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44(손진길 소설)
11. 의자왕의 백제와 신라의 재사 윤책
고향인 서라벌 북쪽 기계의 저택에서 은거생활을 하고 있던 이른바 백의정승 윤책이 군주(軍主)의 벼슬을 받아 압량주의 군주로 부임한 때가 진덕여왕 5년인 서기 651년 2월초이다. 그때 윤책의 나이가 59세이다. 아내인 가소는 연상이어서 벌써 65세이다;
가소는 모친인 미도 옹주가 83세의 노인인지라 쌍둥이 두 아들 윤상신과 윤하신을 데리고 서라벌 남쪽 교리의 친정 대저택에서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공을 어릴 때부터 두 아들에게 전수하여 주었기에 상신과 하신이 20대초부터 무관이 되어 군부에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
벌써 길사의 벼슬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친 윤책을 닮아서 그런지 27살이나 된 두 아들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전장을 떠도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있다;
모친 가소부인이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할머니 미도 옹주도 그 점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손주들이 성가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미도 옹주가 9월달에 하루는 전 남편인 김용수 공을 찾아가서 상의한다. 그 말을 들은 용수공이 대뜸 파발을 압량주로 보내어 사위인 윤책 군주를 모시고 오라고 한다. 그날 저녁에 ‘무슨 일이신가?... ‘ 걱정이 되어 윤책이 참모에게 직무를 위임해 놓고 서라벌의 원로 김용수 공의 집을 방문한다.
그 자리에 장모 미도 옹주가 함께 있다. 사위의 문안인사를 받자마자 용수공이 윤책에게 말한다; “옛 성현들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말했는데 사위 그대는 어떻게 집안일에 소홀한가?...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미도 옹주가 빙긋 웃고 있다. 그리고 용수공의 말이 이어진다; “다름이 아니라 나의 외손자이자 자네의 아들인 상신과 하신이 벌써 27살이야. 그러니 성가를 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언제까지 전방에서 뛰어다니는 무관으로 살게 할 것인가?... 그리고 상신에게 물어보니 자네의 부모님께서 작년에 모두 별세하셨다고 하는데 어째서 내게는 기별도 하지 아니했는가?... “.
그 말을 듣고서야 윤책이 전후사정을 알 것만 같아서 순순히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국사에 매달려 계시기에 제가 일부러 소식을 전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금년 초에는 제가 압량주로 가서 군비를 보강하느라고 문후를 여쭙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런데 좋은 혼처라도 있습니까?... “.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용수공이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내 정식부인인 천명공주의 눈치가 보여서 집안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겠지… 그러니 내가 양해를 하지. 그렇지만 이제는 천명공주와 선덕여왕이 모두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자주 들리도록 하게나. 나도 조정에서 물러나 있어 요즘은 적적하이. 그리고 혼사문제는… “.
이제 본론이 시작되고 있다. 윤책이 경청을 하자 용수공이 천천히 말한다; “상대등 벼슬을 오래하고 있는 알천공이 사실은 내 벗이야. 그가 요즘은 화백회의의 수장일만 하고 있어 별로 바쁜 일이 없지. 그래서 자주 만나곤 하네. 그런데 그 집에 손녀 가운데 참한 규수감이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외손자인 상신이와 짝을 맺어주고 싶어… “;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미도 옹주가 한가지 사실을 덧붙이고 있다; “여보게 사위, 사실은 둘째인 하신이는 벌써 사귀는 처자가 있어. 고허성주인 김흠순 유수의 막내딸이야. 나하고 가소가 한번 선을 보았는데 참하고 야무지게 생겼더군. 그만한 가문의 처녀이면 나와 가소는 만족하네… 사위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
윤책이 신중하게 대답한다; “저는 아들 하신이의 생각이 우선입니다. 당사자가 좋아서 사귀고 있고 모친과 할머니가 모두 찬성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탤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도 좋습니다. 그리고… “.
한번 가볍게 숨을 쉬고서 윤책이 이어서 말한다; “장인어른과 알천공이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역시 혼사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상신이와 그 처녀를 한번 선을 보게 하여 주시지요. 두 사람이 이의가 없으면 저도 찬성입니다. 장모님, 그렇게 아시고 일을 진행시켜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그 말을 듣자 미도 옹주가 말한다; “그것은 아무 염려 말게. 내가 가소와 상의하여 여물게 일을 처리하겠네. 그런데 두 손자가 한꺼번에 결혼을 하게 되면 나와 가소가 맏손자인 상신이를 집에 불러들이고 서라벌 군부에서 근무하도록 만들고자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
윤책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한다; “상신이가 동의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어차피 고향 기계의 저택에는 이제 어른들이 계시지 아니하니까요… 그리고 하신이는 지금 이모부 최추랑의 부관으로 멀리서 근무하고 있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제가 압량주로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일어서겠습니다… “.
