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4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 9. 15:51

천년의 바람소리49(손진길 소설)

 

압량주의 군주인 재사 윤책이 서라벌 궁궐에서 열린 어전회의에 다녀온 것이 서기 6564월이다. 그는 이제 신라의 국왕인 김춘추의 명령으로 백제의 조정에서 좌평 흥수를 제거하는 책략을 마련하여 시행해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 깊이 생각을 해보아도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신라의 압량주에서는 신속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  자연히 그에 대한 기민한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으니 답답한 실정이다;

윤책이 신라의 압량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64살이나 된 재사 윤책이 큰 결단을 내리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비밀리에 사비성으로 잠입하여 현지에서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그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여기 압량주에 머물러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좋다, 내가 백제를 다녀올 것이다”;

 

윤책은 비상수단으로 국왕에게 거짓상소를 올린다; “노신은 요즈음 몸이 좋지 아니하여 아무래도 3달간 시골에서 정양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런데 소신이 맡고 있는 압량주의 위치가 전방으로서 매우 중요하기에 가능하다면 김흠순 유수를 임시군주로 삼아 파견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흠순 유수가 압량주로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사돈이며 같은 오인회 구성원인 군주 윤책에게 문병하는 것이다. 그 소식을 미리 전해들은 윤책이 자신의 편부터 속이고자 결심한다. 따라서 김흠순 유수가 병석에 누워있는 윤책에게 병문안을 하고서 돌아가게 된다. 그때부터 59세의 김흠순은 윤책 군주를 대신하여 임시군주의 일을 보게 된다.

일단 압량주의 일을 사돈에게 맡기게 되자 윤책이 변복하고서 홀로 백제의 사비성을 향하여 잠행을 시도한다. 윤책은 8살때부터 원광법사로부터 단전호흡과 내공을 배운 무공의 고수이다;

 

 게다가 아내 가소부인으로부터 신라의 제1대 및 제2대 풍월주가 사용하던 내공술을 배웠다.

머리가 비상한 윤책이 원광법사로부터 배운 것과 가소로부터 배운 것 두가지 심법을 개량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30년 이상 수련하였기에 그의 무공은 당대에 당할 자가 없는 수준이다. 그러한 자신의 진면목을 항상 숨기면서 공무를 수행하고 있는 윤책 군주이므로 사람들은 그를 그저 뛰어난 재사로만 알고 있다.

윤책이 신라의 국경을 통과할 때와 백제의 접경으로 접어들 때에 마치 한 마리의 비조처럼 움직이고 있기에 양국의 병사들이 그의 존재를 파악할 수가 없다. 더구나 윤책은 백제 안에서는 늙은 봇짐장사로 위장하여 사비성까지 걸어서 먼 길을 가고 있다;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사비성의 유명한 요정 월궁에 들어서자 기생들이 방물장수가 온 줄 알고 있다. 이왕 그곳에 들린 김에 변장한 윤책이 등에 지고 온 방물을 기생들에게 팔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행수 월녀가 속으로 까무러치게 놀란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에게도 행수의 방에 가서 값비싼 방물을 좀 파시라고 말하면서 윤책을 은근히 내실로 데리고 간다. 주위를 완전히 물린 다음에야 월녀가 윤책에게 큰 절을 올린 다음 말을 꺼낸다; “군주님, 여기 사비성까지 어쩐 일로 잠입하셨습니까? 직접 하명하셔야 하는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과연 무엇인지요? 말씀해주시면 소녀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실행할 것입니다”.

윤책이 다정한 눈빛으로 사질녀인 월녀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참으로 수고가 많구나. 그리고 월녀 네가 보내어준 첩보에 대하여 항상 감사한다. 내가 여기에 직접 온 목적은 하나이다. 그것은 의자왕과 좌평 흥수와의 관계에 대한 최신의 고급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떼어놓고 싶다... “.

월녀는 영리하다. 그 정도의 이야기만 듣고도 벌써 나름대로 짐작한다. 따라서 즉시 대답한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벌써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오고 있습니다. 먼저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얼마전에 부여성충이 감옥에서 한달 가까이 단식투쟁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눈을 감으면서 탄식하듯이 말한다; “, 만고의 충신이 세상을 떠났구나. 내가 신라의 재사라면 그는 백제의 재사인데아까운지고우리가 적이 아니고 동지로 만났더라면 함께 당나라까지 도모할 수가 있었을 터인데… “.

