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4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 8. 16:39

천년의 바람소리48(손진길 소설)

 

서기 6543월에 신라의 국왕이 된 김춘추는 그날부터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들에게 죽은 딸과 사위의 원수를 갚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그 모습을 서라벌에서 130리 떨어져 있는 압량주에서 군주로 근무하고 있는 재사 윤책이 다소 염려스럽게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된 김춘추는 윤책 군주의 처남이다. 그러므로 윤책은 처남인 김춘추가 삼한일통을 달성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사적인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칫 경솔하거나 무리하게 군사작전을 전개하게 되면 그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다.

윤책이 판단하기로는 성급하게 백제를 치게 되면 신라군의 피해가 막심하게 된다. 그 결과 두가지의 후유증을 초래할 것이다; 하나는, 그 기회를 틈타서 고구려가 신라를 급습할 수가 있다. 또 하나는, 이 세상에 영원한 동맹국이란 없다. 이권 앞에서는 아군이 쉽게 적군이 되고 만다.

비근한 예로 100년전에 신라의 진흥왕이 백제에게 그러하지 아니했는가?... 나제연합군이 함께 고구려의 남쪽 땅을 얻었는데 그것을 진흥왕이 독식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선례에 비추어,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군사를 많이 소모하고 나면 반드시 동맹국인 당나라가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것이다.

윤책의 판단으로는, 당나라가 신라와 함께 정복한 백제를 독식하고 차제에 약골이 되어버린 신라마저 지배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중에서 말하듯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왕서방이 먹는다는 형국이 되지 아니하겠는가!... ;

그와 같은 냉정한 정세판단을 하고 있는 재사 윤책이 신라의 국왕인 김춘추와 의견대립을 하게 되는 묘한 일이 김춘추가 국왕이 되고 2년후인 서기 656년에 백제의 조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의자왕이 왕족 출신의 최고 조정대신 좌평 부여성충과 의견충돌을 크게 하다가 그만 충신인 성충을 파직하고 그를 감옥으로 보내고 만 것이다.

부여성충은 11년전에 사망한 백제의 전설적인 장군 부여윤충의 형으로서 두 사람은 백제의 대들보인 충신형제라고 하는 백성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백제의 제31대 국왕인 의자왕은 그것이 옛날부터 영 못마땅한 것이다.

백성들의 모든 칭송은 오로지 국왕인 자신에게만 향하여야 한다. 왕족인 다른 부여씨가 만고의 충신이라고 칭송을 받게 되는 것이 그의 시기심과 질투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압량군주인 재사 윤책은 백제 의자왕의 성품이 그러하다는 점을 11년전부터 진작에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윤책이 백제의 부여윤충 장군의 죽음에 얽힌 비사를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냉정한 재사 윤책의 분석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서기 641년에 백제의 제31대 국왕이 된 40대 초반의 부여의자는 벌써 10년간 태자로서 부친 무왕의 전투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호승심이 강하고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다. 따라서 국왕이 되자마자 신라의 땅을 부왕만큼 많이 빼앗기를 원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이듬해 6427월에 계백 장군과 윤충 장군에게 각각 대군을 주어 신라의 서부전선을 동시에 치도록 한 것이다;

 

계백이 신라의 작은 성 7개를 점령하는 사이에 윤충이 10개의 성을 휩쓸고 있는데 특히 8월에는 서라벌로 가는 디딤돌인 대야성을 함락하고 만다. 당시의 신라 대야성의 성주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이며 그 아내가 춘추공의 딸인 고타소이다. 그들의 수급을 윤충이 사비성으로 보낸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사비성의 백성들이 윤충 장군을 마치 그 옛날 무왕처럼 칭송하고 있다. 의자왕은 처음에는 윤충을 만고의 영웅이라고 칭찬하다가 나중에는 그를 시기하게 된다.

둘째로, 의자왕의 속 좁은 성격을 모르고 만고의 충신인 윤충645년에 고구려와 당나라가 크게 전쟁을 벌이는 사이에 수군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당나라 강남의 절강성 일대 월주 지역을 점령하고 만다. 백제의 식민지가 당나라 강남에 마련되자 그 옛날의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고 백성들이 열렬하게 당의 월주에 주둔하고 있는 윤충 장군의 전공을 찬양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의자왕의 속이 상하여 앞뒤를 가리지 아니하고 윤충을 파직하여 백제로 소환하고 만다.  

뛰어난 지장이며 용장인 윤충이 사라지고 나자 당나라의 군사들이 강남의 월주 땅에서 백제군을 삽시간에 몰아내고 만다. 그 소식을 멀리 사비성에서 듣고서 백제의 영웅이며 무신인 장군 부여윤충이 그만 화병으로 죽고 만 것이다.

