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4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 7. 00:58

천년의 바람소리46(손진길 소설)

 

압량군주인 윤책이 사제 일광스님 일행을 새해가 되고 보름이 될 때까지 오래 머물러 쉬도록 붙잡는다;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 결과 윤책이 일광스님에게 정식으로 부탁한다; “여보게 사제, 제자들과 함께 백제로 들어가서 사비성의 소식을 자세하게 파악하여 내게 전해주게나. 이것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니 비밀을 지키면서 수행해주면 좋겠는데… “.

그러한 밀명을 받은 일광스님이 제자 월광과 월녀와 더불어 떠나간다. 그들은 어떠한 소식을 가지고 오게 되는 것일까?... 한편 윤책의 차남인 하신은 부친을 모시는 군관이 되어 군주의 집무실 옆방 참모실에게 일하고 있다. 가끔 윤책이 그 방에 들러 아들 하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다가 서기 652년 여름이 되자 하신을 자신의 집무실에 불러 백제를 다녀온 일광스님과 인사를 시킨다. 그리고 윤책이 하신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하신이 네가 나를 대신하여 일광스님과 함께 백제를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다... “;

 

달콤하게 신혼생활을 압량주에서 8개월간 지내고 있던 윤하신으로서는 부친 윤책의 말씀이 뜻밖이다. 이제 28살이 된 그에게 윤책 군주가 지엄한 비밀지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백제의 내정에 관하여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가 있다는 말씀인 것인가?... ‘라고 회의적인 눈으로 부친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윤책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하신아,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일광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자 분인 월광과 월녀가 사비성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하신이 네가 신분을 위장하고 그들과 함께 사비성에서 활동을 한동안 하면 된다. 그 공작의 내용은… “.

윤책이 잠시 말을 멈추고 사제인 일광스님을 바라본다. 그러자 일광스님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천천히 말한다; “사형, 구체적인 내용은 소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보게 하신이 조카, 지금 월광과 월녀가 윤책 군주님의 금품지원을 받아 사비성에서 고급 요정을 내고 있어. 그런데 고객들 대부분 백제의 중앙 귀족들이지... “;

잠시 숨을 쉬고서 일광스님이 진지하게 말한다; “그들에게서 월녀가 빼낸 정보를 하신이 자네가 분석하여 중요한 것을 압량주로 가지고 와서 군주님께 보고를 드리면 되는 것이야. 왜냐하면, 나 혼자서 국경을 자주 넘나 들기가 힘이 들어서 그래... 너무 자주 월경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수상하게 여기게 되거든… “.

그 말을 듣자 하신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러면 제가 일광 숙부님의 위험을  반분하는 셈이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한번 구경하고 싶었는데 잘 되었습니다. 병서에 이르기를,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다라고 했으니 직접 잠입하여 적정을 정확하게 살피게 되면 승리는 우리 신라의 것이 되겠군요… “;

일광스님이 다정한 눈빛으로 윤하신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 ‘호부에 견자가 없다라고 하더니 이제 보니 하신이가 사형을 빼다 박은 것 같군요사비성에 데리고 가서 간자로 잘 키우게 되면 더 큰 공작도 하겠는데요. 허허허… “;

 

일광의 기분 좋은 너털웃음이 끝나자 윤책이 말한다; “사제, 그러면 3일후 하신이를 데리고 함께 떠나게. 하신이가 초행길이니 국경을 넘을 때 특히 조심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오늘 저녁에 내 집무실에서 따로 나를 잠시 만나도록 하세. 내가 두 사람의 안전을 위하여 무공의 수준을 한번 점검해볼 테니까… “.  

그 말의 뜻을 하신은 잘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지만 일광스님은 갑자기 합장을 하면서 말한다; “사형, 고맙습니다. 또 절기를 전수해주실 모양이군요. 그러면 저녁에 은밀하게 다시 뵙겠습니다”.

일광스님의 말이 맞다. 저녁에 모두 퇴근한 후에 하신이 일광스님과 함께 군주의 집무실에 들렀더니, 무복으로 갈아입은 윤책이 벌써 깊은 내공을 수련 중에 있다. 두 사람이 윤책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전신에서 은은한 빛이 스며 나와 조용히 회전하고 있다. 저것이 과연 무엇인가?... ;

 

갑자기 눈을 뜬 윤책이 두 사람에게 말한다; “저기 벽에 걸려 있는 무복들로 갈아 입고 나처럼 한번 내력을 움직여들 보게. 내가 그 경지를 살피고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겠네… “.

하신은 처음이지만 일광스님을 익숙한 모양이다. 두 사람이 조금 전에 윤책 군주에게서 본 모습 그대로 자신들도 호흡을 단전에 모은 다음 전신 경맥으로 내기를 운신하여 본다. 그렇지만 일식경이나 운행을 하였지만 빛의 기운이 스며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을 유심히 윤책이 관찰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뜨자 윤책이 먼저 사제인 일광스님에게 말한다; “사제의 내공수련은 본래 스승님이신 원광법사님의 지도를 받은 것이지. 그것은 자신의 몸을 튼튼하게 만들 뿐 살생을 하지 못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그래서 내가 경로를 약간 변경하여 내력을 바깥으로 흘려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아직은 일천하여 더 수련이 필요해. 그렇지만 내기의 흐름이 정확하니 그 결실을 볼 수가 있겠구만. 그리고… “.