그 말을 들으면서 월녀가 이어서 말한다; “성충이 죽기 전에 의자왕에게 올린 글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읽고서 의자왕은 퇴짜를 놓았지만 새로운 좌평인 흥수가 성충의 유언을 따르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내용을 수집하였습니다. 그것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월녀가 외우다시피 말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말씀 아뢰고 죽겠습니다. 신이 항상 형세의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반드시 전쟁은 일어날 것입니다. 무릇 전쟁에서는 반드시 지형을 잘 살펴 선택해야 하는데 상류에서 적을 맞아야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 병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침현(沈峴)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의 언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야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윤책은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는 월녀가 읊어주고 있는 부여성충의 유언 가운데 침현기벌포라는 지명이 나타나자 자신도 모르게 침울해 진다. 그리고 조용하게 혼잣말을 한다; “옥천에서 한밭 사이에 있는 높은 산악지의 좁은 길 침현은 일명 숯고개 탄현이다. 그곳을 막아버리면 높은 산을 통과하는 유일한 고갯길이 사라져서 신라군이 가잠성에서 황산벌로 진입할 수가 없다. 그러면 신라군이 사비성으로 직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월녀가 바라보니 사백인 윤책이 깊은 생각에 빠지고 있다; “기벌포는 백강하구인 장항을 말하고 있다. 그곳은 하구를 섬이 막고 있어 천혜의 방어지역이다. 함선이 그곳을 통과해야 비로소 병사를 육지에 상륙시켜 사비성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그러한 천혜의 요새지를 의자왕이 무시하였다고 하니 백제의 국운이 기울고 있는 것이구나!... “;

 

드디어 윤책이 상념에서 깨어나 월녀에게 말한다; “흥수가 성충의 책략을 따르고 있다고 하면 그를 막아야 한다. 당장은 성충의 책략보다 더 그럴 듯하게 보이는 대안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다. 그 대안을 내가 차후 일러줄 것이니 대신 가운데 누구를 이용하여 선전하면 좋을지 알려다오. 그리고… “.

월녀가 알아 듣고서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이어서 말한다; “좌평 흥수를 실각시키자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백제조정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월녀 너에게 혹시 좋은 생각이 있는가?... “.

윤책은 큰 기대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월녀의 입에서 놀라운 지략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 의자왕이 적자왕자들처럼 서자왕자들에게도 좌평의 벼슬을 주고 그에 해당하는 식읍을 전부 주고자 획책하고 있어요. 그것을 흥수를 위시한 대신들과 귀족들이 반대하고 있지요. 그러니… “;

 

윤책이 경청하자 월녀가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이제부터 귀족들이 의자왕을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소문을 만들어 사비성과 여러 지방에 계속 퍼뜨리면 되지요. 그러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의자왕이 화가 나서 친위군을 동원하여 귀족들을 탄압할 수도 있을 거예요… “.

윤책이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리고 저녁에 일광스님은 물론 월광과 하신을 모두 불러 모으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그날 윤책이 지시한 내용이 월녀의 계책을 채택한 것이다. 하신은 부친과 함께 사비성 월궁에서 지낼 수가 있어서 무척 기쁜 모양이다. 그때부터 2달간 윤책이 그들과 함께 비밀공작을 하다가 다시 봇짐장사로 변장하여 신라의 압량주로 되돌아온다.

참고로, 윤책이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사비성의 대신들의 귀에 넣어준 방어전략이 다음과 같다; “당나라의 수군이 병사를 태운 전함을 서해안에 상륙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서해안에 초소를 많이 설치하여 사전에 상륙지점을 파악하고 집중 공격하는 것이 상수이다. 그리고 신라군이 침현으로 들어오기 전에 먼저 공격하고 황산벌에서 기마전을 벌이더라도 충분히 신라군을 막을 수가 있다”.

그것은 매복전보다는 백병전을 선호하고 있는 의자왕의 입맛에 맞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의자왕은 귀가 솔깃하여 그만 끝까지 요충지에서의 방어전략을 말하고 있는 성충과 흥수의 훌륭한 책략을 물리치고 마는 것이다;

다음해 서기 657년이 되자 윤책 일행의 비밀공작의 효과가 극대화되어 백제의 사비성에서 나타나고 있다. 의자왕이 귀족들인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자들을 전부 좌평에 임명하고 엄청난 식읍을 하사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에 반대하는 대신들을 좌평 성충의 전례에 따라 감옥으로 보내고 만다;

 

 이제 백제에서는 흥수를 제외하면 대신 가운데 충신이 사라질 지경이다.

  압량주의 군주인 윤책은 서라벌을 방문하여 자신이 백제의 사비성을 다녀온 일과 그 공작의 내용을 국왕 김춘추에게 은밀하게 보고한다. 그리고나서 다음의 사항을 건의한다; “폐하, 만에 하나 성충과 흥수의 계책을 의자왕이 채택하게 되면 그때에는 백제 사비성으로 진입하는 첩경이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군사적으로 그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합니다… “.

국왕 김춘추가 귀를 기울인다. 윤책이 천천히 이어서 말한다; “김유신 공과 상의하여 침현에 이르는 길을 미리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침현에 바짝 접근하게 되면 백제군은 침현을 버리고 황산벌 쪽으로 물러나 진지를 구축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벌포 하구를 막고 있는 섬에 세작을 많이 보내어 어장을 개발해야 합니다. 어민들이 많으면 백제의 조정에서 하구를 버리고 금강의 중류 쪽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겠지요. 폐하, 그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국왕 김춘추가 여러 번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윤책공의 말에 일리가 있어요. 그렇게 일단 시행하면서 결과를 지켜보도록 합시다. 지금 백제는 수가 많아진 왕자들과 기득권층인 귀족들 사이에 식읍 쟁탈전으로 인한 내분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 신라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수고했어요. 윤책공… “;

 

군신 간에 희망을 가지고 사태의 발전을 지켜 보기로 한다. 과연 백제에서는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