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51(손진길 소설)
한편, 30여년전 신라의 삼한일통을 달성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결성이 된 오인회의 구성원 가운데 3사람이 서기 660년 6월 초순에 서라벌에서 비밀회합을 가진다;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3사람이 당시 신라의 국왕인 김춘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상대등 김유신, 그리고 압량군주이며 신라의 최고 재사인 윤책이다.
역시 오인회의 구성원인 최추랑 군주는 아차산성에 주재하면서 한강유역을 지키느라고 참석하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김흠순 유수는 최근에 군주로 승진하여 고허산성에서 수도경비업무를 챙기느라고 참석하지 아니하고 있다.
비밀회합에서 벌써 7년째 신라를 통치하고 있는 국왕 김춘추가 먼저 말문을 열고 있다; “이제 다음달 7월 초순에 당나라의 원정군이 결성되어 백제로 향하게 될 거예요. 우리 신라도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접수하기 위하여 원정군을 3개의 군단으로 나누어 운영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최종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를 한번 점검하자는 윤책 군주의 의견이 있어 우리가 모였어요. 각자 의견을 개진해주세요… “.
윤책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점검하고 싶은 내용은 3가지입니다; 첫째, 고구려가 백제에 구원군을 보낼 수 없도록 당나라가 군사적으로 조치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의자왕을 구원하기 위하여 백제의 지방세력이 어느 정도 군사를 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 당의 사령관이 백제를 접수하고 당의 영토로 삼고자 나설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
그 말을 듣자 국왕 김춘추가 먼저 대답한다; “내가 장안에 가 있는 김인문의 첩보를 최근에 받았는데 당 고종이 고구려의 국경지대에 일부 육군과 수군을 파병했다고 해요. 당 고종은 간헐적으로 고구려를 그렇게 괴롭히고 있어요. 기습을 하고서는 바로 빠져나오는 수법으로 강대국 고구려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부황인 당 태종과는 달리 상당히 약은 인물입니다. 어쨌든 그 작전에 묘하게도 연개소문이 말려들어 남쪽으로 거의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어요. 5년전에 백제와 연합하여 우리 신라를 한차례 남침한 것을 제외하면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요… ”;
그 말을 들은 윤책이 말한다; “그러나 막상 백제 의자왕의 친서를 받으면 긴급하게 구원병을 일부 보낼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고구려의 구원병이 오기 전에 백제를 멸망시켜야 합니다. 빠른 군사작전 그것이 이번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국왕 김춘추가 윤책에게 묻는다; “백제 사비성에 대한 공작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윤책이 즉시 대답한다; “작년말 좌평 흥수의 유배조치로 말미암아 중앙의 대신들은 입을 다물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자왕에 대한 기대를 아예 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방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왕자들에게 너무 많이 빼앗기고 있기에 의자왕에 대한 반감이 대단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속전속결로 사비성을 점령한다고 하면 지방의 귀족들은 지원병을 보내지 아니하고 말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춘추와 김유신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 다음에 김유신이 윤책에게 묻는다; “그런데 윤책공, 만약 당의 원정군 사령관이 우리 신라의 원정군 사령관인 나를 마치 자기 부하처럼 다루고자 그렇게 대국의 위세로 나오게 되면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 신라가 백제를 멸하고자 당나라의 원군을 청한 마당에 내가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그 문제는 신라의 국왕인 김춘추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관심사항인 모양이다. 따라서 김춘추도 재사 윤책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자 윤책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신라는 백제 및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요. 반면에 당나라는 동서남북에 수많은 적들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므로 막상 우리 신라가 군사적으로 당나라와 대결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적의 적을 우리의 동지로 만들게 되면 별로 꿀릴 것이 없어요… “.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고서 윤책이 조금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들이 우리 신라를 치려고 나서면 우리가 먼저 변방의 여러 나라에게 밀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나라와 싸울 때에 그 기회를 틈타서 변방의 족속들이 당나라를 칠 수 있도록 만들면 됩니다. 예를 들면 서(西)돌궐이 좋은 대상이지요… “;
그제서야 두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윤책이 자신의 말을 마무리한다; “따라서 우리는 당나라 원정군 사령관에게 수장의 자리를 양보하거나 그의 명령을 받아서 움직일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백제의 사비성을 점령하더라도 지방의 귀족들이 군벌로 살아남을 것이니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당나라가 우리 신라군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면 안되니까요!... 그러니 세게 나가세요. 필요하다면 나중에 한판 붙어서 실력대결을 벌이셔도 됩니다. 어차피 백제의 땅을 누가 먹느냐?를 가지고 당나라와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니까요… “;
재사 윤책의 분명한 설명에 김춘추와 김유신이 깊이 공감한다. 따라서 그들은 이번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점령하고 의자왕을 사로잡는 작전을 속전속결로 진행하고자 합의한다.