윤책이 이제는 차남인 하신에게 말한다; “하신이 네가 어릴 때부터 모친에게서 배운 내공은 본래 원광법사님의 것과 조상인 풍월주 두 분의 것을 합하여 나와 집사람이 하나로 만든 것이야. 그것은 수련을 계속하게 되면 무기에 내력을 불어넣어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게 되지. 하지만 아직은 내공수련이 더 필요해. 그리고 내가 보기에 정확한 경로를 밟고 있어 더해줄 말이 없군. 그러니 꾸준히 수련하면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야… “.

윤하신이 부친 윤책 군주로부터 무공에 대한 그러한 자세한 언급을 받는 것이 처음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모친인 가소부인으로부터 무공지도를 받아 수련을 계속하여 왔다. 그런데 그것이 본래 부모님이 선대의 고수들의 것을 융합하여 새로이 만들어낸 최상의 내공법이라고 지금 부친이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 일광스님이 합장하면서 사형인 윤책 군주에게 말한다; “사형, 고맙습니다. 제가 스승이신 원광법사님께 배운 내공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지난 8개월간 상승무공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군요. 불제자인 제가 살생이야 피하겠지만 그래도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제 몸 하나 지킬 수는 있겠습니다. 이거 비밀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인데요. 허허허… “.

윤책은 3일 후 필요한 자금을 두 사람에게 주고서 사비성으로 떠나 보낸다. 신라가 삼한일통을 이루는데 필요하여 그렇게 조치한 것이지만 막상 사랑하는 사제와 자식을 적진으로 함께 보내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적을 알아야 최소의 희생으로 백제와 신라를 하나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한편, 사비성의 백제는 그 분위기가 심상하지가 않다. 백제의 군사력을 막강하게 만든 제30대 무왕이 무려 42년간 오래 통치하고 난 후 나이 40이 넘은 태자 부여의자가 그 뒤를 이어받아 의자왕이 되어 초창기에는 백제의 영광을 신라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즉위한 이듬해인 서기 642년에 신라의 수도로 오는 관문인 대야성을 쳐서 정복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의자왕이 비옥한 호남평야의 소출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더 강력한 백제군을 양성했다고 한다면 신라가 아무리 뛰어난 화랑출신의 장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백제에 의하여 벌써 정복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자왕이 작은 성공에 만족하고 삼한일통의 더 큰 꿈을 꾸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백제를 통치하면서 선대 무왕이 보여준 백제의 영광을 자신이 이미 재현하였기에 그것에 만족하면서 이제는 현상유지 정책만 펴고 있다는 것이 의자왕의 문제가 되고 있다. 벌써 의자왕의 나이가 50대 중반이다. 자식복이 많아서 왕자만 해도 40명이 넘고 있다;

의자왕은 왕자가 성가하고 약관의 나이가 되면 그 능력에 따라 조정대신으로 일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것이 처음에 한자리 수였을 때에는 대신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두 자리 수가 되고 상층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나자 귀족들의 반응이 결코 우호적이 아니다.

본래 고대왕국에서 나라의 주권이 온전히 국왕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논리이다. 왜냐하면, 국왕의 정책결정이 내부적으로 귀족출신인 대신들과의 합의를 거쳐서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자왕의 백제는 지금 그것이 아니다. 귀족 출신의 대신들이 아니라 왕자출신의 대신들과의 합의를 거쳐서 의자왕이 독단적으로 정책결정을 하고 말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옥한 호남평야에서 생산되고 있는 풍족한 농산물을 소비하는 주체가 의자왕과 그의 소생들이다;

 

 중앙의 높은 자리 뿐만 아니라 지방의 주요 권력까지 40명이 넘는 왕자들이 장악하고서 대권다툼을 벌써 벌이고 있으니 더 많은 재화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와 같은 현실을 예리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의자왕은 자식들이 백제를 완전 장악하고 있으니 자신의 황권이 가장 안전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 점을 두차례나 왕자가 없는 여왕들이 통치하고 있는 신라의 군주(軍主)인 윤책이 서로 비교하여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 그 점이 의자왕 당시 화려한 백제의 가장 큰 약점이다.   

신라 압량주의 영특한 군주 재사 윤책이 사제인 일광스님과 차남인 윤하신을 백제의 사비성으로 떠나 보내면서 지시한다; “나는 다음의 정보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백제의 유능한 책사인 성충과 흥수를 의자왕의 눈 밖에 나도록 만들 수가 있는가? 그리고 의자왕의 소생들에게 식읍을 빼앗긴 백제의 귀족들 가운데 누구를 포섭하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여 내게 알려다오. 부탁한다… “;

 

그렇게 주문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는 윤책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서기 652년말에 차남 윤하신이 신라로 돌아와서 전해주고 있는 소식은 그야말로 대어를 낚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내용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