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191강(창35:13-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2. 25. 12:41

창세기 강해 제191(35:13-1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212()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35:13)의 의미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자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그곳으로 강림하십니다(35:9). 구체적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의 일을 행하십니다; 첫째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직접 고쳐주시고 있습니다(35:10). 그 옛날 얍복 시냇가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한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전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벧엘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현신을 하셔서 야곱에게 개명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종의 통지발효의 차이와 같습니다. ‘통지는 사전에 하나님은 사자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해준 것입니다(32:28-30). 그리고 일단 통지가 된 그 예언의 실시는 영광스럽게도 하나님께서 직접 현신을 하셔서 발효를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대통령 앞에서 직접 임명장을 받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전적인 행사를 가짐으로써 그 때부터 정확하게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따라서 벧엘에서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거느리게 되는 대 족장이 됩니다. 당연히 자신의 열두 아들은 십이 지파의 족장들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지금까지 꿈속에서 또는 사자를 통하여 야곱에게 전달해준 축복과 계시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직접 온 세상에 선포해주십니다(35:11-12).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구성되는 제사장나라가 장차 이 세상에 나타날 것임을 강력하게 예고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19:3-6).

벧엘에서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야곱 앞에 현신하셨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대목이 어디일까요? 그 대목이 바로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35:13)는 구절입니다. 야곱과 대화를 나누던 상대방이 사람의 모습임을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걸음을 옮겨서 멀어지는 것이 떠나는 것이며 동시에 승천하는 장면이 올라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경우가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행적에서도 두 차례나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17:22),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18:33).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도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믿음의 열조들에게 접근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신 다음에는 다시 멀찍이 가셔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있습니다. 약한 피조물인 사람의 처지를 십분 감안하여 행하시고 있는 처신입니다. 창조주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진면목을 보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셨다가 볼 일을 마치시고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그와 똑 같은 하나님의 오심과 승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의 성육신(2:1), 베다니에서의 승천을(24:50-51) 굳이 들먹이지 아니하더라고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예언에서 넉넉하게 그 사실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3-15),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6:62).

 

드디어 서원을 지키고 있는 야곱의 행동과 그의 깨달음(35:14-15)

 

야곱이 벧엘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존재와 자신의 인생을 향하신 그 뜻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겜 자신의 제단에 야곱을 위한 보호막으로 그냥 모셔질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33:20). 사람이 제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절대자이시며 창조의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절대적인 주권으로 믿음의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철두철미하십니다. 한번 벧엘에서 꿈속에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고 지켜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셨기에 그 말씀 그대로 야곱에게 행하셨습니다(28:13-15, 31:7-13, 24, 32:1, 29, 33:4, 16). 이제는 야곱이 언약과 관련하여 벧엘에서의 자신의 서원을 지켜야만 하는 차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곳 벧엘에서 야곱의 서원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그 점을 야곱이 벧엘에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5:7). 그러므로 이제부터 야곱은 벧엘에서의 깨달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야곱이었을 때에 사용하던 온갖 세상적인 방법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더 이상 인간적인 편법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의 왜곡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의 삶입니다(35:10). 그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야곱은 경건하게 벧엘에서의 서원부터(28:18-22) 확실하게 이행을 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35:14-15). 이제부터는 야곱과 그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온 세상에 보여주어야만 할 것입니다(28: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