 사상에서부터 독생자가 비롯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창세기에서부터 로고스 관념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일례를 들자면, “ 후에 야훼의 말씀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방패요 너의 지극히 상급이니라(After thi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같은 표현이 그것입니다(15:1). 히브리 사상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 이미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체로 그들에게 계시로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천국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분리되기도 있다는 사실은 훗날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독생자가 인간에게 일찍부터 아버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선지자를 통하여 계시해주는 일을 주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독생자의 사역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특징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도 요한의 명제가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 “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 독생자가 계시해준 창조주에 관한 말씀 가운데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있는 방법이 들어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닌지 조명해볼 있는 빛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백성들이 말씀의 빛을 조명 받는 것은 쉽지가 아니합니다. 이유는 인간이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어두움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사람에게 비추어지더라도 어두움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의 방해로 쉽게 백성들이 생명의 뜻을 깨닫고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1:9-11, 6:12, 4:14-19).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여줄 때에는 어두움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스러지고 것입니다(1:14, 16, 8:2). 그러한 이중적인 설명이 가능한 문장이 다음에 이어지고 있는 요한복음 1 5절의 말씀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but the darkness has not understood it, NIV, …..and the darkness did not overcome it, NRSV)”(1:5). 구미지역의 성도들이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새국제번역(NIV)’ 한국어 성경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학교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새수정표준번역(NRSV)’에서는 어두움의 세력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결코 이길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위와 같이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