그리고 당나라 원정군 사령관이 백제를 독식하고자 나오지 못하도록 백제의 지방세력과 협력하여 대항하는 한편 멀리 서돌궐에 당나라 군대가 동방정벌에 나섰기에 북방과 서방을 지키는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첩보를 은밀하게 전해주기로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백제의 의자왕은 서기 660년 8월초에 신라군이 침현에 다다르고 또한 나당 연합군이 함선을 타고서 백강하구 기벌포로 들어서자 크게 당황해 한다. 애초 나당연합군을 모두 들판에서 맞아 기병전으로 해치우고자 계획했던 의자왕이다. 하지만 그것은 백제의 수도와 지방의 군대 30만명이 동원되었을 때에 가능한 전략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막상 적의 침입을 목전에 두고서 군대를 점검하였더니 수도를 지키는 군사가 10만명이 아니라 5만 5천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방에서 왕자와 귀족들의 전혀 자신들의 군대를 지휘하여 중앙으로 달려오지 아니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 의자왕은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게다가 북쪽 고구려와 동쪽 왜국에 급히 특사를 보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 결과 의자왕은 오로지 5만 5천명의 친위군만으로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김유신의 군대 5만명 그리고 서쪽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나당연합군 18만명을 막아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상좌평 천복과 좌평 의직이 급하게 진언한다; “폐하,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침현을 넘어오고 있는 김유신의 군대를 황산벌에서 기병으로 격파해야 합니다. 달솔 계백을 사령관으로 삼아 기병 1만명을 주어 적들을 막게 하시고, 분조를 시행하여 둘째 왕자 태로 하여금 사비성을 지키게 하는 동시에 폐하께서는 200리 동쪽에 있는 웅진성으로 급히 피신하여 지방에서 오는 구원병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살아 계셔야 고구려와 왜국의 원군도 백제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의자왕이 다음과 같이 결단한다; “달솔 계백에게 5천명의 결사대를 기병으로 주어 황산벌에서 김유신의 신라군을 막도록 한다. 그 군대에 짐을 대신하여 좌평 충상과 달솔 상영이 합류하도록 하라. 그리고 좌평 의직에게는 2만명의 군사를 줄 것이니 백강에서 상륙하는 나당연합군을 막도록 하라… “;
의자왕의 마지막 왕명이 다음과 같다; “둘째 왕자 부여태에게 사비성을 맡긴다. 짐은 태자 효와 함께 내륙에 있는 웅진성으로 갈 것이니 왕자 태는 짐을 대신하여 지방의 여러 왕자와 귀족들에게 빨리 군대를 끌고 오라고 다시 한번 전령을 보내도록 하라”.
그와 같은 왕명을 받은 달솔 계백은 의자왕에 대하여 섭섭하기 이를 데가 없다. 수도 사비성을 경비하고 있는 기병 1만명을 모두 자신에게 맡긴다고 해도 5만명이나 되는 김유신의 군대를 도저히 황산벌에서 막을 재간이 없다. 그런데 단 5천명의 기병으로 그들을 막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 전쟁터에서 죽으라고 하는 왕명이다;
게다가 계백을 감시하기 위하여 좌평 충상과 달솔 상영까지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하여야 하는가?... ‘, 계백은 죽기로 결심하고서 은밀하게 아우 하백을 불러서 지시한다; “아우는 자네 가족은 물론 나의 가족을 데리고 자네가 관장하고 있는 세곡선을 이용하여 은밀하게 왜국으로 피신하라. 내가 부관들에게 내밀하게 말해 놓을 것이니 그들의 가족도 전부 모아서 함께 가라. 그 목적은 우리가 황산벌에서 고혼이 되더라도 너희들은 살아남아 백제를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
계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그의 부관들이 하나같이 가족들을 수군 장수 하백에게 맡기고 전쟁터로 향하고 있다. 그들이 황산벌에서 죽더라도 가족들이 무사히 왜국에 도착하여 구원병을 이끌고 백제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하면 백제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을 것이다. 오로지 그 소망을 가슴에 품은 채 그들은 전장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와 같은 내막을 부하병사들이 알아서는 안된다. 따라서 그들은 한가지 소문을 만들어서 은밀하게 퍼뜨리고 있다; “달솔 계백 사령관께서는 전장으로 나서기 전에 처자식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고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목숨을 바쳐서 우리 백제를 끝까지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
계백의 기병 5천은 말 그대로 결사대이다. 그들은 신라의 원정군보다 먼저 황산벌에 도착하여 높은 지역 3군데에 진지를 구축한다. 그리고 군대를 3개로 나누어 좌평 충상과 달솔 상영 그리고 계백이 각각 맡아서 신라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고 진지로 후퇴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일종의 게릴라전을 겸하고 있는 기병대의 운용인 것이다;
그와 같은 전략으로 10배나 되는 적을 맞아서 절대로 물러서지를 않는다. 그 기습전에 휘말려서 김유신의 군사들이 3차례나 밀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부관 품일과 흠춘이 자신들의 아들이며 젊은 화랑인 관창과 반굴에게 명령한다; “너희 둘은 선봉장이 되어 무조건 적의 진지로 말을 달려가서 결사적으로 싸우도록 하라”;
백제군은 관창과 반굴을 사로잡아 신라의 진영으로 돌려주면서 한번 더 공격을 시도한다. 그 공격을 맞이하여 다시 신라군이 밀리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김유신이 관창과 반굴에게 살아서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 말 그대로 관창과 반굴이 적진에 뛰어들어 용감하게 싸우다가 결국 전사하고 만다.
그 광경을 보고서 장군 품일과 흠춘이 앞장서서 적진으로 달려간다. 김유신이 전군에게 명령한다; “화랑 관창과 반굴의 임전무퇴의 정신을 본받으라. 이번 공격으로 계백의 결사대를 박살내고 사비성을 접수하자. 그것이 삼한일통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계백은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한다. 그 반면에 좌평 충상과 달솔 상영은 항복하고 만다. 그 휘하의 군사 20여명만이 살아남아 신라의 포로가 된 것이다. 김유신 사령관은 황산벌 전투를 마감한 후 신라군을 이끌고 급히 사비성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김유신이 도착하기 전에 벌써 나당연합군은 백강 유역의 들판에서 백제의 좌평 의직이 지휘하고 있는 결사대 2만명을 물리치고 이제는 사비성을 공격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김유신은 웅진성에 피신하고 있는 의자왕과 태자 부여효를 사로잡고자 그곳으로 향한다. 웅진성에서는 백제의 맹장 흑치상지가 백제군을 지휘하여 철저하게 성을 수비하고 있어 공략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당시 웅진성의 성주는 예식진이다. 과연 공성작전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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