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3강(요1:6-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8. 01:14

요한복음 강해 3(1:6-8)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1:6).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백성들, 성도들에 대하여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1:12-13). 그와 같은 표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먼저 공통점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모두 하나님께로부터그들의 인생이 시작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환언하면, 그들이 세상에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 그들의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이 돌아가야 곳도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11:16).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생명과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분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세례 요한이나 성도들이나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이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말씀의 성육신이며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말씀에 비추어서 각자 자신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1:4, 7). 그러한 외침이 바로 그들이 세상에 목적이며 그들이 인생을 사는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마디로, 그러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입니다(1:6, 12-13).

다음으로 세례 요한과 성도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시점이 서로 다릅니다. 세례 요한은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고 있습니다. 이름을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시고 부모에게 출생의 예언을 해주고 있습니다(1:13-25). 그렇지만 성도들은 그러한 과정이 없이 생물학적으로 부모로부터 먼저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중생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점에 관하여 훗날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3:5). 둘째, 여자가 낳은 중에 세례 요한보다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성도들보다 작은 자가 되고 있습니다(11:11). 말씀의 뜻은 단지 예언에 의지하여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는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보다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정확하게 주님을 증거할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시대에 아볼로와 사도 바울의 차이가 그와 같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는 말씀 가운데서 메시아를 깨달았습니다(18:24-26). 그래서 교회에서 증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가운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나타나시는 것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9:3-22). 그의 신앙은 체험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적인 체험과 깨달음을 히브리 성경말씀에 비추어보았습니다. 확신이 서게 되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자신의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갔습니다. 결과 사도 바울의 간증과 주님을 증거하는 능력이 훨씬 힘이 있습니다(19:1-7). 일반적으로,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을 하고 있는 자의 증거가 법정에서 효력이 있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직접 증인이 하나님의 법정에서도 간접 증인보다는 중시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바울과 같은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시고 체험을 말씀에 비추어서 객관화시키고 일반화시켜서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전하시는 주님의 증거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말씀의 성육신이 아니라 단지 성육신하시는 독생자의 증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1:7-8). 인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가 없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고 지켜야만 하는 법도가 있습니다. 종이 분수를 넘어서서 주인의 지위를 침범하게 되면 진노를 사게 되고 멸망을 당할 뿐입니다(20:14-16).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청종하는 종을 자녀로 삼아 주시는 그것만도 너무나 감지덕지한 일입니다(1:12-14). 그러한 분수와 법도를 지키면서 메시아의 증거자가 되고 있는 사람이 여기서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신분과 삶의 목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도 요한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의 지적이 새삼 그리워지고 그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느껴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