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43(손진길 소설)
선덕여왕이 통치 16년인 서기 647년 1월 8일에 서거하자 김춘추, 김유신, 알천 등의 대신이 여왕의 사촌인 승만공주를 새로운 신라의 여왕으로 즉위하게 한다. 훗날 진덕여왕으로 불리게 되는 새로운 여왕은 무엇보다도 명활산성에서 저항하고 있는 비담과 염종의 반역세력을 조속히 토벌하라고 지시한다.
그 명령을 받은 김유신과 알천이 대군을 몰고가서 명활산성을 1월 17일에 점령하고 반란의 주도세력 30명을 체포하여 진덕여왕 앞으로 끌고 온다. 그 처분을 묻자 여왕이 단호하게 지시한다; “모두 참하세요. 다시는 여왕이 신라를 다스리면 약한 나라가 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이세요. 나는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강한 신라를 만들 생각입니다”;
진덕여왕은 말로만 단호한 것이 아니다. 그 일처리가 확실하다. 곧바로 진골의 원로인 알천을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조정과 화백회의의 일을 전담하도록 위임한다. 따라서 진덕여왕을 추대하고 즉위하는데 공이 큰 김춘추와 김유신도 일체의 국사를 알천 상대등과 일일이 협의하여 처리하게 된다;
그렇게 조정의 일이 돌아가자 김춘추와 김유신은 북방의 칠중성을 오래 지키고 있는 유수 윤책을 서라벌로 불러들인다. 그 이유는 진덕여왕과 상대등 알천의 생각을 먼저 읽고 국사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자면 재사 윤책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차제에 윤책을 일계급 특진하여 제5관등 대아찬 군주로 삼으려고 건의한다. 그러나 조정에서 대신들의 반대가 심하다; “제5관등은 진골이 아니면 얻을 수가 없는 벼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잘해야 6두품에 불과한 유수 윤책이 군주의 벼슬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신라의 근간인 골품제를 완전히 깨고자 하는 것이니 소신들은 절대 반대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윤책이 조정에 사의를 표하고 본래의 고향인 기계마을에 들어가서 은거생활을 하고 만다. 그러자 김춘추와 김유신 그리고 때로는 멀리 나가 있는 최추랑과 김흠순까지 시간만 나면 윤책의 시골집을 찾아온다.
그들은 문안 차 오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골치 아픈 국사를 처리하기 위한 지혜를 빌리고자 천하의 재사인 윤책의 집을 찾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에서는 윤책을 일컬어 ‘백의정승’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장 먼저 윤책의 집을 찾아온 김춘추와 김유신의 질문이 다음과 같다; “진덕여왕은 국사를 처음으로 처리하는 신출내기입니다. 그런데 일처리가 꼼꼼하기로 소문난 진골 알천공을 상대등으로 임명하고 그 등뒤에 숨어버리고 있어요. 그러니 알천공이 전면에 나서 있는 이상 우리 두 사람이 국사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가 없어요. 언제까지 그러한 대리청정이 있게 될까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빙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신라 조정의 그러한 권력구조는 외부적인 압력을 받게 되면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라에서 두번째로 여왕이 즉위하였으니 백제나 고구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군대를 동원하여 한번씩 찔러보겠지요. 그러면 알천공과 진덕여왕은 어쩔 수 없이 춘추공과 유신공의 협조를 구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
김유신과 김춘추가 열심히 재사 윤책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자 윤책이 천천히 이어서 말한다; “춘추공으로 하여금 당 태종을 만나서 동맹의 결의를 더욱 다지도록 요청하겠지요. 그리고 유신공에게는 만만한 백제부터 치도록 요청할 것입니다. 두가지 모두 신라의 안보를 위하여 필요한 일이니 그때 두 분은 적극적으로 협조하셔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일이 그렇게 돌아갈 것인가?... “, 반신반의하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두 사람이 서라벌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해 음력 10월에 백제군이 신라의 국경을 침범한다. 조정에서는 즉시 압량군주인 김유신에게 백제군을 물리치라고 지시하고 있다;
게다가 이듬해 곧 서기 648년에는 고구려군이 신라를 침범하고 있다. 일단 결사적으로 막고는 있지만 한꺼번에 백제군과 고구려군을 모두 막아 내기가 벅차다. 따라서 진덕여왕은 김춘추로 하여금 장안으로 빨리 들어가서 당 태종의 협력을 구하라고 명령한다.
이세민을 어떻게 설득하는 것이 좋을지 김춘추가 서라벌 북쪽에 살고 있는 재사 윤책을 찾아와서 숙의한다. 그때 윤책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춘추공은 당에 대한 외교에 있어서 누구보다 뛰어납니다. 그러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다만 한가지를 기억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큰 것을 달라고 하시고 상대가 난색을 보이면 그때에는 현실적인 것을 요청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
김춘추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자 윤책이 말한다; “먼저 당나라의 군사를 아예 빌려 달라고 요청하세요. 그 다음에 그것이 어렵다면 군사동맹을 체결하자고 제안하세요.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첫째,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공격할 때에는 당나라의 군대가 배후에서 적을 치는 것입니다. 일종의 상호방위조약이지요. 그리고… “.
