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192강(창35:16-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2월 13일(목)
깨달음을 얻게 된 야곱이 남행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사건, 라헬의 출산과 객사(창35:16-18)
가나안 중부에 속하는 벧엘은 예루살렘 북쪽 19km지점입니다. 예루살렘 북쪽과 남쪽 각각 8km지점에는 라마와 베들레헴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계속 남하하면 가나안 남부에 접어듭니다. 그리고 남부의 중심도시 헤브론이 나타납니다. 그 위치는 예루살렘 남방 30km지점입니다. 헤브론에서 서남쪽으로 43km를 진행하면 브엘세바가 나타나고 80km를 더 진행하면 마침내 국경도시 가데스 바네아에 도달하게 됩니다. 참고로, 야곱이 부모님의 집을 떠날 때는 그 장소가 브엘세바입니다(창28:10). 그러나 야곱은 벧엘에서 유모 드보라로부터 부모님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창35:8). 두 가지 소식입니다; 첫째, 어머니 리브가가 자신을 기다리다가 별세하여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창49:31). 둘째, 아버지 이삭이 아내의 장례를 전후하여 헤브론에 왔으며 아예 그곳에 눌러서 살고 있다는 전갈입니다(창35:27).
따라서 벧엘을 떠난 야곱의 가족은 헤브론을 향하여 남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이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모리아 산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촌락으로 보입니다(창22:2). 오히려 예루살렘 북방 8km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라마 그리고 남방 8km에 위치하고 있는 베들레헴이 더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야곱 일행은 벧엘을 출발하여 일단 베들레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에브랏’이 베들레헴의 옛날 지명이므로 그 길을 ‘에브랏에 이르는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창35:16a). 그렇게 방향을 정하여 남진을 하던 도중에 라마 근방에서 뜻밖의 일을 당하게 됩니다. 13년 전에 아들 요셉을 낳은 경험이 있는 라헬이 두 번째 아들을 길가에서 낳게 되는 큰 일이 발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창35:16b).
라헬은 결혼도 늦게 했으며 7년간 불임이다가 겨우 요셉을 낳았습니다(창29:20, 28, 31, 30:22-25). 이제 초산 후에 13년이나 더 지나서 둘째 아들을 낳게 되니 그것은 노산(老産, 가임 연령 끝 무렵에 출산을 하는 것)입니다. 노산은 산모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합니다. 아기를 낳는 라헬의 산고가 매우 심합니다(창35:16c). 한 마디로 난산(難産, 어려운 출산)입니다(창35:17a). 겨우 아기가 태어납니다. 아들이라고 외치는 산파의 소리를 들으면서 라헬은 아기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르면서 숨을 거둡니다(창35:17-18). 남편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애처 라헬이 어이가 없게도 둘째를 낳다가 라마의 길가에서 객사를 하게 되는 일이 발생을 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나이 104세쯤에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길에서 잃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베노니와 베냐민의 이름자의 차이(창35:18)
‘베노니’는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창35:18a).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죽음을 맞이하는 라헬의 진한 슬픔이 그 이름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은 자는 장사를 지내고 산 자는 또 힘차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살이입니다. 특별히 야곱과 같은 유목민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힘이 있으면 자신의 목초지와 가축을 지키고 번성을 합니다. 반면에 힘이 약하면 약탈을 당하고 잡아 먹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까지나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족장인 야곱이 당장 슬픔을 벗어버리고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고 끈질기게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나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창32:28, 35:10). 야곱이 그의 새로운 이름값을 하고 있습니다. 라헬이 숨을 거두고 나자 당장 그 아기의 이름부터 바꾸고 있습니다. 그 이름자에서 ‘슬픔’의 흔적부터 지우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족장 이스라엘의 한쪽 팔이 되라는 뜻으로 ‘베냐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있습니다(창35:18b). 야곱의 소원이 그 이름자에 담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베냐민 족속은 용사들의 집단이 됩니다. 사사 시대에는 나머지 모든 지파를 상대로 하여 전쟁을 수행하기도 합니다(삿20:20-35). 그리고 그 지파에서 용력이 출중한 초대 왕 사울이 탄생하기도 합니다(삼상9:1-2, 11:15).
라마에서 임종한 라헬의 묘가 남방 베들레헴 북쪽 교외에 자리잡게 되는 이유(창35:19-20)
한반도에 들어온 기마민족도 본래 유목민입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동쪽 끝까지 달려온 강인한 족속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네의 조상들은 중동 땅의 유목민 집안인 믿음의 열조들과 공통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하늘에 있는 유일신을 섬기며 천신에게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서로 같습니다. 장례에 있어서도 삼일장을 치르고 있는 것이 같습니다. 그 삼일장이 야곱의 라헬 장례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라헬은 분명히 아기를 낳다가 라마에서 객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창35:16)이라는 표현과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마2:18, 렘31:15)는 대목이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묘는 오늘 날 라마에서 남방 16km에 위치하고 있는 베들레헴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죽은 아내의 시신을 운반하여 사십 리 남쪽에 안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표현이 다음과 같습니다;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창35:19-20).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일부러 라마에서 베들레헴으로 운구를 하여 장례를 치른 것을 보면 그곳이 명당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떡집으로 불리는 베들레헴이 훗날 보아스와 룻의 보금자리가 됩니다(룻1:22, 2:4, 4:11). 그들의 손자가 이새이며 증손자가 다윗 왕입니다(룻4:17). 이스라엘 제국을 형성하는 다윗 왕가가 베들레헴에서부터 탄생을 하고 있습니다. 왕조가 탄생하는 곳이니 길지(吉地) 중의 길지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어떻게 야곱이 그 점을 알고서 애처 라헬을 그곳에 묻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왜 베냐민이 아니고 유다 지파가 그 지세를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베냐민 지파가 나머지 지파 모두와 전쟁을 벌여서 패하지만 아니했더라면 다윗의 왕조가 아니라 베냐민의 왕조가 이스라엘을 계속 지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나친 자신감과 자신들의 용맹만을 믿은 것이 결국은 명당까지 유다 지파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반사실적인 가설’(counter-factual Hypothesis)이기는 하지만 한번쯤은 타산지석(他山之石, 남의 잘못을 보고 자신의 단점을 고쳐나가는 것)으로 음미를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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