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181강(창33:16-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2. 20. 15:48

창세기 강해 제181(33:16-1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23()

 

야곱이 숙곳에 우릿간을 지은 이유(33:17)

 

야곱은 형 에서의 환심을 사서 목숨을 구명하는 한편 그가 동행하겠다는 호의를 거절하는데 총력을 경주하였습니다(33:12-13, 15). 야곱은 자식들이 어리고 또한 가축의 새끼를 많이 거느리고 있으므로 군마의 뒤를 도저히 따를 수가 없다는 합리적인 핑계를 동원하여 가까스로 형의 호의를 물리치게 됩니다(33:13-14). 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예물만 잔뜩 받고서 군사들을 이끌고 세일 산으로 되돌아 갔습니다(33:11, 16). 야곱은 형 에서에게 장차 가나안 남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형이 근무하고 있는 세일 산에도 꼭 문안을 가겠다고 단단히 약조를 하고 있습니다(33:14).

그런데 야곱은 형과의 약조를 지킬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서원한 약속을 지킬 의향도 크게 없습니다(28:17-22). 그러한 야곱이기에 형이 돌아가고 난 다음에 그의 세상적인 눈이 다시 번쩍 떠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얍복 시냇가에서 서편으로 요단 강 쪽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얍복 시내가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구 쪽에 참으로 무성한 목초지역이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곳은 얍복 시내가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기 직전에 만들어 놓은 넓은 퇴적층입니다. 당연히 토양이 비옥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당장 그곳으로 이동하여 목축을 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 우선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또한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습니다(33:17a). 그리고 그곳 이름을 천막을 친 들판이라는 뜻으로 아예 숙곳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33:17b). 그는 오래 그곳에 머물면서 가축의 살을 많이 찌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나 벧엘에서의 서원 그리고 형 에서와의 약속 따위는 까맣게 잊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야곱의 행동은 그 옛날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데라의 하란에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11:31-32).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곳 원주민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데라는 하란 땅에서 머물다가 죽고 맙니다. 북부 시리아에서 비옥한 땅을 만났기에 그곳을 개척하여 큰 부를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데라는 그 일에 매진하느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숙곳에서의 야곱의 모습이 데라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안주하게 되면 약속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칭호가 떨어져나갈 것만 같습니다.

 

야곱이 세겜 성읍 앞에 장막을 친 후에 아예 그 땅을 사버리다(33:19)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야곱을 벧엘로 빨리 불러서 그의 서원을 지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28:16-22, 31:3). 그래서 야곱의 생각보다 숙곳에서의 생활이 일찍 끝나도록 그를 크게 도와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삼 년 동안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의 가축들이 모두 살이 많이 찌고 엄청나게 번식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비록 형 에서에게 많은 가축을 예물로 떼어주기는 했지만(32:13-15, 33:11) 그 모든 손해를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번성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 더 부자가 되었으니 빨리 요단 강을 건너서 서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야곱은 미련을 두지 아니하고 요단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얍복 시내가 흘러 들어가는 요단 강을 건너서 서편으로 진행하면 바로 실로가 나타납니다. 실로에서 남행을 하면 곧 바로 벧엘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곳은 다소 황량한 곳입니다. 황무지를 뜻하고 있는 아이지역이 가깝기 때문입니다(12:8, 13:3). 그런데 실로에서 반대로 북쪽을 쳐다보면 당시 가나안 땅의 중심인 세겜이 나타납니다(12:6). 가장 번화한 도시입니다. 실로에 도착한 야곱의 눈이 남쪽 벧엘로 향하지를 아니하고 그만 북쪽 세겜에 꽂히고 맙니다(33:18). 그것은 마치 그 옛날 아브라함의 장조카인 롯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롯은 백부 아브람과 함께 출애굽을 하면서 백부의 재산을 얻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13:6). 그러자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적인 향락에 마음이 끌려서 아브람을 등지고 소돔 성으로 이주를 해버린 것입니다(13:10-12).

야곱이 옛날의 롯처럼 부자가 되자 세겜 도시의 향락에 마음이 끌리고 있습니다. 또 다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립니다. 그 자신의 서원도 당장 지키고자 아니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세겜 도시의 외곽지역에 땅을 사고서 그곳에 아예 정착을 하고 있습니다(33:18-19). 야곱이 정착을 하고 있는 지역은 세겜 성읍 앞에 있는 밭입니다. 그 밭의 주인은 세겜 성의 추장인 세겜의 형제들입니다(33:19, 34:2). 당시 세겜 성의 지배족속은 히위 족속입니다(34:2, 20, 24). 그리고 인근에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살고 있다고 모세가 적고 있습니다(34:30).

참고로, 고대사회에 있어서 성(, castle)은 도시(都市, town)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배족속이 성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피지배족속은 성밖에서 살고 있습니다. 성밖은 농촌입니다. 그러므로 밭이 있고 더 바깥지역에는 목초지가 있습니다. 지금 야곱이 사고 있는 것이 입니다. 그 밭은 성문을 빠져나오면 바로 보이는 곳입니다. 야곱은 지배족속인 히위 족속이 아니므로 성 안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문 바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지배족속의 밭을 사서 자신의 주거지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본문에서 밭의 가격이 백 크시타입니다(33:19). 그 값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충 학자들은 ‘1크시타‘10세겔정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00 크시타‘1,000 세겔입니다. ‘1세겔‘4데나리온입니다. 그리고 ‘1데나리온이 하루치의 품삯입니다(20:2). 따라서 백 크시타는 그 값어치는 4,0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00불 정도라고 본다면 ‘4,000데나리온백 크시타는 약 40만불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4억원의 돈을 주고서 야곱이 세겜 성밖의 밭을 사서 자신의 거주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33:19).

그렇게 큰 돈을 주고 바로 성 바깥에 자신의 집을 마련한 야곱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파악이 됩니다; 첫째, 성안 출입을 빈번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편리한 성밖 가까운 거리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둘째, 그곳에서 오래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비싼 땅을 사서 좋은 집을 짓고 평생 동안 안락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28:16-22, 35:7). 그와 같은 야곱을 하나님은 어떻게 회개의 마당으로 끌어낼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야곱의 잘못은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큰 잘못을 하나 더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음 구절(33:20)의 강해에서 계속하고자 합니다.