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5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 14. 19:01

천년의 바람소리54(손진길 소설)

 

12. 윤책이 당 고종의 과욕을 보고서 훗날 당의 세력을 한꺼번에 몰아낼 준비를 하다.

 

문무왕 통치 2년에 신라의 원로가 되어 있는 김유신이 재사 윤책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나는 가야계 출신 신라의 진골로서 일찍이 부친인 김서현 공과 함께 진평왕의 심복이 되었어요. 그 이유는 무엇보다 나의 모친인 만명공주가 묘하게도 진평왕과 이부(異父)남매 사이가 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김춘추가 나의 매제가 되기에 그가 원하고 있는 삼한일통의 꿈을 내가 이루어 주고자 부친과 함께 진력했어요. 그 결과… “;

 

재사 윤책이 귀를 기울이자 벗 김유신이 진지하게 이어서 말한다; “그 공로로 나는 태종무열왕의 공주와 혼인하고 신라의 부마가 되었지요. 하지만 부친 김서현 공은 신라가 백제를 정복하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일찍 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이제 나는 처남이 되는 문무왕을 도와 고구려마저 정복하고나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요. 그것이 내게 남아 있는 마지막 사명으로 보인다오. 그러니 부디 나를 도와주게, 내 오랜 벗 재사 윤책아… “.

서기 662년초 벌써 70세가 되어 있는 재사 윤책이 자신의 고희연에 참석하여 그와 같이 부탁하고 있는 오랜 벗 김유신의 손을 잡으면서 정답게 말한다; “유신 공 그대는 나보다 2살이나 적어요. 그러니 아무 염려하지 마시게. 분명히 우리가 함께 고구려를 정복하여 삼한일통의 꿈을 달성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야. 나는 그 넓은 만주 벌판을 그대와 함께 말을 달릴 그때를 지금도 상상하고 있어. 그것이 우리 선조들의 땅이 아닌가?... . 두 사람의 꿈은 과연 어떠한 모양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

 

그렇지만 당장은 백제의 땅에서 들불같이 번지고 있는 백제부흥운동을 소탕하고 그 다음에는 외세인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백제의 유민과 토지를 신라에 병합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 문제를 슬기롭게 마무리하여야 다시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동북아의 강대국인 고구려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라의 재사인 윤책이 압량주의 군주로 근무하면서 사비성에 나가 있는 간자들을 통하여 백제의 부흥운동과 그에 대처하고 있는 웅진도독부의 전략에 대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월녀와 월광이 여전히 고급요정 월궁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들 남매가 수집한 고급정보를 일광스님과 윤하신이 교대로 압량주의 군주인 윤책에게 전해주고 있다;

군주 윤책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무리 복잡한 상황의 전개와 실타래와 같이 뒤엉켜 있는 정보의 더미라고 하더라도 그가 일단 손을 대고 오래 명상하면서 하나하나 정리하고 분석을 하게 되면 결국에는 그 사건의 전개를 일목요연하게 체계화하고 남에게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놀라운 능력이 윤책에게 내재되어 있기에 그가 당대 천하제일의 책사이며 재사인 것이다. 그러한 재사 윤책이 서기 6609월초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복하였다고 승전의 잔치를 개최한 그때부터 6658월 당나라의 압력 아래 신라의 문무왕이 계림도독이 되어 웅진도독인 부여융과 맹약을 맺기까지 5년간의 복잡한 과정을 연구하여 다음과 같이 나름대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승전의 사비성 잔치마당에서 당의 원정군 사령관 소정방이 당 고종의 명령임을 내세워 백제에 5개의 도독부를 설치한다고 선언한다. 우선 자신들이 정복한 도읍 사비성과 200리 동쪽의 큰 성읍 웅진성을 합하여 웅진도독부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웅진도독부의 책임자로 낭장 왕문도를 임명한다.

둘째로, 소정방은 사비성을 지키라고 낭장 유인원에게 1만명의 병사를 주고 웅진도독 왕문도에게는 2만명의 병사만을 남기고 자신은 많은 포로와 전리품을 가지고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당나라로 개선하고 만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백제가 망한 것이 아니라 나당연합군이 수도권을 점령하고 의자왕과 태자를 사로잡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기타 지방세력들이 들고 일어나면 낭패이다.

그 점을 알고 있는 소정방이 신라의 국왕에게 우선 사비성을 지키기 위하여 신라군 7천명을 내도록 하고 기타 신라의 원정군을 총동원하여 웅주도독을 도와 백제의 지방세력을 완전히 정복하라고 지시 아닌 지시를 하고서 떠나고 있다.