그 말을 들은 용수공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여보게 사위, 이 장인이 섭섭하게 어떻게 벌써 일어서려고 하는가? 내 집에서 오래간만에 모두들 저녁식사를 함께 하지. 조금 있으면 춘추도 퇴근하여 집으로 올 것이야… “.
장인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윤책이 그 날은 장인어른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밤새 김춘추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날 김춘추가 매형인 윤책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형, 당 태종 이세민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부상을 크게 입어서 그 후유증으로 재작년에 별세하였기에 그 후계자인 당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치는 문제에 있어서는 소극적입니다... “;
그 말에 윤책이 말한다; “그렇지만 당나라와 우리 신라와는 벌써 군사동맹을 맺지 않았습니까?... “. 김춘추가 대답한다; “그렇지요. 하지만 당 고종은 결정적인 시기가 아니면 결코 군사행동에 나서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신라가 그 계기를 마련해야지요. 매형, 좋은 계책이 없습니까?... “.
윤책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처남, 내가 지금 경산에서 압량군주로 일하고 있어. 그러니 백제의 국경과는 좀 가까운 편이지. 따라서 이제부터 간자와 척후를 많이 내보내어 백제조정의 일을 살피고 아울러 백제군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네. 그런데 정보가 더 많이 필요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
잠시 말을 끊고서 윤책이 김춘추의 눈을 살핀다. 그 다음에 천천히 말한다; “추랑 유수를 차제에 군주로 진급시켜 아차산성과 한강유역을 다스리게 하고 그곳에서도 백제에 간자와 척후를 파견하여 이중으로 정보를 수집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면 나와 추랑이가 힘을 합하여 백제 의자왕과 대신들 사이를 이간할 수도 있을 것이야... “.
그 말을 듣자 김춘추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역시 매형의 계책은 대단합니다. 한강에서 그리고 경산에서 이중으로 첩자를 내보내어 백제조정을 염탐하고 기회를 포착하여 윤충이나 쓸 만한 백제의 인물들을 하나씩 의자왕의 눈 밖에 나게 하여 백제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것이군요. 그렇게 백제를 무력화한 다음에 당의 군대를 끌어들이면 되겠군요. 탁견입니다. 그대로 추진하세요. 저도 조정에서 제 할 일을 하겠습니다… “.
김춘추는 그해 651년 2월에 벌써 그 벼슬이 영의정에 해당하는 제1관등 이벌찬이다. 625년에 김유신의 누이인 보희와 결혼하여 얻은 장남 법문과 차남 인문이 모두 판서에 해당하는 제4관등 파진찬이다. 두 아들의 관직은 당나라와의 외교를 위하여 얻은 임시직이므로 일종의 별정직의 개념이다;
그러나 김춘추는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영의정이 맞다. 따라서 김춘추가 윤책 군주의 전례와 같이 최추랑을 일계급 승진시키고 그를 아차성과 한강유역을 다스리는 군주로 삼자고 제안하니 다른 대신들이 찬성한다. 특히 김춘추 덕택에 금년 2월에 파진찬에서 2단계나 승진하여 좌의정에 해당하는 이찬이 되어 집사부 중시의 중책을 맡게 된 죽지가 대찬성이다.
압량주에 도착한 윤책이 10월 중순이 되자 아차성으로 전령을 보낸다. 새로이 군주가 된 최추랑에게 윤책의 둘째 아들인 윤하신을 압량주 근무로 발령을 내달라고 하는 요청이다. 최추랑이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하신을 압량주로 보내어 준다;
10월 하순에 윤책은 서라벌 교리에 살고 있는 아내 가소로부터 소식을 듣는다; “아들 상신을 상대등 알천의 손녀인 혜령과 선을 보게 하였더니 대찬성입니다. 그리고 하신이와 사귀고 있는 김흠순 성주의 막내 딸인 미선이도 금년이 가기 전에 함께 혼례를 올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다음달에는 서라벌에 오시기 바랍니다”.
가소는 모친 미도 옹주가 살아 계실 때에 손주며느리를 보여드리고자 한다. 따라서 서기 651년 12월초에 서라벌 교리에서 두명의 며느리를 한꺼번에 맞이하는 큰 행사가 있게 된다. 윤책도 이제는 2명의 며느리를 보게 되어 흐뭇하다;
특히 차남인 하신이 부부가 신혼생활을 압량주에서 하게 되니 그것이 더 좋다.
그렇게 집안일을 챙기느라 651년이 금방 흘러간다. 그 다음해가 되자 윤책은 은밀하게 백제의 조정을 뒤흔들기 위한 계책의 시행에 들어간다. 그 내용이 과연 어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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