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42(손진길 소설)
선덕여왕 통치 15년인 서기 646년 11월에 여왕이 갑자기 자신의 배우자인 김비담을 1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상대등에 임명한다. 그때부터 상대등 비담이 조정은 물론 화백회의까지 전부 장악하고 만다. 이제 신라는 선덕여왕의 나라인지 아니면 비담의 나라인지 구별하기가 힘들게 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위기를 느낀 압량주의 군주인 김유신이 은밀하게 서라벌 조정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춘추에게 연락한다; “급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조속히 압량주로 와서 나를 만나주면 고맙겠다”. 김춘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즉시 칭병하여 조정에 나가지 아니하고 비밀리에 김유신을 방문한다.
김유신이 김춘추를 만나서 다짜고짜 묻는다; “춘추공은 최근에 조정에서 여왕과 비담 사이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바가 있으시오?... “. 그 말을 듣자 김춘추가 침울하게 대답한다; “조정대신들이 하나같이 지난 11월에 갑자기 여왕이 비담을 상대등으로 임명한 그 이유를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추측만 난무하고 있지요… “.
김유신이 김춘추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묻는다;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를 바라보면서 춘추공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요?... “;
김춘추가 나지막하게 대답한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여왕이 자신의 후계자로 비담을 선택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
김춘추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서 말한다; “이것은 희망사항이지만 또 하나는, 여왕이 후계자를 결정할 때까지 과도적으로 조정을 비담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왕이 큰 병에 들었다는 징후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것이 아니니 전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지요… “;
그 말을 듣자 김유신이 말한다; “나는 비담이 삼한일통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그는 그저 잃어버린 부왕 진지왕의 왕좌를 자신이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에 빠진 인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해요. 그러니 그는 진흥왕 때와 같은 신라의 비약과 성장을 위해서는 조정을 장악하면 안되는 인물이지요… “.
말끝을 흐리고 있지만 김유신의 생각은 단호하다. 그 점을 확인하면서 김춘추가 신중하게 말한다; “사실은 나도 유신공과 동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삼한일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백제를 치고 그 다음에 고구려를 쳐서 신라와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시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
김유신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사실은 그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내가 춘추공에게 제안하고자 해요. 내가 백제군을 막기 위하여 이곳 압량주에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으니 수고스럽겠지만 춘추공이 파주의 칠중성을 방문하여 재사 윤책의 비책을 좀 듣고 와서 내게 알려주기 바래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따라서 김춘추가 조정에 휴가를 신청하고 은밀하게 북쪽으로 말을 몰아 칠중성으로 윤책 성주를 찾아온다. 김춘추를 영접하면서 윤책이 빙긋이 웃고 있다. 두 사람이 성주의 접견실에서 다과를 들고 있을 때에 김춘추가 말한다; “윤책공은 벌써 내가 왜 이곳을 방문하였는지 알고 있는 것 같군요… “.
54세의 노련한 재사 윤책이 야망이 큰 44세의 김춘추를 흐뭇하게 보면서 말한다; “춘추공의 관심은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고 동시에 삼한일통을 이루는 것이며 그 일을 국왕이 되어 자신이 수행하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대내외적으로 답답한 상황이지요.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으로 봅니다마는… “;
김춘추가 마치 존경하는 형을 대하듯이 윤책을 바라보면서 솔직하게 말한다; “제 속을 그렇게 잘 아시니 벌써 좋은 묘안이라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요? 좀 알려주세요… “.
윤책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대외적으로는 고구려가 당 태종의 대군을 물리쳤으며 대내적으로는 비담이 갑자기 상대등이 되어 국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니 실로 답답한 지경이지요. 따라서 묘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
그 말을 듣자 김춘추가 언뜻 이해가 되지 아니하여 묻는다; “완충장치라고 하면 일종의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인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윤책이 즉시 대답한다; “첫째, 시간을 벌어야 해요. 고구려와 당나라의 힘이 빠질 때를 기다려야 하지요. 둘째, 성골인 여왕을 제치고 왕좌를 차지하고자 욕심을 드러내는 자가 누구인지 파악하여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또 한사람의 공주가 필요하지요… “;
그 말을 듣자 총명한 김춘추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한다; “이제 유일한 성골 공주라고 하면 여왕의 사촌인 승만공주 뿐이지요. 그녀를 차기 여왕으로 내세우라는 말씀이군요. 지금 당나라와 고구려가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으니 두나라가 종이호랑이가 될 때를 기다리자면 또다시 여왕이 필요하군요. 그리고… “.
재기에 넘치는 김춘추가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차기 여왕에 동의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국왕이 되고자 반란을 일으키는 자를 토벌하는 명분을 차제에 마련하자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이제 여왕의 동의만 받아내면 되겠군요. 참으로 묘책입니다”.
