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5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 13. 16:08

천년의 바람소리52(손진길 소설)

 

한편, 사비성을 지키고 있는 백제의 왕자가 의자왕의 차남인 부여태이다. 그는 분조의 책임자이지만 그 기간 동안에 자신을 백제의 왕이라고 칭한다;

 

 태자 효가 부친 의자왕을 모시고 웅진성으로 떠난 후이므로 그것을 보고서 아무도 제어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 반발이 대단하다. 사비성에 남아 있는 다른 왕자 곧 부여융이 상좌평인 천복을 설득하고 태자 효의 아들인 문사와 모의하여 함께 나당(羅唐)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신라군을 지휘하고 있는 태자 김법민이 백제의 왕자 부여융을 크게 꾸짖는다; “너의 부친 의자왕은 18년전에 대야성을 공격하여 나의 누이와 매부를 죽게 했다. 나는 한시도 그 원한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 이제 목숨을 내놓아라”;

 

 그러나 어쩐 일인지 소정방이 그를 막고 나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중에 김법민이 알게 된다. 부여융이 벌써 당나라의 첩자와 연락하여 백제를 넘겨주는 대신에 자신을 백제의 왕으로 삼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훗날 당 고종은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세우고 665년부터 그 책임자로 부여융을 임명한다;

그것을 보고서 신라가 발끈한다. 당 고종이 백제 땅을 신라에게 주고 그 대신에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켜 당나라의 우환을 없애고자 사전 합의하였는데 그 조약을 일방적으로 당 고종이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국왕 김춘추는 벌써 김유신 및 윤책과 합의한 그대로 백제 땅에서 당나라군대를 몰아내고자 훗날 전투에 나서고 있다.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비성을 지키고 있던 부여태는 아우인 부여융이 상좌평과 태자의 아들까지 데리고 나당연합군을 찾아가서 항복하고 나자 성안의 민심이 크게 동요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 백제의 왕이라고 칭하면서 도성을 사수하고 있으니 자신은 쉽게 항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부여태가 성루에 올라 열심히 진두지휘하면서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며칠간 막아내고 있다. 하지만 2만명의 수비군으로 15만명이 넘고 있는 적들의 공성작전을 계속 막아낸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적군의 수가 5만명 정도이면 끝까지 수성을 하겠는데 그것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부여태는 전세가 전적으로 불리해지는 것을 보고서 그만 성문을 열고 나가서 항복을 하고 만다. 소정방은 크게 기뻐하면서 부여태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성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왕이 사용하던 용상을 차지한다. 그때부터 그는 마치 백제의 왕이라도 된 듯이 행동하기를 시작한다;

소정방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함락하였으니 이제 남은 일은 내륙 웅진성으로 도망친 의자왕과 태자 효를 잡아서 장안으로 끌고가는 것이다. 벌써 자발적으로 항복한 부여융을 비롯한 왕족과 대신들을 잘 대접하고 그 대신에 부여태는 감옥에 가두어라. 나중에 의자왕과 태자 효와 함께 장안으로 압송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전리품이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태자 김법민이 확실하게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다; “당의 소정방이 보통 약은 인물이 아니구나. 그는 간자를 통하여 벌써 부여의 왕자인 융과 야합을 하고 있다. 부여융과 내통한 인물들은 크게 대접하고 그러하지 아니한 백제왕과 왕자들 그리고 대신들은 자신의 전공을 선전하기 위한 전리품으로 삼고 있구나. 이자가 부여융을 내세워 백제를 집어삼키고자 하면 앞으로 큰일이다… “.

김법민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리가 없는 소정방이 기분 좋게 신라의 태자에게 말한다; “내가 부관인 낭장 유인원에게 1만명의 군사를 주어 사비성을 지키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함께 웅진성으로 가서 의자왕과 태자 효를 잡도록 합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

그 말을 듣자 김법민이 소정방의 속셈을 환히 알게 된다; “그는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부터 집어삼키고 있구나. 우리 신라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으려고 작심한 모양이다. 소정방은 당 고종의 의도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야. 앞으로 당나라 군사를 몰아내는 일이 보통이 아니겠구나!... “.

그러나 그러한 불만을 바깥으로 표시할 수가 없다. 김법민은 신라군을 지휘하여 소정방과 함께 웅주성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도중에 그들은 웅진성에서 오는 김유신 사령관의 전령을 만나게 된다. 이미 웅진성을 점령하고 의자왕과 태자 효를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김법민이 전령에게 급히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순조롭게 웅진성을 함락하였는가?... ”. 전령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웅진성주 예식진이 은밀하게 항복의사를 김유신 사령관께 전해왔습니다;

 

그의 안내로 무사히 의자왕태자 효를 잡았지만 맹장인 흑치상지는 포위망을 뚫고서 부하들과 함께 도주하였습니다. 이상입니다”;

 

그 결과 서기 6609월초에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서 전승을 축하하는 큰 잔치가 열린다. 당상에는 신라의 국왕 김춘추와 신라군 사령관 김유신 그리고 당의 원정군 사령관인 소정방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단 아래에는 의자왕과 왕자인 부여융이 앉아 있다.