셋째로, 신라의 국왕 김춘추는 그 옛날 서기 648년에 장안을 방문하여 당 태종과 동맹을 맺었을 때에 협약한 내용을 잊지 아니하고 있다. 그 내용은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게 되는 경우 평양이남의 땅을 전부 신라에게 주고 당나라는 그 이북만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백제의 고토는 전부 신라의 영토가 된다;

그런데 소정방이 그 밀약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하게 처신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고구려를 정복한 것이 아니기에 국왕 김춘추는 나중을 기약하면서 소정방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넷째로, 서기 6608월 웅진성이 함락될 때에 맹장 흑치상지가 수하들과 함께 탈출하여 북서쪽에 있는 임존성(오늘날의 충남 예산으로 추정)으로 들어가서 저항세력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는 단 열흘만에 3만명의 군사를 모으게 되자 정식으로 거병한다. 또한 의자왕의 사촌이며 달솔 벼슬인 부여복신이 사비성의 남서쪽에 있는 주류성(오늘날의 전북 정읍으로 추정)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시작한다;

부여복신은 승려 도침과 함께 거병하여 나당연합군을 치는 한편 일본에 가 있는 의자왕의 5번째 왕자인 부여풍을 백제로 불러들인다. 그를 백제의 신왕으로 삼고서 정식으로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한다. 부여풍은 서기 6619월에 왜병 5천명과 함께 백제로 들어온 것이다.

다섯째로, 나당연합군과 백제부흥군 사이에 전투가 일진일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서기 6616월에 신라의 국왕 김춘추가 서거하고 만다. 그 뒤를 이은 태자 김법민이 직접 나서서 백제부흥군을 쳐부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당나라는 서기 661년에 이어 662년에도 고구려를 산발적으로 침략하느라고 백제부흥운동을 분쇄하는데 크게 병력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도중에 서기 6638월에 왜국에서 47천명의 대군이 수많은 함대로 백강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알아채고서 재사 윤책이 국왕 김법민에게 기벌포에서 매복하여 왜군을 쳐부수라고 진언한다. 그 작전이 주효하여 왜의 수군이 대패를 하고서 물러가고 만다;

여섯째로, 왜국의 지원병이 대패하고 물러가자 백제부흥운동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서기 6638월에 당에서 백제로 들어온 의자왕의 3남인 부여융흑치상지를 설득하여 당나라편에 서게 한다. 흑치상지는 끝까지 임존성에서 저항하는 수하를 죽이면서까지 당나라에 충성을 맹세한다;

그리고 그해 9월에는 부흥운동의 본거지인 주류성이 함락되면서 부여풍이 고구려로 도망하고 만다. 그것으로 백제부흥군이 완전히 해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일곱째로, 백제의 저항군을 모두 소탕하고 나자 당나라에서는 서기 6642월에 신라의 국왕인 문무왕에게 한가지 요구를 한다; “백제의 태자인 부여융이 장차 당의 황제를 대신하여 백제 땅을 다스릴 것이니 신라의 국왕은 그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주라”. 문무왕은 그 무례하고도 무리한 요구에 기가 찬다.  하도 당 고종의 욕심에 화가 나서 그만 동생 김인문을 대신 보낸다.

그러자 6658월에 당 고종의 칙사로 유인원이 백제에 와서 소위 취리산 맹약을 강요한다. 오늘날의 공주 연미산인 그곳에 신라국왕 김법민과 백제의 태자 부여융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지시하는 것이다; “4개월 전에 당의 황제께서는 신라국왕 김법민을 계림도독으로 그리고 백제 태자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봉한 바 있어요. 그러니 두 도독은 서로의 도독부를 잘 다스려 당의 황제에게 충성할 것이며 서로 도움을 주도록 하시요”;

그것은 한마디로, 백제의 유민과 땅을 당 고종이 독식하면서 그 대리자인 부여융으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조치한 것이니 신라의 국왕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이 40세의 문무왕 김법민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재사 윤책이 다음과 같이 진언한다;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유민과 땅을 누가 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군사력의 우열에 의하여 다시 결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양보를 하시더라도 훗날을 철저하게 대비하셔야 합니다. 작금의 고구려는… “.

윤책이 잠시 숨을 쉬면서 말을 끊자 김법민이 궁금하여 더욱 경청한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이어서 설명한다; “매년 당의 육군과 수군이 국경을 침범하고 있으므로 연로한 연개소문이 피로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삶을 일체 돌보지 아니하고 당의 기습공격을 막아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구려 백성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이 상태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지요… “.

윤책이 결론을 맺고 있다; “수년내에 고구려는 그 수명을 다하고 말 것입니다. 그때 우리 신라가 당의 원정군을 치고 예맥족의 땅을 전부 통일해야 합니다. 그리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국력을 아끼고 군사력을 길러야 합니다. 화랑과 향도들도 지원해야 하고요. 그리고 전략과 책략을 담당할 인재도 많이 발굴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폐하께서 당나라와 다투실 필요가 없습니다. 금번의 굴욕을 나중에 되갚아 주면 되지요… ”.

윤책의 진언이 끝나자 국왕 김법민은 물론 좌우에 시립하여 있던 김유신 형제와 대신들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당연합군을 형성하여 고구려를 점령한 다음에는 당의 원정군을 몰아내는데 총력을 다하고자 속으로 다짐하고 있다. 과연 그들의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