김춘추가 순순히 자신의 비책을 수용하자 윤책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춘추공, 생각보다 공이 신라국왕이 되어 백제를 정복하고 이어서 고구려를 쳐서 삼한일통을 이루는 시간이 빨리 찾아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 서라벌 가까이 주둔하고 있는 유신공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새로운 여왕을 추대하고 조정과 군부의 실권을 차제에 장악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되면… “;
윤책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이제 겉으로는 여왕이 다스리고 내부적으로는 춘추공과 유신공이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당나라를 외교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요리하는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삼한일통의 이상이 헛된 꿈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성취가 될 것입니다. 나는 그때를 보고 싶어요… “.
김춘추가 다시 압량주로 가서 김유신을 만난다. 은밀하게 윤책의 비책을 말하자 김유신이 자신의 무릎을 치면서 말한다; “그렇지, 그 방법이 있었구만. 역시 재사 윤책은 비범한 친구입니다. 그가 우리 오인회의 구성원인 것이 참으로 다행이지요… ”.
김유신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러면 그 방법대로 추진합시다. 먼저 춘추공이 이모이신 여왕을 은밀하게 만나 승만공주를 후계왕으로 삼자고 진언하세요. 제 생각에는 진평왕의 뜻이 성골인 공주가 신라의 국왕이 되는 것이니 여왕이 그 유지를 받들 것입니다”.
김춘추가 굳은 표정으로 김유신에게 말한다; “이제 제가 행동할 시간이군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처리할 것이니 손위 처남은 안심하세요. 이 아우는 형님만 믿고 그렇게 밀어 부칠 것입니다… “.
김춘추가 용모에 귀티가 나고 부드러운 인상이지만 그 속은 그렇지가 아니하다. 상당히 매서운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이모인 선덕여왕을 만나서 은밀하게 사촌인 승만공주를 다음 여왕으로 세우자고 진언한다. 선덕여왕의 입장에서는 신라국왕의 자리를 진골에게 내놓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성골에게 넘겨주는 것이니 선왕 진평왕 보기에도 모양새가 좋다. 따라서 크게 찬성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김춘추와 선덕여왕만이 합의하고 있는 비밀이다. 그것을 모르고 상대등 비담이 자신의 세력을 모아서 이듬해 647년 정초에 선덕여왕 다음에 자신이 신라의 국왕이 되겠다고 나선다;
그것은 일종의 반란이다.
비담이 646년 11월에 상대등이 되자 선덕여왕이 자신을 차기 국왕으로 미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12월에 들어서자 여왕의 태도가 그것이 아니다. 언뜻 새어 나오는 정보가 국왕의 자리를 진골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성골인 공주에게 넘긴다는 것이다.
비담이 개인적으로 배신감을 느낀다. 성골인 공주라고 하면 선덕여왕의 숙부의 딸인 승만을 말하고 있다. 백부가 진평왕이므로 승만을 공주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부친과 조부가 모두 신라의 국왕이 아니었기에 정식으로 공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것보다는 진지왕의 아들인 비담 자신이 더 확실한 신분인 것이다.
그와 같은 불평을 비담이 자신에게 줄을 대고 있는 거상이며 재사인 염종에게 말했더니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왕의 건강상태가 어떠한가요? 혹시 노망이 난 것이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제가 재물과 군사 그리고 병영을 제공할 것이니 떨치고 일어나시지요… “;
그 말에 용기를 크게 얻은 70세의 비담이 그만 노욕을 이기지 못하고 647년 정초에 반란을 일으키고 만다. 비담과 염종이 ‘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여군주는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라고 선전하면서 명활산성(배반산에서 보문동에 이르는 15리의 산성, 왜의 침입에 대응하는 설씨 문중의 산성임)에서 반란군을 모으고 서라벌로 진격을 시도한다.
김춘추는 재사 윤책이 벌써 말해준 바가 있음을 명심하고 있다; “후계자로 공주를 다시 여왕으로 세운다고 하면 그 낌새를 알고서 비담이나 다른 진골들이 반란을 도모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그들의 동태를 철저하게 살펴야 합니다”.
김춘추의 정보망에 비담와 염종의 반역도모가 사전에 낱낱이 걸려들고 있다. 따라서 김춘추는 압량군주인 김유신에게 급히 연락하여 명활산성을 공격한다. 비담의 반란군이 서라벌로 진입해보지도 못하고 명활산성에 갇힌 채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1월 8일에 갑자기 선덕여왕이 급서하고 만다. 조정에서는 김춘추가 중심이 되어 선덕여왕의 유지에 따라 승만공주를 새로운 여왕으로 즉위하게 한다. 그리고 김유신은 명활산성으로 진입하여 비담의 반란군을 모조리 도륙하고 만다.
그 소식을 멀리 파주의 칠중성에서 재사 윤책이 듣고 있다. 이제 진덕여왕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여왕의 시대에 아무쪼록 김춘추와 김유신이 국정을 장악하여 삼한일통의 길을 열어야만 한다.
구체적으로, 당나라를 끌어들여서 북방의 강대국 고구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 다음에는 백제를 정벌해야 한다. 그리고 당나라의 힘도 소진시켜야 한다. 그러한 굵직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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