잔치가 시작되자 소정방의 지시에 따라 패전한 백제의 의자왕이 단상의 3인에게 술잔을 올린다;

 

 그렇지만 소정방은 부여융에 대해서는 일체 패장의 의식에 참여하지 아니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것은 은연중에 부여융을 예우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더구나 백제의 태자인 효를 그 자리에 불러내지 아니한 것을 보면 벌써 그가 을 택하고 를 버렸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 김춘추와 김유신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다. 두사람은 얼른 백제로 도망을 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그 옛날 대야성의 배신자인 검일과 모척을 끌어내어 처형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날만은 국왕 김춘추와 상대등 김유신이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 것을 대승적으로 백제에 대한 전후처리를 하는 일보다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배신자 둘을 처단하는 김춘추의 울분에 찬 단죄가 다음과 같다; “검일은 대야성에서 모척과 모의하여 백제의 군사를 끌어들이고 창고에 불을 질러서 없앴기 때문에 성안에 식량을 모자라게 하여 싸움에 지도록 하였으니 죄가 하나이고, 품석(品釋) 부부를 윽박질러서 죽였으니 죄가 둘이고, 백제와 더불어 본국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이 번째 죄이다”.

신라의 국왕과 사령관이 그런 자그마한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고서 소정방이 속으로 웃고 있다; “잘 되었다. 신라를 버리고 백제에 붙은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일에 두사람이 골몰하고 있구나. 이때를 이용하여 나는 황제폐하의 밀명을 수행하면 되겠구나. 절호의 기회이다… “.

소정방의 지시사항이 자신의 부관들에게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그는 장안을 떠나 오기 전에 벌써 백제의 전후처리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여 온 것이다. 따라서 그 조치가 다음과 같이 일목요연한데 그것이 전광석화와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로, 의자왕과 태자 효를 위시한 왕자들 그리고 백제의 대신들을 장안으로 압송한다. 다만 우리에게 일찍 항복하고 사비성을 점령하는데 있어서 공을 세운 왕자 융을 장안으로 데리고 가서 황제폐하에게 인사를 시키도록 한다.

둘째로, 웅진성을 접수할 수 있도록 협력한 성주 예식진을 웅진성주로 발령한다. 앞으로 자신의 성을 당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자에 대해서는 성주로 임명하는 선례가 될 것이다;

셋째로, 쓸모가 있는 백제의 귀족 100명과 백성들 13천명을 사로잡아 장안으로 끌고 간다. 그것이 폐하에게 바치는 우리들의 전리품이 될 것이다.

넷째로, 백제의 인구를 점검하고 유민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웅진, 마한, 동명, 금련, 덕안 등 5개의 도독부를 설치한다. 그 아래에 주와 현을 설치한다. 그 수장은 도독, 자사, 현령이 된다.

다섯째로, 도성인 사비성은 낭장 유인원이 지키고 웅진도독부는 낭장 왕문도가 그 책임자가 된다;

 

참고로 당시 소정방의 부관들이 점검한 백제의 유민의 수가 76만호인데 그것은 호당 5인 인구로 계산하면 380만명이나 된다. 한마디로, 당시 신라의 인구 300만명보다 백제의 인구가 더 많은 것이다.

소정방과 그의 부관들이 그와 같이 전광석화와 같이 전후처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신라의 국왕 김춘추와 상대등 김유신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제 당나라 황제의 속셈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신라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면서 그 모두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만들고자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의 국왕과 군부가 그들의 의도를 좌절시켜야만 한다. 그 방안을 재사 윤책이 미리 마련하여 오인회의 구성원인 국왕과 상대등에게 주었는데 그 주요내용이 다음과 같다;

첫째, 나당연합군이 속전속결로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을 함락하고 의자왕과 태자를 사로잡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중앙정부만을 붕괴시킨 것에 불과하다. 지방의 왕자들과 귀족들의 세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웃나라 고구려나 백제의 식민지인 왜국으로 피신한 그들의 재산과 인적자원이 상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의 원정군이 백제를 완전히 석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당의 원정군은 틀림없이 의자왕의 아들 가운데 자신들에게 자발적으로 협조한 자 곧 부여융과 같은 자를 태자로 삼아 선무공작에 나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라는 당나라가 군사적으로 백제 뿐만 아니라 우리 신라까지 전부 지배하고자 한다는 그들의 계획을 크게 홍보함으로써 반당세력을 규합해야 한다. 결국은 우리 예맥족과 그들 중원의 한족과의 전쟁으로 삼한일통이 마무리가 될 것이다.

셋째, 백제의 의자왕이 대신들과 귀족들의 신뢰를 저버렸기에 백제의 부와 기술이 왜국으로 급격하게 이전되고 있다. 나중에 전쟁이 발발하면 많은 귀족들이 왜국으로 도피하고 말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훗날 왜국의 군대를 이끌고 백제 땅에 들어올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강구하여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