그런데 부여윤충의 형인 부여성충이 아우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그가 모시고 있는 의자왕은 다른 왕족이 자신보다 백성들의 칭송을 크게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나이 60을 바라보게 된 의자왕이 656년초부터 국사를 간신배와 왕자들에게 맡겨 놓고 주야로 방탕한 유흥과 향락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서 그만 성충이 참지를 못한다;

술에 취하여 마냥 유흥을 즐기고 있는 의자왕을 방문하여 성충이 따갑게 직언을 올리고 있다; “폐하, 신라와 당나라가 호시탐탐 우리 백제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왕이 이와 같이 주흥을 즐기고만 있으면 왕국이 누란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 옛날 영특한 국왕의 모습을 되찾아 주십시오. 부디 술자리와 향락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

 

충신 부여성충이 자신의 목을 걸어 놓고 간하는 것인데 그것을 의자왕이 참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근위대장에게 그만 왕명을 내리고 만다; “여봐라, 이놈 좌평 성충이 감히 국왕인 나를 능멸하고 있구나. 내가 15년 전에 백제의 국왕이 되어 벌써 선왕의 위업을 달성하고도 남을 전공을 세우고 있는데 그러한 나를 시기하여 이놈 성충이 나를 깎아내리기에 열심이구나... “.

그 다음 부여성충의 충심과 충언을 생매장하고 있는 의자왕의 왕명이 들려온다; “나를 제치고 왕족인 성충 네가 감히 새로운 국왕이 되고 싶은 모양이지... 당장 이놈을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라. 다시는 나를 만나지 못하도록 조치하라. 이것은 왕명이다!... “.  그 결과 성충이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사비성에서는 충언을 고하는 대신들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소식을 첩자를 통하여 신라의 조정과 군부의 대신들이 듣고 있다.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국왕 김춘추가 대신들을 소집하고 그 자리에 천하의 재사인 압량군주 윤책을 참석하게 한다;

 

국왕 김춘추가 말문을 열고 있다; “백제의 영웅인 윤충이나 성충의 비중은 백제군사 10만명에 맞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그런데 우매하게도 의자왕이 11년전에 윤충 장군을 파직하고 그를 화병으로 죽게 만들더니 이제는 그 형인 성충을 감옥으로 보내고 말았어요. 그러니 이것은 호기입니다. 나는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차제에 백제를 멸할까 하는데 대신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

 

부드럽게 말문을 열고 있지만 그것은 새로운 국왕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는 말씀이다. 그 앞에 감히 불가능하다고 직언하는 신하가 없다. 그때 진골들이 차지하고 있는 제1관등 이벌찬 영의정부터 제4관등 파진찬 판서 다음의 자리에 제5관등 대아찬 지방군주로서 겨우 당상관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윤책이 진언을 하고자 앞으로 나선다;

윤책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폐하, 분명히 호기입니다. 그러나 두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극약처방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잘못하면 우리 신라군사의 피해가 막심하게 되어 외적의 침입을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소신이 말씀드리는 조건은 두가지입니다… “.

좌중이 조용하게 경청하고 있다. 특히 국왕 김춘추는 천하의 재사이며 자신의 매형인 윤책의 직언인지라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신중하게 말한다; “첫째, 사비성을 지키는 백제군의 수가 소신이 파악하기로는 대략 10만명입니다. 그들은 사비성과 인근성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당의 원정군이 그들을 물리치고 백제를 멸하자면 그 3배인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

 

윤책이 침을 한번 삼킨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그에 따라 당나라의 지원군이 20만명이 넘고 우리 신라가 10만명 이내의 병력을 동원하는 경우라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작은 규모의 군사로는 패전할 것입니다. 둘째, 백제의 조정에는 성충의 뒤를 이어 충신 흥수가 지금 좌평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성충만큼 뛰어난 인물입니다… “;

 

잠시 말을 끊은 다음에 윤책이 국왕 김춘추를 쳐다보고서 말한다; “충신이며 지략가인 흥수의 값어치가 조금 전 국왕 폐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거의 10만의 백제군에 맞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흥수가 없어지게 되면 그때 백제를 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라의 원정군의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도 될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좌우의 대신들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국왕 김춘추가 한동안 자신의 눈을 감고서 말이 없다. 한참 후에 비로소 무겁게 입을 떼고서 말한다; “윤책 군주, 그대의 말이 옳아요. 잘못 성급하게 서두르게 되면 낭패를 당하기가 쉽겠어요. 그러면 백제의 사비성에서 좌평 흥수가 사라지도록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때 짐은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백제를 멸할 것입니다. 그만 해산들 하세요… “;

 

신라조정의 국책방향이 그렇게 결정되고 있다. 과연 윤책을 비롯한 대신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백제의 충신이며 좌평인 흥수를 제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