윤책이 잠시 숨을 쉬고서 천천히 말한다; “둘째, 훗날 적을 발본색원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면 그때에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 두가지를 반드시 명시해야 합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춘추가 탄성을 지르면서 말한다; “윤공, 어쩌면 그렇게 공의 생각과 내 생각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아요. 그렇게만 된다면 백제나 고구려와 한번 싸워볼 만 합니다. 좋아요. 제가 당나라 장안에 들어가서 그렇게 외교활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그 결과 진덕여왕 즉위 2년인 서기 648년에 김춘추와 이세민 사이에 군사동맹이 체결된다. 그것이 작동되는 것을 보고서 진덕여왕이 이제는 친정을 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서 상대등 알천에게 위임했던 권한을 회수하고 진덕여왕이 직접 정사를 돌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알천공은 계속 상대등의 벼슬을 지니고 있다.
진덕여왕이 당나라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어떠한 제도개혁이 필요한지 김춘추에게 묻는다. 그러자 김춘추는 개인적으로 종이모가 되는 진덕여왕에게 다음과 같이 진언한다; “그것은 별로 어렵지가 않습니다. 우선 관복을 당나라 복색으로 바꾸고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
진덕여왕이 진지하게 경청한다. 그러자 김춘추가 이어서 설명한다; “그 다음에는 당나라의 정치제도를 도입하여 국왕 아래에 집사부를 두고 그 수장을 중시로 부르면 됩니다. 그리고 별도로 국왕을 지키는 시위부를 두고 그 기능을 강화하면 되지요. 그런데 그것들을 순차적으로 시행하셔야 합니다”.
진덕여왕이 그 시행순서에 대하여 묻는다. 김춘추가 자신의 생각을 진언한다; “당장 내년 649년부터 관복을 당나라의 것으로 바꾸고, 그 다음해 650년에는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면 됩니다. 그것들은 쉬운 일들이지요. 그런데… “.
김춘추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어서 말한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제도개혁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651년부터 집사부와 시위부를 설치하여 운영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시위부의 수장에 김유신 군주를 임명하시면 폐하의 안위를 확실하게 지켜낼 것입니다… “;
진덕여왕은 당나라 사정과 문물에 밝은 김춘추의 진언이므로 그대로 훗날 단계적으로 실시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김춘추로 하여금 당의 황제에게 알려주도록 조치한다. 진덕여왕은 여인이라서 그런지 그 정도로 섬세하고 또한 일처리가 야무지다. 따라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여왕을 잘 세웠다고 윤책에게 말하곤 한다.
윤책은 진덕여왕이 650년 6월에 김춘추의 장남인 김법민을 사신으로 삼아 당나라 장안으로 보내면서 직접 지은 ‘태평송’을 새로 즉위한 당 고종에게 바친 사실을 회상하면서 빙그레 혼자서 웃고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이 649년에 죽자 그의 태자가 고종으로 즉위하였는데 그에게 보낸 진덕여왕의 시인 것이다;
참고로, 당나라의 왕업과 황제의 은덕을 칭송하고 있는 신라 진덕여왕의 태평송의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당나라 왕업(王業)을 여니, 높고도 높은 황제의 길 창창히 빛나네.
전쟁을 그쳐 천하를 평정하고, 문물을 닦아 백대를 이어 가리.
하늘을 본받음에 은혜가 비 오듯 하고, 만물을 다스림에 도리와 한 몸 되네.
지극히도 어질어 해와 달과 짝하고, 운까지 때맞추니 언제나 태평하네.
크고 작은 깃발들은 저다지도 번쩍이며, 징 소리 북소리는 어찌 그리 우렁찬가.
외방 오랑캐 명을 거역하는 자는, 칼날에 엎어지는 천벌을 받으리라.
순박한 풍속이 곳곳에 퍼지니, 먼 곳 가까운 곳 상서(祥瑞)로움 다투네.
사계절이 옥촉(玉燭)처럼 조화롭고, 해와 달과 별들이 만방에 두루 도네.
산악의 정기 받아 어진 재상 내리시며, 황제는 충후한 인재를 등용하도다.
삼황과 오제의 덕망이 하나되어, 우리 당나라를 밝게 비추리라”.
그런데 서기 651년에 김유신이 시위부의 장으로 오게 되자 진덕여왕이 그 후임자 문제를 김춘추와 상의한다. 그러자 김춘추가 강력하게 제사 윤책을 천거한다; “윤책은 전방의 성주로 일하면서 한번도 적군에게 패한 적이 없는 명장입니다. 그는 문무에 두루 뛰어난 인물이므로 사실 군주로는 적격이지요. 그러니 차제에 압량주의 군주로 발령을 내시면 됩니다. 그는 진골의 대접을 받아도 좋을 정도로 많은 전공을 세운 명장입니다”.
진덕여왕은 윤책이 북방의 칠중성주로 오래 근무하다가 낙향을 한지 4년이 지났으므로 이제는 대신들의 반대가 잠잠할 것으로 생각하여 윤책을 압량주의 군주로 발령한다. 이미 김춘추와 김유신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두 사람이 강력하게 윤책의 중용을 지지하자 더 이상 대신들의 반대가 없다.
이제 59세의 윤책이 압량주의 군주로서 일하게 된다. 그곳은 백제군의 침입을 막는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벌써 대야성을 비롯한 7성을 도로 백제군에게 빼앗긴 상태이다. 그러므로 윤책 군주는 압량주에 소속되어 있는 여러 성들의 외성을 튼튼하게 보수하는 한편 군사들의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 참고로 그 옛날 압독국의 위치가 바로 신라의 압량주이다;
차제에 자신이 알고 있는 무예의 상당부분을 수하들에게 전수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윤책 군주가 백제 깊숙한 곳으로 간자를 들여보내고 전방에는 척후병을 수시로 파견하고 있다. 과연 백제의 의자왕은 국사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최전방의 사정은 어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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